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에 홀딱 빠진 게 무슨 큰 죄라고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12.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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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흔드는 ‘한드 열풍’에 규제 칼 빼든 중국 정부

“한국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볼 수 없다니, 이건 내 생활의 활력소를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다.”(푸젠(福建)성 샤먼(廈門)의 한 네티즌) 11월2일 중국 언론은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가장 엄격한 수준으로 해외 드라마의 인터넷 방영 관리 방법을 발표할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올해 방영된 중국 드라마의 30% 수준만 인터넷에서 방영할 수 있고 국가와 소재의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TV와 똑같이 광전총국으로부터 먼저 심사를 받은 뒤 인터넷에 방영해야 하기에 지금처럼 동시 방송은 불가능해진다.

이후 몇 주간 중국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떠들썩했다. 14억 중국인 사이에는 엄청난 한국 드라마(한드)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대다수 중국 네티즌은 “중국 드라마보다 해외 드라마 수가 더 많고, 그중 한드의 비율이 압도적인데, 이를 대폭 낮추고 국가별로 배분한다니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내년부터 중국 드라마 30% 수준만 허용

현재 우리가 갖는 중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 중 하나가 ‘저작권 침해 국가’라는 것이다. 4~5년 전만 해도 이런 시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 방송사와 문화연예 기업은 중국에서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짝퉁 DVD를 통해 1억명의 관객을 끌어모았지만, 정작 제작사인 신씨네는 중국에서 단 한 푼도 벌지 못했다는 게 단적인 사례였다. 드라마 <대장금>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어도 정작 대박을 터뜨린 곳은 중국 내 방영권을 산 후난(湖南)TV였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우리 정부와 방송사는 중국 측에 꾸준히 항의해왔지만, 정작 힘을 발휘한 곳은 미국의 문화 콘텐츠업체들이었다. 그들은 1990년대부터 미국 정부를 움직여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해왔고,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특허법·상표법·저작권법 등 지적재산권법을 개정했다. 그 후 눈 가리고 아웅 식이긴 하지만, 문화산업에서 횡행하는 불법과 짝퉁을 몰아내기 위해 여러 차례 단속을 벌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전과 달리 강력해졌다. 특히 자국의 국력이 커지자 문화산업이 국가 이미지를 좌우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거리에 범람하던 불법·짝퉁 문화상품에 대해 철퇴가 가해졌다. 그 범위는 온라인으로도 확대됐다. 유쿠(優酷)·투더우(土豆)·아이치이(愛奇藝)·써우후(搜狐) 등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는 수천 명의 단속요원을 고용해 불법으로 업로드되는 외국 영화·드라마·예능 등을 찾아내 삭제했다.

그 덕분에 중국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는 더 이상 불법 동영상의 천국이 아니다. 그들은 외국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의 판권을 정식으로 사들여 중국 네티즌에게 스트리밍 서비스한다. 11월18일 로이터통신은 “최근 2년간 중국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가 한국·미국·영국의 영화 콘텐츠와 방송 프로그램을 수입하기 위해 1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보도했다. 6억3200만명의 중국 네티즌을 사로잡기 위해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콘텐츠 확보다. 특히 올해 들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간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지난 9월까지 유쿠·투더우 등 동영상 사이트들의 외국 콘텐츠 판권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나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한드의 온라인 판권 수출가격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해 초만 해도 한드의 대중(對中) 판권 판매가는 회당 1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민호와 박신혜가 주연한 <상속자들>은 회당 3만 달러를 받았다. 뒤이어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는 <대장금>에 버금가는 히트를 기록하면서 판매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박유천이 주연한 <쓰리데이즈>가 회당 5만 달러를 돌파했고, 조인성·공효진이 주연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회당 12만 달러에 달했다. 얼마 전 종영된 정지훈과 크리스탈 주연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회당 20만 달러에 팔려 잭팟을 터뜨렸다.

불과 1~2년 만에 한드의 판권 가격이 20배나 폭등한 것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간의 경쟁이 심화된 데다 중국 젊은이들에게 한국 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현재 중국 1030세대 사이에 한드 즐기기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정착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예능은 대다수 여성과 일부 남성에게 인기가 높다. 상하이에서 직장을 다니는 둥제(35·여)는 “주변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반드시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머지않아 북한 따라잡겠다” 비아냥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왜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아 찬물을 끼얹으려 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국 문화산업을 보호하고 외국 문화·풍습 유입을 억제해 사회 분위기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중국 인터넷 동영상 시장의 매출은 128억 위안(약 2조304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42%나 급증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21세기 성장동력의 하나로 문화산업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자국 내에서 유튜브의 접속을 철저히 막았다. 그 덕분에 중국의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는 거침없이 성장해 몸집을 키웠다. 광대한 플랫폼을 갖춘 중국은 이제 자국 콘텐츠로 그 내용물을 채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못하다. 그래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 콘텐츠가 먼저 중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한드는 상상력이 억제당하고 정형화된 중국 드라마가 넘지 못할 벽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현실을 규제로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 콘텐츠에 빠져들어 있는 중국인들의 눈을 자국 콘텐츠로 돌리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중국 네티즌들은 SNS에서 “머지않아 북한을 따라잡겠다”며 중국 정부를 비꼬고 있다.

현재 중국 인터넷 동영상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써우후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 방안은 외국 콘텐츠 구매를 줄이라는 것”이라며 “이런 통제가 당장 성과를 거두더라도 방문자와 광고 수입이 줄어들어 결국 인터넷 동영상 시장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위적인 정책으로 인터넷 시장을 바꾸려는 중국 정부의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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