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오른 후 30대 중반 이전 은퇴”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1.0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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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투어 석권하고 LPGA에 도전하는 김효주

KLPGA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12억원 이상의 상금 획득(신기록), 메이저 대회 첫 출전(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롯데와 5년간 65억원 스폰서 계약(인센티브 별도), 에비앙 우승으로 2015년 LPGA투어 직행. 프로골퍼 김효주가 만든 기록이다. 우승과 신기록, 큰돈으로 이뤄진 이 거대한 성공담의 주인공이 올해 20세의 대학 1년생이라는 게 왠지 낯설다. 그럼에도 이 2014학번 대학생은 자신의 성공담에 무덤덤하기까지 했다.

2014년 KLPGA투어 대상·다승왕·상금왕·최저타수상 4관왕을 하고 2015년 LPGA투어 참가를 위해 1월5일 출국하는 김효주를 만났다. 그의 연말은 바빴다. KLPGA 대상 등 상 받는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왔다. 시즌 준비를 위해 1월 초 태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라식 수술 일정까지 잡아놓았다.

ⓒ 시사저널 구윤성
LPGA 참가에 대한 얘기부터 물어봤다. “부담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 부담은 없다. KLPGA는 (성적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거긴 경험을 쌓으러 가는 것이라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지난 12월15일 골프라이터스클럽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남자부 상을 탄 노승렬은 2015년에 LPGA투어에 본격 참가하는 김효주에게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고 조언했다. 그 말에 김효주의 대답은 당돌했다. “여자부는 남자와는 달리 언니들도 많아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드디어 생각했던 투어를 뛰는구나’라는 기대가 있다. (힘들다고 해도) 내가 가서 겪어봐야 아는 것이니까. 안 힘들면 계속하는 것이고….”

김효주의 특징을 여기서 찾는 사람이 많다. 별다른 기복이 없고 급격히 무너진 적도 없다. 긴장을 안 해서일까. “긴장 많이 한다. 긴장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는 내가 할 일을 계속하는 것뿐이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다 되지는 않는다. 골프가 확률 게임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아는 것뿐이다. 미스가 나도 크게 안 망가지게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글보다는 버디 2개가 더 좋다. 예를 들어 두 가지 선택, ‘모 아니면 도’와 ‘전체적으로 좀 더 나아지는 쪽’ 두 가지가 있다면 나는 후자를 택한다. 골프는 한순간이 아니다. 네 시간 반 동안 하는 경기다. 한 홀씩 기회가 오고 위기가 온다. 내가 마무리를 쉽게 할 수 있는 쪽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는 긴장을 하면 ‘내가 긴장했구나’라고 인정한다. “긴장을 풀기 위해 복식호흡도 하고 그래 보는데, 긴장 풀이는 그냥 하던 대로 분위기대로 하는 게 잘 맞는 것 같다. 긴장해서 다르게 행동하고 그러면 내 기준점을 잃는다. 긴장했으면 ‘긴장했구나’라고 생각하고 캐디 오빠한테 ‘나 긴장한 것 같다’고 말한다. 긴장도 내 일부니까.”

그는 카운슬링도 세 번 받아봤다고 한다. 카운슬링 의사의 역할은 처방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었다. “어떻게 처방하기보다는 내 마음의 얘기를 하게 해줬다. 그게 좋았다. 아빠나 가족이라고 해도 내가 못할 말이 있다. 가족이라고 말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김효주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수다다. 인터뷰 도중, 시상식 도중에도 꼼지락 꼼지락 스마트폰을 두드려 카카오톡으로 누군가와 소통한다. “힘들 땐 카톡 하면 된다. 친한 사람에게 카톡 하다 보면 웃음이 나온다. 마음에 맺힌 것은 수다나 카톡으로 푼다. 친한 친구 두어 명, 언니들과 떠든다. 전화통화로 듣는 것 30분, 말하는 것 30분. 그러다 피곤해지면 ‘이제 카톡 해요’하고 넘어간다(웃음). 그러다 보면 크게 힘들어 하고 회의하고 그럴 일이 없다.”

2014년 9월15일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김효주의 아버지가 태극기를 둘러주고 있다. ⓒ 연합뉴스
“수다나 카톡으로 스트레스 푼다”

자신의 골프 실력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고 묻자 “골프는 칠 때마다 다르고, 생각 하나 차이에도 샷이 달라지니까 어느 정도 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감은 있지만 내가 어느 정도 칠 것이다 그런 확신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요즘 가장 자주 받는 질문 두 가지도 이와 관련이 있다. 2014년을 평정하자 그에게 쏟아진 질문은 ‘2015년 투어 목표’와 ‘2014년 시즌에 대한 평가’였다.

그의 대답은 “모르겠다”다. “내가 올해 이렇게 (우승을) 많이 할 줄 몰랐다. 프로 데뷔 이후 첫 우승(2012년 현대차 차이나 레이디스 오픈) 이후 우승이 없었다(그해에도 준우승 등 톱10에 자주 들었고 2013년 KLPGA 최저타수상과 신인상을 탔다). 주위에선 ‘맨날 톱10에 드는데 뭐가 힘드냐’고 했지만 나는 결과에 만족을 못했다. 그때 느꼈다. 한 해 시즌이 끝날 때쯤 ‘부담을 안 가진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부담을 너무 가졌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기를 했나’ ‘내 골프를 하고 싶은데, 내가 좋아서 치는 건데 내가 왜 보여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내 것 하자. 내 것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2014년엔 잘됐다.”

김효주의 아버지 김창호씨는 ‘잠잠했던’ 2013년에 대해 “내가 조바심을 낼 게 아니라 애가 욕심내지 않는 게 중요했다. 욕심내면 샷이 안 되니까. 기다리고 가자고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김효주는 “LPGA에서 먼저 뛰는 리디아 고가 잘하는 것 같다. 리디아 고와 붙어서 이긴 적도 있다. 라이벌을 주변에서 만들어주는데 만나면 ‘우리가 라이벌이래’ 하고 서로 웃는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를 하고 미국 투어를 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부담도 없다고 했다. “직업으로 골프를 하려고 여태 운동한 것이고 내가 언제쯤 LPGA에서 뛸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실 KLPGA에 데뷔했을 때가 제일 뿌듯했다. 생각보다 빨리 2012년에 데뷔했다. 그러다 2014년 나도 모르게 LPGA에 뛰는 것도 확정되고. 에비앙 우승으로 1년 뛸 수 있는 티켓을 얻었다. 남들은 힘들게 얻는 티켓인데, 가서도 잘하고 한국 와서도 잘하고 싶다.”  

김효주의 골프 이외 생활은 평범하다. 하루 4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음악도 듣고 드라마도 열심히 본다. 골프 말고 운동은 농구·축구 등 ‘하는 것’을 좋아한다. 단 야구는 ‘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 “골프나 농구, 축구는 다 내가 공을 내보내는 것인데 야구는 공이 나한테 날아오는 종목이다. 나는 공이 나한테 날아오는 게 무섭다.”(웃음)

김효주는 대학 1학년 평범한 학생이다. 골프만 빼면 말이다. 안경 쓰고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해 라식 수술도 받고 운전면허도 따고 싶어 한다. 빨간색을 좋아한다. 우승할 때 빨간색 옷을 즐겨 입고 대학도 빨간색이 상징인 고려대에 입학했다. 연애에 대해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내가 진짜 털털하다. 남자애들은 내가 예쁜 줄 모르고 나도 남자들 앞에서 여성스럽게 굴지 않는다. 그래서 친하기만 하다.” 실제 김효주는 치마 등 사복이 별로 없다. 화장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중2 때부터 경기할 때는 선크림을 바른다. 이번 KLPGA 대상 시상식 준비 때 미용실에서 발라준 매니큐어가 생애 처음일 정도다.

“10년이면 목표 달성에 넉넉한 시간”

다만 학교생활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 “(체육교육과 여름 캠프인) 임해 훈련을 해보고 싶다. 여자애들이 기절한다고 하는데(웃음). 학교 가는 게 나한테는 쉬는 시간이다. 친구 만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돈 쓸 시간이 없어서 용돈 달란 소리도 안 한다고 한다. 아버지 김창호씨는 “투어 다니면 햄버거 하나 먹으러 갈 시간이 없다. 프로암 대회 같은 데서 어른들이 10만원, 20만원 용돈 주면 그걸로 몇 달 간다. 집 근처에서 떡볶이나 사먹고 집에서 논다.”

그는 프로 선수 생활을 길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꼭 세계 1위를 해보고 싶다. 선수 생활은 30대 중반 이전에는 그만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창호씨는 “효주가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으니까 몇 년 일찍 끝내는 게 맞다. 몇 살까지가 아니라, 목표를 정해 다 이루면 은퇴할 것이다. 10년이면 목표달성에 넉넉한 시간이라고 본다. 결혼도 목표를 이룬 다음에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아버지 김창호씨가 말하는 ‘내 딸’ 


김효주의 아버지 김창호씨는 딸의 그림자이자 지킴이다.  딸이 여섯 살일 때 시작해 골프 여왕으로 키워낸 그지만 골프채도 안 잡고 골프에 관해 딸에게는 한마디도 안 한다. “골프와 관련된 얘기는 선생(한연희 코치)을 통해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조언할 수 있나. 현장에서 보고 잘못된 부분은 코치에게 ‘이건 코치가 말 좀 해달라’고 부탁한다.”

대신 딸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투어에 동반하고 운전하고 밥 해 먹이고 하는 그 모든 궂은일이 그의 몫이다. “아는 분이 하던 스포츠센터에 실내 골프연습장이 있었다. 거기를 여섯 살 먹은 효주가 맨날 놀러 다녔다. 6개월쯤 지나니까 그쪽에서 애한테 골프채 하나 맞춰주라고 하더라. 그때 70만원인가 했다. 우리 부부가 그때는 식당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효주가 골프를 좋아하니까 시켰다. 나는 안 쳤다. 그러다 효주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경기에 나갔는데 입상했다. 3학년 때 전국대회에 처음 나갔다. 그때 일을 그만뒀다. 경기가 전국에서 열렸고 거길 따라다니려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식당은 처분하고 부동산 임대료 받아서 생활했다. 효주가 4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처음 우승하고 난 후 전문적인 코치한테 배우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물어 5학년 때 한연희 코치를 선생님으로 붙였다. 한 코치는 경기도 용인의 남서울C.C.에 아카데미가 있고 우리는 강원도 원주에 살고 있었다. 1년 동안 남서울C.C. 옆에 원룸을 얻어서 부녀가 함께 살았다. 그때부터 밥 해 먹이고 챙겼다. 애 엄마는 큰딸과 원주에 있고. 그때 효주가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혔다. 효주가 중2 때 국가대표가 됐다. 그때가 제일 기뻤다. 국가대표 6명 중 제일 어리고 역대 제일 빠르기도 했다.”

김효주가 잘되기 전까지는 돈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KLPGA에 데뷔할 때까지 10억원 이상 들어갔다”고 한다. 데뷔 이후 상금은 알려진 대로다. “세금 떼고 캐디 수당, 매니지먼트사 몫 등 이것저것 떼면 진짜 손에 들어오는 건 상금액의 30~40% 정도다. 상금을 못 타는 경우도 있으니까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선 스폰서가 중요하다.”

김창호씨는 딸의 LPGA투어 준비로 분주하다. 한국에서 검증된 캐디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고 현지 로드매니저를 찾고 있다. 대륙 횡단을 하는 미국 투어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주니어 때부터 둘이 많이 외국에 다녔다. US 아마추어에도 갔었고 한 달 넘게 해외에 머무른 적도 많다. 걱정보다는 도전이다. 효주도 낯선 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걱정은 없는 듯하다. 자기도 목표가 있으니까. 명예의 전당 가는 것이 목표라고 얘기했으니 그걸 이루려면 효주가 열심히 해야 한다.”

딸의 장점에 대해 그는 “자기를 다스릴 줄 안다. 마인드컨트롤을 남보다 잘하는 것 같다. 골프는 짜증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김효주는 투어 생활 중 24시간 보살펴주는 아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크면서 성별이 달라 불편한 것 빼고는 다 좋다. 의견 충돌도 있지만 내가 어른 대접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그건 내가 쉰 살이 돼도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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