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남겨두고 안심하고 떠날 공동체 만들고 싶다”
  • 부산·밀양=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1.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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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내려가 농사지으며 발달장애아 치료하는 두 아버지

장유성씨(57)는 부산 도시농업 시민협의회 대표다. 그는 자신을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밥 먹고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게으른 도시농부”라고 소개했다. 교육상담연구소장으로 20년 동안 재직했던 그다. 입시 전문이었고, 보통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 원형(16)이를 교육하는 것은 여느 학생들을 상담하는 것과 달랐다.

원형이는 ‘색’과 ‘묶음’에 집착했다. 색색의 칫솔을 묶음으로 사달라고 졸랐다. 칫솔 값이 생활비처럼 들었다. 연필도 몇 다스씩 사야 했다. 색종이를 사서 시도 때도 없이 접고 자르는 통에 온 집이 색종이로 가득 찼다. 원형이를 돌봐주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고민하다 ‘삶의 전환’을 택했다. 가족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원형이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다.

직접 기른 농작물을 들고 환하게 웃는 장원형군과 아버지 장유성 부산 도시농업 시민협의회 대표. ⓒ 부산 해마루학교 제공 , ⓒ 시사저널 구윤성
그가 선택한 것은 ‘도시농업’이었다.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는 부산귀농학교의 생태귀농학교와 도시농부학교를 수료하면서 준비를 마쳤다. 텃밭을 가꾸면서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렸다. 집에도 농작물을 심어 자연을 옆에서 느끼게 했다.

결과는 좋았다. 원형이의 호기심은 자연으로 향했다. 일명 ‘파란 콩나물 사건’이 그 예다. 그는 “집에서 기르는 콩나물 색이 모두 푸른색으로 변했다”고 했다. 콩나물을 기르려면 햇빛을 받지 못하게 검은 천이나 비닐봉지로 덮어둬야 하는데 호기심을 느낀 원형이가 콩나물 화분을 매번 열어보기 때문이었다. 열어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얼마나 자랐는지 콩나물을 손바닥에 얹어 길이를 재보기도 했다. 직접 재배한 농작물은 집 근처 동물원에 가지고 가 동물들에게 원형이가 직접 먹인다. 자신이 기른 작물을 동물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아이 덕에 장 대표는 보람을 느낀다.

‘도시농업 통한 장애인 행복 찾기’

그는 경험을 토대로 ‘도시농업을 통한 장애인 행복 찾기’ 특강을 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치유하며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치유형 도시농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텃밭을 조성해 장애인들이 도시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1만원의 행복 텃밭’ 운동도 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생일감사운동’을 준비 중이다. 자신의 탄생과 건강에 감사하고 1년에 한 번이라도 장애인의 복지를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비장애인이 각자의 생일에 1만원씩을 기부하는 국민운동이다. 장애인들은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기부에 보답한다.

부산 지역 장애자녀 학부모 모임 토론회를 통해 장애아를 키우는 학부모들의 아픔과 고민을 공유하는 자리도 꾸렸다. 그는 “보통은 장애아의 곁에 엄마들이 있지만 아빠의 참여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온가족이 뭉쳐서 아이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임 시간도 아빠들이 참석할 수 있는 오후로 옮겼다.

보통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 대표는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아이를 남겨놓고 안심하고 떠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야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주진호 밀양 로컬푸드 대표와 아들 성철군. ⓒ 밀양 로컬푸드 제공
함께 체험하는 삶, 긍정 마인드 키운다

경남 밀양에는 ‘밀양로컬푸드 영농조합법인’이 있다. 가까운 농장에서 친환경 먹거리를 재배하고 제철 먹거리를 직거래로 배송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9명. 이 중 장애인이 2명, 노약자가 4명, 이주 여성이 1명이다. ‘영농조합’이라는 말이 무색한 작은 창고형 건물에서 이 지역 농산물이 ‘착한 농부 꾸러미’로 만들어져 판매된다. 주진호 대표(52)는 늘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거래하는 현장의 중심에 있다.

그는 금융인이었다. 은행에 20년 동안 재직했고 부지점장까지 승진했다. 서울에 아파트도 마련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가 갑자기 은행을 그만두고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갔다. 아이 때문이었다. 주 대표의 아들 성철(16)이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탓에 주먹다짐도 몇 번 있었다. 복도를 걸을 때는 ‘우측통행’이라고 했는데 왼쪽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길을 비켜주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는 성철이 때문에 아이들끼리 싸우기도 했다. 선생님께 꾸지람도 자주 들었다.

성철이가 여섯 살 때 발달장애라는 것을 알고 주 대표는 좌절했다. ‘우리 애가 왜 저럴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좋다는 병원은 다 데려갔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바깥으로 돌면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에게 하소연 했다.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을 마련해주고, 통장에 돈을 많이 넣어두고 매달 이자를 받게 하면 성철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주 대표는 잘 알았다. 누군가 도장을 들고 와서 성철이를 유혹하면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 애가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농촌 공동체야말로 발달장애아동들이 일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발달장애라고 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채소를 다듬는 작업을 할 때, 덜 짓무른 채소와 더 짓무른 채소에서 떼어내는 양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대표는 발달장애아들이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 발달장애아동 작업장에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건어물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할 때 장애인용 저울을 사용했다. 이 저울은 무게가 턱없이 부족할 때는 빨간색, 조금 부족할 때는 노란색, 무게가 정확하게 측정되면 초록색으로 표시된다. 빨간색일 때는 주먹으로 많은 양을 담게 하고, 노란색이 표시되면 손가락으로 조금씩 건어물을 담게 한다. 그렇게 해서 초록색이 되는 순간 포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 대표가 주력으로 삼은 품목이 ‘쌀’이다. 곡물도 장애인용 저울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달장애아들이 얼마든지 계량이나 포장에 참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성철이는 아빠와 주말마다 농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성철이는 많이 좋아졌다. 자연에서 뛰놀며 활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분노가 가라앉았고 아이들을 때리던 습관도 없어졌다. 주 대표는 성철이가 중학교를 마치면 어떤 일을 할지 선택지를 줄 계획이다. 그는 “아이의 성향을 가장 잘 아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특히 중학교 이상부터는 아빠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심하고 가정적인 부분은 엄마가 맡고 사회적인 부분은 아빠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맞는 일을 하게 해주려면 함께 체험하면서 그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주 대표. 그의 농장은 ‘농업’을 체험하려는 발달장애아와 그 부모들에게 항상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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