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승부수, 독배인가 축배인가
  • 엄민우·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1.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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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마 압박에도 출마 강행…대권 향한 권력의지 드러내

1월7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유력 대표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후보가 두 번째 연설자로 나섰다. 문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세를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대표가 되면 이기는 당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누가 대표가 되면 정권 교체의 희망을 주겠습니까? 여기에 답을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그 사람입니까?” 뜨거운 호응을 유도하는 대목이었지만,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물론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자리가 아닌 만큼 이날 연설에서 특별히 호응을 이끌어낸 후보는 없었다. 그러나 당의 절대적 지분을 갖고 있는 ‘친노(무현)계’의 수장인 그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과거에 비해선 확연히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 뉴시스
야권의 대표적 차기 대권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후보가 벼랑 끝에 섰다. 지금까지 숱하게 이야기되던 ‘위기론’과는 다르다. 자칫 잘못 발을 내디뎠다간 대권의 꿈도 날아갈 상황에 처해 있다. 그동안 그는 당에서 늘 ‘주류 중의 주류’였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가 이어질 때도 당 안팎에서 “친노가 당의 대주주”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잠재적 힘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 후보 입장에선 이인영 후보가 3위가 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 후보가) 선명성에서도 가장 앞서고 ‘범친노’라고 불리는 만큼 친노 진영 표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상태라면 문재인은 내년 총선에서 떨어져”

사실 이번 전당대회를 맞아 야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불출마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어차피 그의 정치적 스케줄은 2017년 대선에 맞춰져 있으리란 이유에서다. 당내에서 불출마 압박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출마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속사정이 있다. 당장 내년 4월의 20대 총선과 관련한 고민이 깊다. 문 후보로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에 도전해 재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대권 가도가 뚫린다. 그런데 이것이 여의치 않다. 당내 같은 부산 지역구 의원인 조경태(사하 을) 후보는 “내가 장담컨대, 지금 추세대로라면 문재인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100% 낙선한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야당 정치인이 그렇게 지역구 관리를 하면 안 된다”고 사석에서 직격탄을 퍼부은 바 있다. 조 후보는 부산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조 후보의 말에는 다분히 경쟁자를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지만, 실제 문 후보의 지역구 사정은 녹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을 자신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부산 지역에서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출마하지 않을 명분도 없다. 대선을 1년 8개월이나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복수의 인사들은 “호남 지역구를 포기한다면 ‘통 큰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부산을 포기하면 떨어질까 무서워 도망간다는 비판밖에 더 받겠나”라고 반문했다. 문 후보가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하면서 “대표가 되면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문 후보가 그동안 ‘친노계’ 수장으로 알려지며 당내 지분 행사를 톡톡히 했지만, 실제 친노 진영에서는 “문재인이 과연 계파 수장이 맞나”라고 할 만큼 존재감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문 후보의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자신의 지지 기반인 친노 진영의 이런 의구심을 잠재울 필요도 있는 셈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인지 문 후보는 당권을 향해 그동안 좀체 보여주지 않았던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문 후보는 친노계 수장으로 불리지만,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대권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엔 주변 인사들에게 “그동안 권력의지라는 것을 너무 놓고 지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뉘앙스의 말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 컷오프 경선을 하루 앞둔 1월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이례적으로 스스로를 ‘잠재적 대권 후보’로 직접 언급해 기자들 및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인영 후보와의 설전도 한 예다. 네거티브 없는 ‘클린 선거’를 외쳐온 문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 세대로 보면 제가 가장 후배이며 제가 세대교체를 말할 가장 적임자”라며 ‘세대교체론’을 외치는 이 후보를 자극했다. 이에 이 후보는 “국민 48%의 지지까지 얻었던 분이 ‘제일 후배’라고 하면 당원과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문 후보의 정치 입문은 2012년이 아니라 2002년이며, 그때부터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후보의 이런 행보에 대해서는 대선이 가까워지는 만큼 대외적으로는 물론, 같은 ‘친노’ 진영 인사들에게도 대권 후보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다른 후보들과 달리 문 후보는 이번에 당권을 못 잡으면 대권까지 힘들어진다. 친노 입장에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어떻게든 문 후보를 대표로 만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1월7일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박지원 의원. 1월7일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박지원 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
예비경선일 때 박원순 시장에 관심 쏠려

문재인 후보에게 가장 큰 아킬레스건 중 하나는 계파 논란이다. 문 후보도 이를 알고 탈계파적 모습을 보이기 위해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안철수 진영 인사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최측근인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을 자신의 캠프에 합류시킨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온다. 김한길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박 시장과 안 전 대표 쪽 사람들이 보기엔 진정성을 느끼기 힘든 일종의 ‘보여주기’ 수준이다. 그보다는 친노에 대한 공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밝혀야 당심을 끌어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문 후보로서는 당내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등의 전략보다는 국민에 대한 이미지나 위상을 확고히 키움으로써 당내 위상을 확대해나가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현재 야권에는 잠재적 대권 후보가 즐비하다. 우선 같은 친노 진영 안에서도 안희정 충남도지사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한다. 안 지사는 지난해 12월16일 문재인·정세균·박지원 의원을 각각 만나 “당권을 놓고 충돌하는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잠재적 경쟁자인 문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에다 정치권과 떨어져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차기 대권 경쟁 구도를 가열시키고 있다. 실제로 1월7일 예비경선이 펼쳐진 날에도 박 시장이 등장하자 참석자들의 관심이 한꺼번에 집중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차기 대권 주자로서 그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결혼식으로 비유를 하자면 신랑·신부보다 더 주목을 받는 ‘민폐 하객’이 된 셈이다.

문재인 후보는 과연 ‘벼랑 끝 전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 순탄치만은 않으리란 분석이 많다. 그동안 야권에서 여러 번의 전당대회를 지켜봐왔던 한 고위 당직자는 과거 사례들과 비교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전당대회는 기본적으로 ‘룰’을 바탕으로 유불리를 따지는데 지금은 문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권리당원들은 누가 흐름을 주도하느냐에 끌리기 때문에 초반엔 대권 후보인 문 후보가 다소 유리할 것이다. 이런 전당대회는 전당대회 일주일 전은 돼야 확실히 판이 보인다.”

이번 전당대회를 단순히 룰만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인영 후보라는 큰 변수가 있기 때문에 더욱 예측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 후보가 완주를 한다면 박지원 후보가 유리하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문 후보와 단일화를 꾀하게 된다면 문 후보가 유리하다. 그런데 이 단일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 황태순 수석연구위원은 “이 후보도 이제 나이가 쉰둘인데 여기서 문 후보와 거래해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이 후보 입장에선 극단적으로 말해 2등만 해도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다.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며 나섰는데 ‘나눠 먹기’ 비판을 들으며 문 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호남’과 ‘이인영’ 변수 상당히 의식

이 후보는 컷오프 경선이 끝난 후 공개적으로 “단일화는 없으며,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밝혀 현재로선 단일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3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후보는 “친노도, 비노도 정답이 아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김한길 전 대표의 핵심 측근 역시 “이 후보가 출마한 것 자체가 자리를 얻으러 나온 것이 아니라 486을 중심으로 한 독자 세력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단일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친노 진영의 한 의원은 “문 후보가 이 후보와 표가 갈리는 것을 우려한다는데, 마지막 순간에 가면 결국 당원들도 전략적 선택을 하게 돼 있다. 문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권리당원 과반 이상이 호남표라는 것이 박 후보에 유리할 수도 있지만, 국민 지지도를 당원들이 거스르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다수 친노 인사들은 ‘호남’과 ‘이인영’이라는 변수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문재인의 대선 후보로서 경쟁력이 세대교체 바람과 호남의 벽을 뚫을 만큼 강할지 곧 판가름 난다. 

 

 


문재인 ‘무지개 캠프’ vs 박지원 ‘통합 캠프’ 



1월7일 예비경선을 마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2월8일 전당대회가 본선에 접어들면서, 컷오프를 통과한 당권 주자들의 캠프도 본격적인 선거 모드에 돌입했다. ‘빅2’로 분류되는 문재인 후보와 박지원 후보는 다른 듯 비슷한 캠프 진용을 꾸리고 표밭 다지기에 나섰다. 두 후보 모두 ‘탈계파’ ‘통합’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으나 문 후보 측은 실무형 전문가를, 박 후보 측은 관록의 베테랑을 전진 배치했다.

출마 선언 당시 당내 계파를 청산하겠다고 공약한 문 후보 캠프는 ‘친노(무현)계’ 색깔을 빼는 데 역점을 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후원회장에는 호남 지역 원로 소설가 이명한씨를, 대변인으로는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김기만 전 국회의장 공보수석을 내세웠다. 친노계에 부정적인 호남 민심을 다잡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측근들도 눈에 띈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서 소셜미디어팀장을 지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가 기획서포터를 맡았고, 박 시장의 측근인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이 정부서포터로,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박 시장의 메시지단장을 맡았던 신동호 한양대 겸임교수가 메시지서포터로 합류했다. 여러 분야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이른바 ‘무지개 캠프’를 꾸렸다는 게 문 후보 측 설명이다.

박 후보 측은 ‘강한 야당 통합대표’라는 슬로건에 맞게 캠프 이름도 ‘통합 캠프’로 지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지지 세력과 옛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단이 대거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 심민영 ‘실사구시’(손학규 팬클럽) 대표, 권오혁 전 대구노사모 대표, 현해성 전 전남노사모 대표, 정해관 전 노사모 대표 등이 바로 그들이다. ‘캠프의 얼굴’인 대변인에 손학규 대선 후보 캠프의 대변인이었던 김유정 전 의원이 영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측근들도 대거 포진했다. 2012년 김두관 전 지사가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대변인을 맡은 전현희 전 의원이 비서실장을 맡았고, 지난해 7월 김 전 지사가 김포 지역구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전략 정책 업무를 맡은 임근재 전 경남 정책특보는 실행지원단 전략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노와 비노를 아우르는 인사를 영입해 ‘사심 없는 통합형 대표’라는 이미지를 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선거인단 구성, 누가 유리할까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 선거인단은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각각 45%와 30%, 일반당원과 여론조사가 나머지 각각 10%와 15%를 차지한다. 대의원은 현장투표, 권리당원은 ARS 투표를 통해 참가하게 되며, 일반당원 및 여론조사는 각각 2000명 샘플씩 전화 면접을 통해 이뤄진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 18개 지역 대의원 1만2000여 명 중 호남 지역이 약 16%를 차지한다. 권리당원의 경우엔 전체 25만여 명 중 호남 지역만 15만명에 달해 57%가 넘는다.

이는 실제 해당 지역만 따졌을 경우이고,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다른 각 지역에도 상당한 호남표가 잠재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호남에 나름의 지분을 갖고 있는 박지원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권리당원은 대의원과 달리 일반여론과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성을 지닌 문재인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문 후보가 ‘호남 벽’을 뚫고 얼마나 많은 권리당원의 마음을 끌어오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비호남이라도 대권 경쟁력만 있으면 힘을 몰아주는 호남 민심의 특성에 비추어 이번 결과가 곧 당원들이 생각하는 문 후보의 대권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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