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정윤회에게 경고장 날렸다
  • 김지영 팀장·안성모 기자 ()
  • 승인 2014.12.0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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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거짓말하면 직접 나서겠다” 다시 주목받는 ‘미행 사건’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박지만 미행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시사저널은 3월23일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박지만 EG 회장이 지난해 말 자신을 미행하던 정체불명의 사내를 붙잡아 ‘왜 나를 미행하느냐’고 추궁하자 ‘정윤회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고 실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 회장 측과 대통령 최측근으로 거론돼온 정씨 측 사이에 권력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면서 ‘박지만-정윤회 갈등설’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1월6일 작성한 것으로 적혀 있는 이 보고서는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지시해 경찰 출신인 박관천 행정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 뉴스뱅크이미지
이는 시사저널이 앞서 보도한 내용과 맥락이 맞아떨어진다. 해당 기사에는 ‘미행 사건’에 격분한 박 회장은 미행 사실을 당시 조 비서관에게 알렸고, 조 비서관이 박 행정관에게 정씨에 대한 내사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포함돼 있다. 조 비서관은 올해 4월 청와대를 나왔고, 박 행정관은 2월 일선 경찰서로 복귀했다. 정씨에 대한 내사를 진행하다 좌천됐다는 뒷말이 나왔다.

정씨는 3~4월 시사저널과 10차례 이상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미행한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했다. 정씨는 “만약에 박 회장이 그런 사실이 있다고 그러면 그건 내가 풀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박 회장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그랬는데 기사가 나갔다면 전적으로 당신들(시사저널)이 책임져야 될 문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에게 직접 확인을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후 박 회장으로부터 어떤 내용을 확인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박관천 경정이 12월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정윤회 “박 회장, 자술서 보여준다더니 안 줬다”

최근 정씨가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국정 개입’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서다. 조 전 비서관 역시 인터뷰에 나서면서 두 사람이 대결 구도를 형성한 모양새가 됐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4월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미행 관련 내사를 따지기 위해 조 비서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긴 사실이 확인됐다. 또 조 비서관이 전화를 받지 않자 4월11일 ‘문고리 권력’ 중 한 명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조 비서관에게 전화를 받으라는 말을 하게끔 만든 사실이 드러났다.

미행 사건과 관련한 정씨의 인터뷰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시사저널의 미행 보도가 나온 후 박 회장 측에 전화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박 회장을 직접 찾아갔다. 당시 분위기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박 회장은 내가 미행을 사주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박 회장에게 미행자로부터 받은 자술서를 보여달라고 했다. 박 회장 측에서 이틀 후에 보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연락이 끊겼다.’

정씨의 이 같은 주장은 자신이 제기한 소송을 스스로 부인하는 셈이다. 시사저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그는 이와 별도로 시사저널 기자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본지의 해당 기자들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관련 조사를 이미 받았다. 그런데 정씨가 가장 문제시한 것은 미행 기사였다. 그는 “시사저널이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박 회장 측의 입장을 확인하지도 않고 기사를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박 회장과의 만남을 통해 박 회장이 자신의 미행을 사주한 인물로 확신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또 박 회장과의 대화를 통해 박 회장이 자술서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박 회장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카더라 식으로 기사를 썼다’는 정씨의 소송 사유는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셈이다. 정씨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박 회장이 미행 사실이 있다고 할 경우 “나하고 박 회장하고 풀어야 할 문제”라고 밝힌 것과도 배치된다.

정씨가 자술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는 또 박 회장 측이 연락을 해와 시사저널에 대한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며 법적 대응을 끝까지 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 회장 측이 반격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12월5일 박 회장과 가까운 복수의 인사들의 전언을 통해 박 회장이 “정윤회씨가 지난해 미행 사건에 대해 검찰에서 부인하면 내가 직접 나서서 반박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박관천 경정의 직속상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조사를 받기 위해 12월5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박지만 회장, 검찰 부르면 출두하려 했다”

검찰은 지난 8월 시사저널 기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박 회장을 소환하지는 않았다. 대신 박 회장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냈는데 아직 답변이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씨의 최근 인터뷰와 중앙일보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박 회장이 정씨로부터 미행당했다고 여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당초 박 회장은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한 지인은 “검찰이 부르면 (정씨 지시로 박 회장을 미행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아놓은) 자술서를 갖고 나간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시사저널 소송 사건으로 검찰이 소환하면 출두해 미행 사실을 진술할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이 지인은 9월 초에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회장은 검찰이 부르면 나가서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고 한다. 박 회장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지만 그의 심중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진 후 또 다른 박 회장 지인으로부터 박 회장이 “심란하다”는 심경을 밝혔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정씨가 박 회장을 찾아간 사실은 확인됐다. 하지만 그 내용이 조금 달랐다. 여러 차례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박 회장이 전화를 받지 않자 정씨가 직접 만나러 갔다고 한다. 박 회장을 만난 정씨는 “미행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는 정씨의 인터뷰 내용과 다르지 않다. 박 회장의 지인이 전한 그 이후 상황은 이렇다.

‘박 회장은 정씨가 자기를 찾아와 “제가 미행을 시킨 적이 없습니다. 오해입니다”라며 미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박 회장을 미행했던 사람에게서 받았다는 자술서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이에 박 회장은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 나도 덮고 가겠다”고만 말하고 돌려보냈다. 자술서도 안 보여줬다.’

이 지인은 “박 회장이 나한테 ‘정씨가 미행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박 회장이 정씨에게 자술서를 보여주지 않은 이유도 일부 전해졌다. 박 회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조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제가 해결할 테니 다른 사람한테는 자술서를 보여주지 마시라’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와 자술서를 보여달라는 정씨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날 멀지 않았다”

박 회장이 정씨와 이른바 ‘문고리 권력’을 향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설지 여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박 회장은 전면전을 펼칠 경우 누나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윤회씨의 시사저널 고소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증인으로 출두하게 될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 또한 박 대통령은 물론, 정국 상황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정씨의 주장처럼 박 회장이 소송 취하를 요청했다면 이런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둔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청와대 문건 유출 건과 관련해 세계일보를 고소한 고소인 자격으로 정씨를 빠른 시일 내에 소환할 예정이다. 정씨는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사라진 7시간’ 보도에 대한 소송에서도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다. 정씨는 어떤 때는 고소인으로 어떤 때는 증인으로 서초동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진상조사단 소속의 한 의원은 “시사저널의 보도로 촉발된 비선 실세 논란이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정씨가 이제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들어서는 일도 머지않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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