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과 온건 사이...집단적 자위권 시험대에 오르다
  • 김회권 기자·임수택 편집위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1.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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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일본인 2명 처형 위협…아베 ‘집단적 자위권’ 도마

잔학성을 고려해보면 단순 위협은 아니다. 그래서 일본은 충격에 빠져 있다. 1월20일 NHK의 정규 방송은 중단됐고, 화면에는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일본인 2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오른쪽은 일본에서 PMC라는 민간 군사업체를 운영하던 유키와 하루나(42), 왼쪽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고토 겐지(47)였다. 복면을 한 ‘이슬람국가(IS)’ 대원은 인질로 붙잡힌 두 명이 72시간 내에 처형당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둘을 살리고 싶으면 몸값 2억 달러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이슬람국가(IS)가 올린 1분40초 정도의 비디오 성명의 제목은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8500㎞나 떨어져 있는 곳의 전장에서 자발적으로 십자군에 참가한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IS와 싸우기 위해 2억 달러를 지불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했으니 일본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2억 달러를 내놔라”고 압박했다.

그리고 1월25일 IS는 현지시간 25일 자체 운영하는 알바얀 라디오에 '위협을 이행했다. 주어진 시한이 종료함에 따라 일본인 인질 유카와 하루나를 처형했다'고 주장했고 유카와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영상도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제 인질은 한 사람만 남았다. 

비디오 성명에서 암시하듯 이번 인질 사건은 2억 달러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이 숫자는 아베 총리의 ‘중동 외교’에서 나왔다. 1월16일부터 중동 4개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는 1월1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주목할 만한 연설을 했다. “이슬람국가의 위협을 막기 위해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2억 달러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인질이 된 유카와는 2014년 8월, 고토는 2014년 10월에 각각 붙잡혔다. 아마키 나오토 전 레바논 주재 일본 대사는 “이슬람국가가 아베 총리의 중동 방문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건 틀림없었던 것 같다. 심각한 점은 그들이 일본의 중동 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는 데 있다. 말 그대로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 일본이 휘말려버렸다”고 지적했다.

1월20일,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로 전해진 유키와 하루나(오른쪽)와 고토 겐지의 몸값 요구 동영상을 한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 로이터
아베, 이스라엘 국기 앞에서 “IS에 굴복 안 해”

도쿠나가 에리 민주당 참의원은 이번 사건을 두고 “IS는 일본을 적대시하지 않았지만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과 헌법 개정 등이 일본에 대한 인상을 바꿔버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조기 총선에서 압승했다는 평가를 받은 후 아베 정부는 대외 팽창 정책에 몰두했다. 2015년 방문할 국가를 50개국에서 54개국으로 늘렸다. 아베 총리는 중동에서 돌아온 직후 당장 1월29일부터는 10일간 독일·영국·프랑스·스페인·벨기에·포르투갈 등 유럽연합(EU) 6개국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다. “일본의 성장전략과 적극적 평화주의를 알리고 싶다”는 게 속내였다. 이런 아베 총리의 외교를 두고 ‘바라마키 외교’, 우리말로 ‘산파 외교’라고 부른다. 세일즈와 성과에 집착한 외교라며 일본 내에서는 ‘벼락부자 외교’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중동 순방 역시 그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IS에 대항하기 위해 주변국에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발언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강조하며 나온 노골적 대결 행태였다.

인질들의 몸값 성명이 나온 뒤, 20일 저녁에 열린 기자회견은 원래 중동 순방 성과를 알리려던 자리였지만 이내 인질 문제에 대한 질의응답 자리로 탈바꿈했다. “테러에 대해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두 번이나 강조한 아베 총리의 뒤에는 이스라엘 국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마치 할리우드 영화 같은 배경이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에서 사실상 IS와의 대결을 선언해버린 셈이다. 이타가키 유조 도쿄 대학 명예교수는 “아베 총리의 결정적인 정치적 실수”라고 단언했다. “서양 인질과 달리 일본 인질은 좀 다르게 대우해주지 않을까라는 언론의 지적도 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라는 게 이타가키 교수의 지적이다.

이스라엘에서 아베 총리 스스로가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고려해볼 때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시키는 시나리오는 봉쇄됐다. 고무라 마사히코 자민당 부총재는 1월21일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몸값도 지불할 수 없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포로 교환 형태로 바뀌었다.

하루나를 처형한 뒤 IS는 고토의 석방 조건으로 한 이라크 여성 테러리스트와의 교환을 제시했다. 요르단에서 수감 중인 사지다 알 리샤위로 2005년 요르단에서 다수의 희생자를 낸 자폭테러의 관여자다. 일본 정부는 협상단을 요르단으로 파견해 대응하고 있지만 요르단 내부에서 반대가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IS에 붙잡힌 요르단 공군 조종사의 석방 수단으로 거론되어 온 리샤위다. "일본인이 아닌 요르단인 석방이 최우선이다"는 요르단 내 여론이 암초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몸값 2억달러는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를 대표하는 상징적 숫자였고 IS는 이를 건드린 셈이다.

일본의 군사적 존재 부각될수록 반작용 커

IS 인질 문제가 어떤 식으로 튀게 될까. 인질과 관련한 동영상이 공개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일본 정부는 안보법제의 성립과 미군과의 연계 강화에 중동 정세를 활용할 뜻을 내비쳤다. IS의 성명이 나오기 전날인 1월19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미군 등 외국 군대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를 언제든지 해외에 파견할 수 있는 법안을 1월26일 정기국회 종료 전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 역시 이스라엘에서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공화당) 등을 만나 미·일 동맹의 중요성과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 등 미군 재편을 추진하는 작업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매케인 위원장은 친이스라엘 성향의 매파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을 지지한다.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도 강력한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카노 고이치 도쿄소피아 대학 교수는 “만일 아베 총리가 이런 압박을 처리하지 못하고 무르게 보인다면, 지지 기반을 잃게 된다. 반대로 인질의 목숨에 무관심해 보인다면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균형 잡기이자 딜레마다. 

일본 정부가 두 명의 인질이 잡힌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점이 부각되는 건 악재다. 유카와는 이미 잡혔던 시점부터 IS가 처형을 예고했다. 고토는 지난해 11월 가족 앞으로 몸값을 요구하는 메일이 날아왔다. 이토록 큰 사건으로 발전할 때까지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일까. 중동 정세 전문가인 다카하시 가즈오 방송대 교수는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토의 가족이 몸값 요구 메일이 왔을 때 외무성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총리관저에 보고가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외무성은 고토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유카와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해 IS는 유카와의 재판을 열기로 하고 이슬람 율법학자인 나카타 고 전 도시샤 대학 신학대 교수에게 통역으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홋카이도 대학 학생들의 IS 가담 모의 등을 적발한 사건에 관해 경찰 조사를 받으며 갈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IS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에 대해 우스 아키라 일본여자대학 교수는 “미·일 동맹의 이름으로 중동에까지 군사적으로 발을 내딛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계속한다면 테러 세력을 적으로 돌릴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정부도, 국민도 그럴 각오가 돼 있는가”라고 경고했다. 일본이 군사적 존재라는 점이 부각될수록 커지는 반작용을 아베는 간과했다. 그리고 지금 그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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