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투자하면 김효주 된다?
  • 김진령 기자·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1.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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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영재 교육 명암…프로골퍼로 성공 ‘하늘의 별 따기’

최근 국내 스포츠 종목 중 영재 교육이나 조기 교육이 가장 활발한 게 골프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골프는 캐디를 하거나 학업 성적이 뒤진 학생들이 대안으로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 비춰보면 엄청난 변화인 셈이다. 여기에는 ‘박세리 신화’가 한몫했다. 골프가 중산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가던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맨발의 신화를 쓴 박세리 중계방송을 본 학부모와 학생들이 골프연습장으로 달려가 이른바 ‘세리 키즈’가 된 것.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진출을 본격 선언한 김효주는 일곱 살 때부터, 뉴질랜드 교포 출신 리디아 고는 다섯 살 때부터 골프채를 잡았다. 골프에 특화된 중학교도 생길 정도다. 특히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올림픽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골프 영재 교육 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프로골프 초창기에는 골프장 인근 지역 출신 프로가 많았다. 보고 자란 것이 골프이고, 캐디를 하다가 자연스레 골프를 익혀 선수가 된 것이다. 특히 1929년에 건설된 서울컨트리클럽(현 어린이대공원)이 자리한 뚝섬 지역을 중심으로 골프 선수가 대거 출현했다. 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골프장이 놀이터였고, 일자리였다. 

ⓒ 연합뉴스 , ⓒ 안성찬 제공
최경주·구옥희, 캐디 출신 프로골퍼

캐디 출신 프로골퍼 시대의 상징은 최경주·구옥희다. 둘 다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력으로 성공한 경우다. 구옥희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고양 123퍼블릭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며, 최경주는 전남 완도의 8타석 연습장에서 볼을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선수가 됐다. 구옥희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LPGA 투어에서 우승하는 등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성공한 프로골퍼다. 일본에 저택과 서울 강남에 건물을 사들일 정도로 부를 쌓았던 구옥희는 2013년 별세했다. 최경주도 ‘맨땅에 헤딩’해서 국내 남자 프로 중에는 가장 성공해 최경주재단까지 만들었다. 제주도 골프장에서 볼을 줍던 양용은도 24세에 뒤늦게 출발했지만 미국남자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우승하고 100억원대 재산을 꾸릴 정도가 됐다.  

분기점은 박세리였다. 박세리는 일하러 골프장에 가지는 않았다. 골프를 잘 쳤던 부친 박준철씨가 어린 박세리에게 골프를 가르쳐 입문시켰다. 외환위기 시절 연못에 들어가 공을 쳐올려 LPGA 우승을 이뤄낸 박세리의 ‘맨발 신화’는 한국에 ‘세리 키즈’를 등장시켰다. 박세리와 비슷한 무렵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김미현도 국내를 평정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가도를 달렸다. 부를 축적한 김미현은 인천에 대형 연습장까지 마련했다.

프로골퍼를 꿈꾸는 주니어 선수가 강습을 받고 있다. ⓒ 안성찬 제공
박세리·김미현, 영재 교육에 불 댕겨

이들의 성공은 골프 영재 교육에 불을 댕겼다. 조기 유학파도 등장했다. 조기 유학으로 빛을 본 선수는 박지은과 박인비. 부친이 삼원가든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은은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가 LPGA에서 우승했다. 집안이 유복해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간 박인비도 박지은처럼 미국 주니어 무대를 휩쓸었고 프로 데뷔를 위해 하버드와 예일 대학 장학생도 거절하고, 네바다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승승장구한 박인비는 LPGA 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했고, 세계 여자골프 랭킹 1위에 올라 있다.

신성 리디아 고는 뉴질랜드 유학파. 1997년생인 리디아 고는 다섯 살 때 골프채를 잡았는데, 그가 여섯 살 때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부모는 뉴질랜드 이민 결단을 내렸다. ‘골퍼 리디아 고’ 만들기에 올인한 것이다. LPGA 차세대 여왕으로 떠오른 리디아 고는 올해 고려대 심리학과에 입학하는 동시에 LPGA 투어에 본격적으로 참여한다. 조기 유학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다.

골프에서 영재 교육이나 조기 유학이 각광받는 이유는 프로 선수가 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배우는 게 좋기 때문이다. 애니카 소렌스탐을 비롯해 박세리 등 세계적인 프로 선수는 대부분 8~12세 때 클럽을 손에 쥐었다. 타이거 우즈는 태어난 지 8개월 후부터 부친의 골프 스윙을 보면서 자라났다. 그렉 노먼을 가졌을 때 그의 모친은 이미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었고 골프장에서 태어난 프로도 적지 않다.

축구나 테니스와 달리 골프는 늦게 배울수록 기량을 늘리기 어렵다는 게 통설이다. 프로야구 등 선수 출신이 뒤늦게 골프에 입문해 프로골퍼가 된 이가 적지 않지만 빛을 본 선수는 거의 없다. 프로 테스트까지는 통과해도 대회에 나가면 번번이 예선 탈락하기 일쑤다.

‘모터 스킬(motor skill)’이라는 말이 있다. 운동 기능의 하나다. 어려서 한 가지 기능을 숙달해놓으면 후에 같은 동작에서 발전 속도가 무척 빠르다. 즉, 몸에 각인된 기억은 오래간다는 뜻이다. 캘러웨이골프의 이상현 대표는 주니어 선수였다. 학업과 사업상 클럽을 한동안 잡지 않았다. 그럼에도 요즘 언더파나 이븐파를 친다. 어린 시절 배워놓은 골프가 중년이 된 후 일정 기간의 연습으로 기량이 되살아난 경우다. 유소년기에 모터 스킬이 각인된 선수를 늦깎이 골퍼가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골프 조기 교육의 빛과 그늘

골프 조기 입문의 그늘도 존재한다. 모든 프로골퍼가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연간 1억원대의 돈을 들이며 아이는 학업을 포기하고, 부모는 생업을 뒤로한 채 매달려도 성인 무대에서 챔피언이 되는 것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 어릴 때부터 골프에 전념하다 보니 학과 공부는 뒷전이라 골프를 그만두면 퇴로가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주니어 골퍼는 계속 늘어나고 관련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골프가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귀족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크다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 골프가 ‘화려하다’ ‘폼이 난다’는 신분 상승 욕구와 ‘돈이 된다’는 환상이 결합된 것. 나름으로 자리를 잡은 자영업자 층은 돈과 시간에서 직장인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최근 20대 초반에 성공한 선수의 부모 중에 식당업이나 사업가가 많은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주니어 선수의 출발점과 롤 모델은 대개 비슷하다. 모두 목표가 최경주이고 박세리다. 그 꿈이 깨지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발을 담갔기에 빼지 못한다. ‘늪’인 줄 알면서 자꾸만 빠져든다. 이것이 국내 주니어 골프의 현실이다.

성인 무대에서 챔피언 자리에 올라도 아주 특출 난 경우가 아니면 상금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국내 KPGA 투어에서 꼴찌를 한 선수는 182위로 연간 손에 쥔 상금이 고작 50만원이었다. 100위 안팎의 선수가 1200만원 정도를 벌었다. 월 100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대회에 출전하느라 들어간 비용을 빼면 0원이거나 적자다. 30위권 내에 들어야 연봉으로 계산해 8000만원쯤 된다. 하지만 30% 이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5000만원대로 떨어진다. 그래서 한국 투어보다 상금 규모가 큰 일본 투어로, 궁극적으로는 PGA나 LPGA를 꿈꾼다. 물론 그 전에 스러진 꽃들이 핀 꽃보다 훨씬 많다.

골프를 취미로 즐긴다면 모를까 직업으로 선택해 성공하는 것은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 명문대에 들어갈 확률보다 작다는 것을, 조기 영재 교육 출발선에서 잘 생각해야 한다.


캘러웨이가 주최한 어린이 골프교실 ⓒ 안성찬 제공
주니어 골퍼가 프로가 되기까지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까. 골프는 단체 운동이 아니라서 개인 레슨을 받는다. 피아노나 피겨스케이팅처럼 철저하게 개인 코치가 있다. 특히 선수가 되려는 주니어 골퍼는 아마추어 골퍼가 배우는 것과는 다르다. 레슨비가 천차만별이다. 일반 성인의 경우 골프연습장을 월 또는 연 단위로 등록하고 레슨을 받을 경우 수십만 원이면 된다. 하지만 주니어 선수는 전담 코치(프로골퍼)를 붙인다. 레슨비만 월 수백만 원에 달한다. 

레슨비 말고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골프용품을 비롯해 차량은 필수다. 연습장을 등록하고 전담 코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처음 골프에 입문하면 대부분 부친이 기본을 가르친다. 그러다가 교습가에게 맡긴다. 골프 전문 아카데미에 들어가 아예 합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주니어 시절에는 캐디 대신 부모가 골프백을 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골프계에서 ‘바지바람’이 생겨나는 것도, 부모가 생업을 포기하고 매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본적인 장비를 마련하는 데 수백만 원이 들고, 계절별로 골프웨어를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다. 주니어 시절에는 스폰서가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번 움직이면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해야 한다. 대회에 출전하는 주니어는 더욱 많은 연습과 필드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연간 8000만~1억원까지 들어간다는 것이 통설이다. 일부 주니어 골퍼는 전담 코치에게 골프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백지수표’까지 건네기도 한다. 최근에는 골프학과가 많아지면서 ‘대학 진학 보장’만으로는 거액의 레슨비를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들어가는 돈이 대략 1년에 1억원꼴이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프로가 되기까지 대개 10년 이상 걸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한희원(37)은 1998년 프로가 될 때까지 7억원이나 들어갔다고 한다. 이는 1990년대 이야기다. 최근 한국 골프 여제로 등극한 김효주의 경우 2004년 초등학교 3학년부터 2012년 프로 데뷔 첫 우승까지 “10억원 이상 들었다”고 부친 김창호씨가 털어놓았다. 골프 영재 교육의 또 다른 방법은 조기 유학이다. 대개는 미국·호주·뉴질랜드로 골프 유학을 간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하나 외국에 나가서 하나 비용은 연간 1억원 정도로 비슷하다. 해외는 골프 레슨이나 골프장 관련 비용이 한국보다 싸지만, 그 외의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한국에서 드는 비용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미국·호주·뉴질랜드는 공부를 해야 골프를 칠 수 있기 때문에 연간 100여 개의 주니어 대회에 참가하느라 공부가 뒷전인 한국에서보다 충실한 학교 수업을 받기에 골프 인생이 끝난 후 다른 삶을 준비하기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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