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떨어지고…인생 2막 새로 연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12.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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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퇴직 임원들 재취업·창업에 눈 돌리는 추세

“한 회사에 입사해서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현직에서 정신없이 지내다 갑자기 시간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상실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에서 퇴직한 임원 임 아무개씨의 말이다. 대기업에서 바늘구멍을 뚫고 임원 자리까지 올라간 임씨. 퇴임 후에도 일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퇴임 임원으로 구성된 ‘협력회사 경영자문단’을 출범했는데 임씨는 제1기 경영자문단으로 활동했다. 그는 “멘토링을 맡았던 협력사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해 나름으로 보람을 느꼈다”며 “하지만 자문 계약 기간이 2년이라서 내년 4월에 활동이 끝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 제3막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많다. 그동안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재능기부 식으로 사회에 전수하고 싶다”고 밝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직장인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 타이틀 따기를 꿈꾼다.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에서 별이 된 이들은 퇴임 이후 어떻게 지낼까. 임씨의 경우처럼 주요 그룹들은 떠나는 임원에게도 어느 정도의 역할과 연봉을 주는 등 일정 기간 동안 예우를 하고 있다.

대기업 퇴직 임원으로 구성되는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봉사단’의 자문위원들이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다. ⓒ 전경련 제공
퇴직 후 상담역·고문역 등 예우

삼성그룹은 사장급 이상 퇴직 임원에게는 3년 임기의 상담역 예우를 하고 있다. 부사장급은 고문(비상근과 상근으로 나뉨)으로, 상무 및 전무급 퇴직 임원은 자문역으로 약 2년 동안 활동할 수 있도록 하며 재직 때 연봉의 70~80%를 지급한다. 또 계열사별로 퇴직 임원의 전직을 지원하고 재취업을 알선하는 재취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1년 ‘경력컨설팅센터’를 확대 개소해 임직원들의 퇴직 후 재취업이나 창업을 돕고 있다. 현재 경력컨설팅센터는 서울·수원·기흥에서 운영 중이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현대차는 ‘자우회’, 기아차는 ‘기우회’라는 이름의 퇴직 임원 모임이 있다. 전무급 이상 고위 임원들을 퇴직 이후 상담역이나 고문역에 1~2년 정도 위촉한 후 퇴임 당시 연봉의 50~70% 정도를 지급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는 워낙 협력사가 많다 보니 대개는 협력사 쪽으로 재취업을 알선하는 식으로 퇴직 임원에 대한 예우를 한다”며 “퇴직 임원들은 전문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라 재취업 폭이 넓은 편”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통상 2년여 동안 사장 이상 퇴직 임원에게는 고문, 부사장 이하 퇴직 임원에게는 자문역 예우를 하면서 고문료와 자문료 및 사무실을 준다. 또 퇴직 임원 예우 차원에서 퇴임 후 새로운 사업 구상 및 전업 준비를 지원하는 ‘LG크럽’을 운영 중인데 지난해에는 이 크럽을 위해 서울 서초동의 5층짜리 건물을 162억원에 매입했다. 퇴직 임원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LG전자·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은 퇴직하는 임원의 전직 알선 또는 창업과 취업을 지원하는 ‘아웃 플레이스먼트(Out Placement)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대다수 대기업은 퇴직한 임원을 직급에 따라 1~2년간 상담역이나 고문역으로 임명해 현직 당시 연봉의 50~80% 수준의 급여를 주고 있다. 현대·기아차와 같이 퇴직 임원을 위한 모임이 구성돼 있는 곳도 많은데 주요 대기업의 은퇴 임원 모임으로는 삼성그룹 성우회, 두산그룹 두산회, SK그룹 유경회 등이 있다.

예전에는 퇴직 임원들이 기업에서 제공하는 여러 혜택을 누리면서 여유롭게 인생 2막을 설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퇴직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재취업이나 창업 등에 일찌감치 눈을 돌리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조기 퇴직 임원들이 재취업 시장에 몰려들면서 일자리 부족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대기업의 퇴직 임원을 찾는 중소기업 수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퇴직 후 전문성을 발휘해 중소업체에 재능기부를 하는 임원도 많다. ⓒ 전경련 제공
전문성 발휘해 재능기부 하는 사람 많아

이 때문에 ‘경력 단절 임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을 우려해 1~2년의 고문역이나 자문역도 마다하고 바로 취업을 위한 재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40대 이상 인력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가입자 수는 2012년 4495명에서 2014년 11월 현재 8700명을 넘어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가운데는 대기업 출신 인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관계자는 “전경련이라는 단체 특성상 센터에 대기업 출신 퇴직자가 많은 편”이라며 “이들 중에는 주로 부장급이 많은데 임원 출신도 더러 있다”고 밝혔다.

취업이나 창업이 아닌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기부 활동에 전념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대기업의 퇴직 경영자나 임원으로 구성되는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봉사단’ 지원자가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경영자문봉사단은 2004년 7월 삼성·현대차·LG·포스코·한화 등 주요 그룹의 전직 CEO(최고경영자) 및 임원 40명이 자문위원으로 구성돼 발족했다. 퇴직한 대기업 CEO와 임원들의 경영 기법과 노하우를 중소기업 경영 자문에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무보수직임에도 올해 31명 정원의 신규 경영자문위원 모집에 쟁쟁한 대기업 출신 인사들이 91명이나 지원해 2.9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쟁률이 3년 전 1 대 1, 지난해 2 대 1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원자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난 셈이다. 지난 8월 31명의 신규 경영자문위원이 영입되면서 현재 대기업 CEO 및 임원 출신으로 구성된 136명의 자문위원이 활동 중이다. 배명한 전경련 자문단 지원팀장은 “대기업 고위 경영진 사이에서 명예직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어 퇴직을 앞두고 관심을 보이는 분이 꽤 많다”며 “대기업 임원진의 고급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전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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