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공안’ 좋아하고 ‘특수’ 싫어한다
  • 김정우│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
  • 승인 2015.01.0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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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통 수사 검사들 밀려나고 공안통 득세

#1. 지난해 7월24일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 수사 책임자였던 최재경 인천지검장이 사퇴했다. ‘유병언 검거 실패’ 등에 대한 비난 여론에 따른 불명예 퇴진이었다.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칼잡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검찰 고위급에 몇 명 남지 않은 ‘특수통’ 검사였다. 그런 최 전 지검장의 사퇴를 두고 한 검찰 간부는 “특별수사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했다.

#2. 지난해 9월18일 대검찰청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틀 전 발언(9월16일)이 있자마자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러고는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허위사실 유포 사범을 상시 적발하겠다”며 다음 날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행위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은 물론이고, “사이버 세상에 ‘신(新)공안 정국이 조성됐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3. 김진태 검찰총장 취임 1년을 맞은 지난해 12월2일 대검 확대간부회의. 김 총장은 “국회의원 내란음모 사건 등 국가안보 위해 사범에 단호히 대처했다”며 지난 1년의 성과들 중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국정원이 수사해 검찰에 넘긴 ‘공안 사건’이 ‘김진태호(號) 검찰’의 대표적인 성과였던 셈이다.

2014년 2월24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수부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모니터링

지금 대한민국 검찰의 대세는 ‘공안’이다. 검찰 내 요직을 공안통 검사들이 꿰찼다는 뜻이 아니다. ‘수사로 말한다’는 검찰의 최근 사건 처리와 정국 대처 등을 볼 때 공안의 시각과 목소리가 지배적인 분위기라는 얘기다. 앞서 열거한 3개의 장면은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반대편에 자리한 흐름은 ‘특수의 퇴조’다. 물론 단정하긴 아직 이르다. 검찰의 특수수사는 지난해에도 쉴 틈 없이 진행됐다. 부적절한 민관 유착 관행을 파헤친 ‘관피아 비리’ 수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2014년을 돌아볼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종전보다 눈에 띄는 대형 특수수사가 줄어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싸우던 특수수사가 각광받고 영광이었던 시절은 지났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거악(巨惡)’의 개념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안의 부상’은 어느 정도 예고됐던 일이다.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대검 공안1과장과 서울지검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등을 지낸 베테랑 공안 검사 출신이다. 2013년 8월 취임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4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을 지냈고, 노태우 정부 때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맡으면서 공안 정국을 주도했다. 홍경식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그 후임인 김영한 현 민정수석도 공안통이다. 검찰의 움직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인사들이 모두 정통 공안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은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다.

2013년 9월27일 대검찰청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퇴임식을 마치고 차에 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실제로 공안의 ‘입김’은 검찰 특수수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행위 전담 수사팀은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검찰 특수수사의 실질적인 야전사령관에 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산하에 설치됐다. 수사팀 구성원들은 주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 검사와 수사관들이다. 갈수록 고도화하는 기술 유출 범죄 적발이 주 임무인 첨단범죄수사1부가 고작 인터넷 게시판이나 모니터링하면서 고위 공직자 비방 글을 찾아내 게시자를 추적하고, 뇌물 사건, 대기업 비리 수사의 사령탑인 3차장검사가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까지 지휘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 “특수통 검사들이 사실상의 공안 사건에 투입되고 있다”는 자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같은 경향이 형성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가깝게는 역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들 수 있다. 당시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현 대구고검 검사와 채동욱 전 총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수통 검사들이다. 이들은 황교안 장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의견을 밀어붙였고 결국 관철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관련해 불법 여론 조작이 있었다는, 정권의 입장에선 ‘역린’을 건드린 셈이나 다름없었다. 청와대에는 껄끄러운 존재였던 채 전 총장은 결국 ‘찍어내기’ 파문을 일으키며 자리를 떠났다. 윤 검사 역시 검찰 수뇌부와의 불협화음을 폭로하는 ‘항명 파동’과 함께  좌천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후 단행된 당시 검찰 인사에서 여환섭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과 윤대진 특수2부장 등 내로라하는 특수통 검사들 상당수가 지방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사실상 밀려났다. 특별수사 경력이 많은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를 두고 “일 잘하는 검사들을 ‘말 안 듣는다’는 이유로 내쳐버리고,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검사들을 중요 부서에 배치하는 것을 보면서 후배들이 무엇을 배우겠나”라고 혀를 찼다.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당시 사태를 ‘공안 대 특수’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면서도 “하지만 그 후 검찰 내에서 특수부 검사들의 위상이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공안통과 기획통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권 입장에서는 특수부 검사들을 꺼려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뜻이었다. 다른 검찰 간부도 “대대로 정치권은 특수통 검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든 자신들 쪽으로 칼을 겨눌 수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치권력이 ‘공안통’을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 잠깐,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보자. 한상대 전 총장은 2011년 초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1차장 산하는 동물원이고, 2차장 산하는 식물원이다. 3차장 산하? 거기는 그냥 사파리다.” 1차장검사가 총괄하는 형사부는 자기 구역 안에서 움직이고, 2차장검사 휘하의 공안부는 ‘태양’(권력)을 보면서 자라지만, 3차장검사 산하의 특수부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누구든 가리지 않고 걸리면 물어뜯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공안 검사들은 권력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만, 특수 검사들은 통제가 안 된다는 얘기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박근혜정부로 하여금 한 전 총장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도록 한 계기가 됐던 것이다.

윤석열 검사는 국정원 댓글 수사 때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 “‘공안 득세’ 단순 평가에 동의 안 해”

그 결과, 김진태 총장이 취임한 이후 특수부의 칼날은 현저히 무뎌졌다. 관피아 수사는 대통령 하명에 따른 것이었고, ‘유병언 수사’도 부실 수사로 질타를 받았다.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내건 재계와 청와대의 압박 탓에 대기업 비리 수사도 변변하게 하지 못했다. 자체 인지 사건보다는 다른 사정기관의 고발, 수사 의뢰에 따른 사건들이 주를 이뤘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 추적, 4대강 사업 비리 수사, CJ그룹·효성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 등 굵직한 대형 수사가 이어졌던 채 전 총장 시절과는 대조적이다.

빈자리를 메운 것은 공안부의 간첩 사건 수사, 그리고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다룬 일본 산케이신문이나 정윤회씨의 비선 실세 의혹을 제기한 세계일보 등 언론 보도와 관련한 명예훼손 수사였다. 서울 지역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공안 수사와 기획 업무, 특별수사 모두 검찰 본연의 임무라는 점에서 최근 흐름을 ‘공안의 득세’라고 단순 평가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각자 위치에서 원칙대로 일하고 수사하는 것인데, 국민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독립 위해 직선제 도입해야”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이렇게 임명된 검찰총장은 검사 동일체 원칙에 따라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운영되는 검찰 조직의 특성상 전체 검찰 조직을 장악한다.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권력의 시녀’라는 꼬리표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에서는 권·검 유착을 끝낼 수 있는 대안으로 검사장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교육감을 시민의 손으로 뽑는 것처럼 지방 검사장도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예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의 제도를 전제로 지방검사장 직선제를 실시할 경우 서울중앙지검장을 포함해 18석을 선거로 선출하게 된다.

지방 검사장의 선출이 국민 투표를 통한 방식으로 바뀔 경우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눈치를 보는 대신 투표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사장 직선제의 요체다. 또한 검사장 직선제는 지방자치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권력 분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중앙 검찰(대검찰청)과 지방 검찰이 더 이상 한 식구가 아닌 별개의 독립적 기구로 운영되기 때문에 중앙의 감찰 기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검찰총장을 전체 검사들로 구성된 검사회의를 통해 검사들이 직접 선출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직선 검찰총장제가 도입될 경우 검찰이 최소한 ‘외풍’에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재선을 위해 자신을 뽑아준 검사들의 명예를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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