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내시경은 위험하니 절대 안 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1.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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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시절 청와대 참모진과 옥신각신…역대 대통령 주치의 세계

조선시대 승정원 업무 지침서인 <은대조례(銀臺條例)>에는 왕의 건강을 절대 외부로 누설해서는 안 되는 1급 비밀 사항으로 기록하고 있다. 베일에 싸인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현대판 어의(御醫)로 불리는 대통령 주치의다. 4월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화제가 되었을 때에도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대통령 주치의가 주목을 받았다.

정부 수립 초창기인 이승만 대통령(재임 기간 1948~1960년)과 윤보선 대통령(1960~1962년) 시절에는 공식적인 대통령 주치의가 없었다. 인맥이 닿는 의사가 개인적으로 대통령의 건강을 살폈다. 두 대통령 모두 김승현 박사가 담당했다. 그는 197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만든 김영무 변호사의 선친이다. 이 대통령은 1957년부터 류제한 서울위생병원 원장과도 건강 문제를 상의했다. 당시 주한 미국인을 주로 치료한 이유로 류 원장은 닥터 루로 통했다. 이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한 이후에는 현지 의사 토마스 민 박사가 임종 때까지 주치의 노릇을 했다. 윤 대통령은 20년 동안 당뇨를 앓았지만 93세까지 살았다. 김 박사는 두 대통령 주치의 임무를 마친 후부터 1993년 초까지 서울에서 개원의로 있다가 타계했다. 

왼쪽부터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 내에서 조깅하는 모습,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들과 청와대 뒷산을 오르는 모습,2011년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 양수리 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이 자택에서 단전호흡을 하는 모습. ⓒ 청와대사진기자단·연합뉴스
‘비운의 주치의’ 민병석, 미얀마 폭발로 사망

공식적인 주치의 제도는 박정희 대통령(1963~1979년) 시절에 생겼다. 1호 대통령 주치의는 내과 개원의인 지홍창 박사다. 종두법을 도입한 지석영 선생의 종손인 그는 군의관 시절 박 대통령을 알게 됐다. 또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 원장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박 대통령은 1967년 가벼운 두통이 이어지자 이비인후과 질환으로 진단받고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주치의가 입회한 가운데 김홍기 이비인후과 교수가 집도했다. 지 박사는 당시 언론에 “수술 후, 육 여사가 우스갯소리를 하자 대통령이 너무 크게 웃었는데 수술 부위가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1970년부터는 민헌기 서울대 의대 교수가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졌는데 대통령 내외의 마지막을 지킨 주치의로 유명하다. 1974년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육 여사의 수술을 총지휘했고, 1979년 대통령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것으로 소임을 마쳤다. 재임 기간(1979~1980년)이 가장 짧은 최규하 대통령은 주치의를 두지 않았다. 민 교수가 개인적으로 최 대통령의 건강을 돌봤다.

전두환 대통령(1980~1988년)의 주치의는 민병석 가톨릭의대 교수다. 비(非)서울대 출신이고, 유일한 가톨릭의대 소속 의사다. 본래 최규완 서울대 의대 교수가 유력 후보였지만 막판에 강남성모병원장이던 민 교수가 낙점됐다.

그러나 1983년 대통령의 아시아 6개국 순방을 수행하다 미얀마 폭발 사건으로 순직한 비운의 주치의가 됐다. 이후 한용철 서울대 의대 교수가 1986년까지, 그 이후부터 퇴임까지는 김노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주치의로 일했다. 치과 주치의였던 양영태 박사에 따르면 전 대통령은 치아가 건강해 장수할 체질이었고,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코를 골고 잠을 잘 정도로 대담했다고 한다. 운동도 꾸준히 해서 83세인 현재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육사 시절에는 축구선수로 활동했고 대통령이 된 후엔 선수급 실력을 갖춘 테니스와 골프를 즐겼다.

전 대통령의 낙점을 받지 못한 최규완 교수는 노태우 대통령(1988~1993년)의 주치의가 됐다. 대통령의 경북고 후배다. 주치의는 대통령의 식사·운동·생활습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 교수는 “대통령에게 과일 위주로 식사하고 하루 1만 보(步)를 걸으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만보계를 차고 걷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중에 만보계가 불티나게 팔렸다.

주치의와 의무대장만 아는 일화가 있다. 대통령은 외국 순방 때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번은 대통령이 비행기 안에서 주치의에게 잠을 잘 자는 방도를 물었다. 최 교수는 “보통 신경안정제 등을 처방하는데 그날은 꾀를 내서 약한 감기약을 새로 나온 신약이라며 건넸다. 효과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는데 다음 날 대통령은 숙면을 취해 몸이 가뿐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의학적으로 입증된 위약 효과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인연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1995년 당시 노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구치소장의 허락을 받아 최 교수로부터 건강진단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 국가대표 선수 출신을 청와대로 불러 함께 테니스를 즐기며 체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퇴임 후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82세인 노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고, 미국 메이오 클리닉에서 소뇌가 점점 위축되는 희귀 질환 판정을 받은 후 10년 넘게 투병 중이다.

서울대와 연세대, 주치의 놓고 경쟁 치열

김영삼(YS) 대통령(1993~1998년)도 경남고 후배인 고창순 서울대 의대 교수에게 자신의 건강을 맡겼다. 대통령의 건강 비결은 조깅이다. 당시 방한한 미국의 젊은 클린턴 대통령과 같이 조깅하고도 더 숨이 차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30년 동안 해온 조깅을 1997년 중단했다. 운동량이 너무 많고 나이가 들어 무릎관절에 충격을 주는 조깅보다 수영이 바람직하다는 주치의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YS는 일과 후 청와대 전용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겼다.

한번은 대통령의 위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청와대 의료진 간에 가벼운 논쟁이 벌어졌다. 수면내시경으로 고통을 덜어주자는 측과 막 도입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마취제로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했다. 결국 YS는 일반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마취로 대통령이 의식을 잃으면 사실상 ‘대통령 궐위 사태’에 준하는 상황이 된다. 1996년 심장 수술을 받은 러시아 옐친 대통령은 몇 시간 동안 핵 가방을 총리에게 넘겨준 바 있다.

김대중(DJ) 대통령(1998~2003년)은 처음으로 연세대 의대 교수를 주치의로 위촉했다. 허갑범 연세대 의대 교수는 1990년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관철하기 위해 2주간 단식투쟁을 끝내고 입원했을 때 인연을 맺었다. 대통령 당선 전 주치의였던 장석일 서울성애병원 내과 전문의는 청와대 의무실장이 됐다. 그는 “한번 주치의는 영원한 주치의”라며 2009년 서거 때까지 대통령 곁을 지켰다. 허 교수는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일조했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 김대중 후보는 건강 이상설에 휘말렸다. 허 교수가 대통령 직무 수행에 건강상 문제가 없다는 진단서를 발급함으로써 무마됐다. 당시 주치의 자리를 두고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 간에 눈치전이 치열했다. 연세대 의대는 대통령 후보 시절 주치의인 장석일 박사도 연세대 의대 출신인 데다 평민당 총재 시절부터 건강을 살펴왔다는 점 등 의료의 일관성을 앞세웠다. 서울대 의대는 최고 의료진과 의료 장비를 갖췄고, 무엇보다 청와대와 가깝다는 점을 내세웠다.

건강의 3대 조건은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는 것인데, DJ는 ‘잘 자는’ 체질이었다. 점심 식사 후 20~30분 숙면을 취하거나 이동하는 차량에서 5~10분씩 쪽잠을 잤다.

또 대식가로 알려질 만큼 ‘잘 먹는’ 대통령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허리둘레가 늘어난 점이 주치의의 고민거리였다. 허 교수는 대통령에게 식사량을 줄이라고 권고했고 그 후 대통령의 허리둘레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운동량은 부족했다. 허 교수는 일주일에 1~2회 수영을 하라고 권했다. 대통령은 1998년 4월부터 청와대 전용 수영장에서 퇴근 후 1시간씩 이희호 여사와 함께 수영을 즐겼다. 대통령은 섬 출신이어서 물에 익숙하지만 1971년 총선 지원 유세를 하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중단한 지 27년 만에 수영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현 주치의는 최초의 산부인과 전문의

노무현 대통령(2003~2008년)은 송인성 서울대 의대 교수를 주치의로 내정했다. 당시에도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가 주치의 자리를 놓고 경합했는데 캐스팅보트는 권양숙 여사가 쥐었다. 청와대는 당시 “각 대학병원으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은 뒤 권 여사의 면접을 거쳐 송 교수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수술까지 받을 정도로 오랜 기간 허리디스크 증세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한방 치료를 받았다. 이것이 최초로 한의사 주치의를 둔 배경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과거 한방 치료로 효과를 많이 봤다. 한방 주치의를 두면 양·한방 협진도 이뤄지니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현대 경희대 한의대 교수가 한방 주치의가 되자 한방의 국민적 위상이 높아졌다. 신 교수에 따르면 대통령은 봄·가을에 한약을 먹었고 해외 순방 때는 사향·인삼·녹용 등을 재료로 한 공진단으로 보양했다. 대통령의 건강 유지법은 도인체조다. 신체와 정신을 가다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요가와 비슷한 스트레칭이다. 한번은 대통령의 관절 꺾기가 청와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사진기자들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자 권양숙 여사가 너무 흉한 모습이라며 촬영을 말린 에피소드가 있다.

이명박(MB) 대통령(2008~2013년)은 최윤식 서울대 의대 교수를 주치의로 삼았다. 두 사람은 2002년 자녀의 결혼으로 사돈이 됐다. 최 교수는 MB가 서울시장 시절부터 건강을 살펴왔다. 한방 주치의로는 류봉하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원장이 내정됐다. 대통령은 테니스로 건강을 유지해오고 있다. 오래전부터 알던 테니스 코치를 청와대에 상주시켜 테니스를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만큼 산부인과 전문의를 주치의로 삼았다. 역대 주치의는 대부분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였지만, 박 대통령은 이병석 연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를 주치의로 위촉했다. 대통령은 2006년 서울 신촌에서 지방선거 유세 도중 ‘커터칼 테러’를 당해 가까운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연세대 의대는 이런 인연으로 대통령 당선 후 주치의 임명을 은근히 기대했다. 결국 이 교수가 내정됐지만 2014년 9월 의대 학장 업무 등 개인적 사정으로 사임하면서 서창석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방 주치의는 박동석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교수다. 박 대통령은 단전호흡·요가·국선도로 건강을 다스린다. 특히 국선도를 20년 이상 수행했다.

 


대통령 주치의, 차관급에 무보수 명예직 


역대 정권마다 각 병원에서 내부적으로 논의를 통해 선정한 주치의 후보를 청와대에 알린다. 청와대는 각 후보에 대해 신원조회를 거쳐 경력 등을 검증하고 대통령이나 영부인의 면접을 통해 최종적으로 주치의를 위촉한다.

의사로서 대통령 주치의는 명예다. 실력과 도덕성을 인정받은 셈이고 임기 후에도 주치의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주치의를 낸 병원도 홍보 효과를 본다. 그렇다고 주치의가 청와대에 상주하지는 않는다. 소속 병원에서 진료를 보다가 2주일에 한 번 정도 청와대를 찾아 대통령의 건강·음식·잠자리 등을 살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통령과 30분 거리에 있어야 한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서창석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로 내정되자 서울대병원 본원으로 발령이 났다”며 “청와대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치의는 기사가 딸린 관용차 제공 등 차관급에 준하는 예우를 받지만, 소액의 수당 외에 월급이 없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주치의 혼자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진료 과목별로 30여 명 규모의 자문의단을 구성할 수 있다. 대통령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면 주치의가 자문의단 회의를 소집한다. 청와대에는 치과 시설 등을 갖춘 의무실이 있다. 혈압계나 청진기 등 일반적인 의료 기구가 있어 주치의가 왕진 가방을 들고 청와대를 방문하지는 않는다. 의무실에는 의사 출신 의무실장이 상주한다. 군의관 출신 중령급 의무대장도 있다.

대통령이 아플 경우 웬만한 진료는 의무실에서 처리하지만,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하면 청와대 앞 서울지구병원으로 간다. 박정희 정부 시절 기무사 내에 만들었으며, 사실상 대통령 일가를 위한 병원이다. 당시 흔하지 않은 소아과 전문의까지 확보하는 등 최고 의료진(군의관·간호장교)과 시설을 갖췄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총격을 입은 뒤 옮겨진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서울대병원에 대통령 전용 특실이 있었다. 이승만 정부 때부터 대통령은 서울대병원 구건물에 있던 특실을 이용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8년 구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무렵, 대통령 전용 병실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12층에 대통령과 총리 전용 병실이 마련됐다. 80평 규모의 대통령 병실은 입원실, 집무실, 가족실, 경호원실, 응접실, 주방 등으로 구성됐다. 그 맞은편에 있던 60평 규모의 총리 전용 병실은 1990년에, 대통령 전용 병실도 1994년에 일반 병실로 개조됐다. 대통령의 건강 정보는 국가 비밀인데, 서울대병원은 일반인에 노출돼 대통령이 이용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전직 대통령이 두어 번 이용하는 정도로 이용률도 낮았다.

대통령의 지방 방문이나 휴가에도 주치의가 함께한다. 대통령 휴가 때 주치의가 동행하는 틈을 타서 의무실장이 휴가를 간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오르면 주치의는 물론 청와대 의무실장과 의무대장도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탑승한다. 감기·몸살 약, 항생제, 소화제 등 응급 약품을 지참한다. 일정이 빡빡한 외국에서는 대통령의 건강을 매일 아침마다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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