그의 목소리는 또다시 세월을 견뎌냈다
  • 김영대│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14.11.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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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새 앨범 <양희은 2014> 낸 양희은

요즘의 젊은 세대가 그를 푸근한 입담을 가진 예능 속 여느 아줌마 연예인으로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그것도 양희은의 일면이다. 또 다른 누구는 여전히 청바지를 입고 기타를 들쳐 멘 청순하고 늘씬한 (심지어 옅은 관능미(?)조차 품고 있던) 청년문화의 상징을 자연스레 떠올릴 것이다. 그 역시 의심할 바 없는 양희은이다. 1980년대의 끝자락을 경험하고 1990년대의 정서를 지배적으로 품고 있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게는 어떨까. 한때의 그 압도적인 존재감과 위상에 비한다면 음악 만들기에 다소 게으르긴 했지만 여전히 쉽게 모방하기 힘들 만큼 고유한 색을 가진 가수 정도로 떠올려도 큰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아침 이슬> <작은 연못>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포크음악의 중요한 부분이던 1970년대, <한계령> <하얀 목련> 등 한층 나이 든 이야기와 소리로 채워진 1980년대 중반 이후, 양희은의 디스코그라피는 양과 질 모두에서 조금 애매한 모습을 띠었다. 그중에서 <어떤날>의 이병우와 작업했던 두 장의 앨범, 그중에서도 <양희은 1991>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어쩌면 유일하게 음악적으로 유의미한 작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발매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물론 의심할 바 없는 명곡이지만, 1970~80년대의 청아했던 톤과 일정 부분 작별하고 음악적으로도 세미클래식에 가까운 재즈풍 음악을 선보인 앨범 속 일련의 작업은 양희은이 새롭게 나아가야 할 중요한 지점을 일러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이 앨범은 필자가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가슴네트워크/경향신문)에 92위로 뽑히기도 했다).

11월17일 새앨범 발표회장에서 노래하는 양희은. ⓒ 옹달샘
1970년대 포크부터 40년간 당대의 음악 소화

달라진 트렌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뮤지션으로서의 동기부여 문제였을까. 변함없이 위력적인 목소리에도 그는 새로운 음악 만들기에 게을렀고, 신곡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난 20년간 고작 네 장의 정규작이 있을 뿐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김민기-신중현-이병우로 이어지는 존재감 있고 강렬한 색을 가진 음악감독 파트너의 부재 역시도 이유였을지 모른다. 개인적인 바람이 섞인 상상일 뿐이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대중적인 작풍을 가진 음악감독이 넘쳐나던 1990년대 중반 이후, 김동률이나 정재형과 같은 이들이 양희은을 재발견하고 무게감을 담보한 음악을 남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갖는다. 

어쨌든 양희은은 세월을 견뎌냈고, 다행히 음악 안에 머물렀다. ‘또 하나의 본업’인 연기나 예능을 통해서일지언정 대중 앞에 남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고, 아이유와 같은 정상급 현역과의 작업(<한 낮은 꿈>)을 통해 뮤지션으로서의 존재감도 잃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은 음악인 양희은을 이야기하는 데 조금은 이례적인, 바쁜 한 해로 기억될 조짐이다. 가장 흥미롭게 목격되는 지점은 우선 윤종신·이적 등 후배 싱어송라이터들과의 작업인 <뜻밖의 만남> 연작이다. 이 일련의 작업을 들으며 반갑게 느껴졌던 이유는 개별곡의 충실한 완성도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이 곡을 소화한 양희은이라는 가수, 혹은 스토리텔러의 관용성을 재차 확인했기 때문이다. 편곡의 지향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언제나처럼 자연스레 풀어내는 것만으로 이적·윤종신이라는 두 명의 전혀 다른 가수의 음악을 마치 하나의 작품군처럼 잇는 그의 목소리에는 음악을 만드는 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담겨 있다.

장미여관과 김나영이 출연하는 양희은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옹달샘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의 매혹 

신작 <양희은 2014>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차이가 있다면 <뜻밖의 만남> 시리즈가 타이틀처럼 ‘조우’, 즉 양희은이라는 목소리가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만나 그 개별의 음악성을 해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에 반해, 신보는 좀 더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양희은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런 소소한 생활의 발견과 관계에 대한 관찰에 어울리는 장치로 그가 선택한 음악적 장치가 스윙, 스탠더드 팝, 라틴 등 일종의 ‘라운지’ 형태의 음악 장르라는 점은 이채롭다. <나영이네 냉장고> <막걸리> <김치 깍두기> 등 유쾌한 곡에서 툭툭 던지듯 무리 없이 리듬을 타는 모습에서는 딱히 표현하기 힘든 관록이, ‘장미여관’ 육중완의 성숙한 음악성이 도운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나 마치 디온 워익이나 배리 매닐로우의 전성기 시절 음악을 떠올리게 만드는 <하루만> 같은 어쿠스틱 발라드 넘버에서는 목소리가 가진 질감 자체가 편곡의 일부가 되는 탁월함을 확인할 수 있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작곡했던 작곡가 김정욱이 선사한 엑조틱한 선율의 <봄 그리고 가을>, 양희은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감성의 핵심이 응축된 것만 같은 <아버지>의 뭉클함은 어른을 위한 음악의 규범 같은 것을 제시한다. 전체적으로 큰 무리가 없는 고급스러운 트랙의 집합이다.  

<양희은 2014>나 <뜻밖의 만남> 시리즈 등은 모두 결과적으로는 가요계 후배와의 공동 작업에 가까운 뉘앙스가 담겨 있지만 그렇다고 트렌드와의 인위적인 대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령 직접 쓴 곡을 부르지 않는 보컬리스트가 젊은 후배와 작업했을 때 나타나게 마련인 일종의 이질감, 다소 작위적인 소통의 노력 같은 것이 감지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의 목소리가 가진 질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여전히 1990년대에 이병우와 그랬던 것 같은, 혹은 이 앨범의 몇몇 곡에서 드러나는 클래시컬한 어쿠스틱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전면에 의식적으로 배치된 경쾌한 스윙풍 넘버는 의도만큼 썩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 보기 힘들다.

필자는 늘 양희은이라는 가수가 가진 보컬의 독특한 존재감은 마치 오래된 바이올린이 시간을 두고 얻어낸, 기계적으로는 모방이 불가한 음색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트렌드에 구애받을 필요까진 없어도 그만큼 시간을 두고 꾸준히 소리를 내주는 것 역시도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8년 만의 신작은 그만큼 반갑고, 동시에 걱정스럽기도 하다.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그의 오리지널한 작업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중요한 점은 그가 단순히 이름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음악적인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 과거의 명성과 오랜 세월 구축해온 인간관계로 만들어진 위상이 아니라 현재와 소통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의 경주. 다행히 양희은의 목소리는 또다시 세월을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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