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의 꿈 구단이 적극 밀었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5.01.01 17: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넥센, 치밀한 준비로 500만 달러 성사 김광현·양현종과 대조

전망은 반반이었다. 절반의 야구 전문가는 “1000만 달러가 기대된다”고 예상했고, 나머지 절반은 “200만 달러에 그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전자에 표를 던진 이들은 “근래 메이저리그(MLB)가 유격수 구인난에 시달리는 데다 강정호처럼 파워 넘치는 유격수를 탐내는 구단이 많다”는 걸 이유로 내세웠다. 후자에 손을 든 이들은 “김광현·양현종 포스팅에서 보듯 MLB가 한국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냉정하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결과는 절충이었다. 12월20일 넥센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500만2015달러의 강정호 포스팅 입찰액을 전달받았다. 구단 논의 끝에 야수로는 최초의 도전이 되는 이번 포스팅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포스팅 결과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정호의 포스팅 결과가 나왔을 때 넥센 측은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내심 700만 달러는 넘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털어놓았다. 넥센의 아쉬움엔 이유가 있다. 강정호를 주시한 빅리그 구단이 꽤 많았고 현지 반응도 좋았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21일 포스팅을 통해 미국 MLB 진출을 노리고 있는 강정호가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넥센의 적극적인 ‘강정호 세일’ 덕분

시즌 전부터 그랬다. 2014년 2월 미국 애리조나 넥센 스프링캠프 때부터 빅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부지런히 넥센 훈련장을 찾았다. 최소 10개 구단 스카우트가 찾아와 강정호의 훈련 상황을 지켜봤다. 빅리그 스카우트가 한국 팀의 스프링캠프 때부터 특정 선수를 관찰하는 건 좀체 보기 드물다. 당시 넥센 캠프에서 만난 한 빅리그 스카우트는 “다루빗슈 유(텍사스), 다나카 마사히로(양키스) 등 일본 프로야구의 빅스타를 관찰할 때도 그 선수의 소속팀 스프링캠프까지 찾아간 적은 없다. 넥센 캠프에 이처럼 많은 빅리그 스카우트가 몰린 건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넥센의 적극적인 ‘강정호 세일즈’ 덕분이다. 강정호의 에이전트사는 옥타곤이다. 담당자는 엘런 네로. 옥타곤은 미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스포츠 에이전트다. 네로 역시 한때 스캇 보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슈퍼 에이전트다.

그런 옥타곤과 네로가 넥센 유격수 강정호를 고객으로 삼은 건 넥센의 제안 때문이었다. 2013 시즌이 끝났을 때부터 넥센은 강정호의 꿈이 MLB 진출임을 알고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넥센은 강정호의 미국 진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파트너(에이전트)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조사했다.

넥센 관계자는 “강정호와 협의해 구단 쪽에서 선수 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에이전트를 고르기로 하고 신중한 검토 끝에 능력과 신뢰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옥타곤을 파트너로 결정했다”고 귀띔했다.

스프링캠프에 빅리그 스카우트가 몰려온 것도 넥센의 요청을 받은 옥타곤이 강정호 세일즈를 열심히 한 덕분이다. 옥타곤은 빅리그 스카우트에게 “미국 진출을 노리는 한국 최고의 대형 유격수가 있으니 한번 보러 오라”고 연락했고 그들이 넥센 캠프를 찾은 것이다.

‘한국형 포스팅 성공 비결’은 선수-구단 합작

시즌 중에도 넥센은 옥타곤과 공조해 강정호 세일즈에 적극 나섰다. 빅리그 스카우트가 목동구장을 찾으면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고 강정호의 장점을 수시로 강조했다. 영어에 능통하고, MLB 사정에 해박한 넥센 김치현 전략&국제팀장은 빅리그 관계자와 허심탄회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강정호의 가치를 높여나갔다. 이는 소속팀 선수의 MLB 진출을 우려해 빅리그 관계자와 각을 세우거나 경계심을 나타내는 일부 구단과는 다른 태도다.

당연히 ‘강정호’란 이름은 다른 선수보다 MLB에 더 많이 회자됐고 기대감 역시 증폭됐다. 기자가 지난 10월 중순 MLB 월드시리즈를 취재하러 갔을 때 현지 야구 관계자나 기자들이 하나같이 “강정호를 잘 알고 있다”며 관심을 나타냈을 정도다.

한 빅리그 아시아 지역 담당 스카우트는 “거듭된 아시아 내야수의 MLB 진출 실패에도 강정호가 역대 아시아 야수 가운데 이치로 스즈키(1312만 달러), 니시오카 쓰요시(532만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포스팅액 500만 달러를 기록했다는 건 그만큼 ‘강정호 세일즈’가 성공을 거뒀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 스카우트는 “미국에서 한국 야구는 일본 야구보다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이 강한 만큼 선수 혼자 세일즈해선 효과를 보기 어렵다. 강정호 포스팅 때처럼 소속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과 빅리그 구단에 맞설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에이전트사의 활약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적의 포스팅 타이밍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넥센 관계자는 “2014 시즌 내내 강정호를 관찰한 피츠버그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가 ‘나도 우리 구단이 이렇게 많은 포스팅액을 써낼지 몰랐다’며 놀라더라. 강정호 몸값 협상 때도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한국 선수의 미국 진출에 모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광현·양현종은 ‘세일즈 타임’ 늦었다 



강정호에 앞서 미국 진출을 시도한 김광현(SK)과 양현종(KIA)은 실패했다. 원래 김광현의 전망은 밝았다. 한 빅마켓 구단은 “김광현 포스팅 때 1000만 달러를 투자할 의사가 있다”며 극찬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가장 많은 입찰액을 써낸 구단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0만 달러)였다.

김광현의 미국 진출이 좌절된 데는 어깨 부상 전력과 세일즈가 늦게 시작됐던 게 치명타였다. 특히 후자 영향이 컸다. 김광현은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날 때까지 미국 진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유는 국외 진출 자유계약(FA) 자격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1군 등록일수를 채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양현종도 비슷했다. 양현종은 부상 염려가 적은 좌완 강속구 투수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빅리그 스카우트는 하나같이 “좀 더 일찍 미국 진출 의사를 밝혔으면 좋았다. 10월이 돼서야 포스팅 참가 의사를 밝힌 탓에 빅리그 구단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실이다. 빅리그 구단 스카우트 사이에서 양현종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건 분명하다. 한 빅리그 스카우트는 “아시아 선수를 영입하려면 구단 팀장급 이상 간부가 직접 방문해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본다. 양현종은 늦게 미국 진출 의사를 밝힌 탓에 어느 구단에서도 팀장급 이상 간부를 파견하지 못했다. 왜 양현종이 뒤늦게 포스팅에 응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