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가운데 맺힌 증오 ‘종북’
  • 이규대 기자·이종대 트리움 이사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1.29 18: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요 보수단체 성명·논평 의미연결망 분석해보니 …‘적’과 ‘나’ 가르는 논리 두드러져

시사저널은 주요 보수 성향 단체 중 활동이 활발한 축에 속하는 국민행동본부·대한민국어버이연합·자유청년연합이 최근 2년간 발표한 성명·논평을 모두 수집해 소셜 분석 솔루션 업체인 트리움에 의미연결망 분석을 의뢰했다. 28만여 개 글자, 6만여 개 단어, 200자 원고지 1800여 장에 해당하는 방대한 자료가 분석 대상이 됐다.

의미연결망 분석은 특정 발언·대화·글 등에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해 해당 발화자·필자의 논리 및 담론 구조를 분석하는 기법이다. 분석 대상이 된 세 단체의 성명·논평 중에는 다른 보수단체들과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 다수 포함돼 있는 만큼 ‘행동하는 보수’ 전반의 논리·담론 지형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월5일 서울 프레스센터 정문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옛 통합진보당의 기자회견을 비판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키워드 언급 빈도 단순 분석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는 ‘대한민국’

우선 ‘키워드 언급 빈도’부터 확인해보자. 보수단체의 성명·논평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대한민국’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두 번째다. 2013년까지 이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에 보수단체들이 적극 개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다음은 ‘북한’ ‘종북’ ‘통합진보당’(통진당) 순이다(<자료1> 참고).

키워드 언급 빈도를 단순 집계한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최근 2년간 한국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사건과 이슈 중 보수단체의 ‘프레임’은 안보 및 이념 부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특정 단체의 성명·논평은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수단이다. 이를 감안하면 보수단체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방점이 안보 및 이념 쪽에 찍혀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둘째, 가장 많이 언급된 핵심 키워드들이 각각 긍정적·부정적 성격으로 대립 전선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분석을 진행한 이종대 트리움 이사는 “1, 2위인 대한민국과 국정원이 이들 단체가 상정하고 있는 내집단(in-group)이고 3, 4, 5위인 북한·종북·통합진보당(7위 새정치민주연합 포함)이 이들 단체가 상정하고 있는 외집단(out-group)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셋째,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가 ‘대한민국’인 점이 눈길을 끈다. 보수단체들이 내놓는 성명·논평 중에는 종북·통진당 등 부정적 입장을 지닌 대상을 향한 비난·규탄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긍정적 키워드인 ‘대한민국’이었다. 이는 보수단체 특유의 담론 전개 방식과 관련된다. 성명·논평에서 부정적 키워드를 언급할 때 긍정적 키워드를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파괴하고 북한식 생지옥을 건설하려는 역적 모의’(2014년 12월24일 국민행동본부 성명) 같은 식이다. ‘긍정적 키워드’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부정적 키워드’를 제시하는 식으로 담론을 끌고 나가면서 ‘긍정적 키워드’의 자리에 ‘대한민국’을 호출하는 경우가 잦은 것이다.

선형 의미망 통한 맥락 분석

‘피아’가 명확히 구분된 세계관

이상의 특징들은 각 키워드 사이의 의미망을 배열해보는 과정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심화 의미망을 살펴보기에 앞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 30여 개를 활용해 선형으로 단순화된 의미망을 구성해봤다. 언급 빈도가 가장 높았던 보수단체들의 핵심 키워드 5개와 연결성이 큰 세부 키워드를 각각 4~5개씩 배치했다(<자료2> 참조). 이를 통해 보수단체의 성명·논평에서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종대 이사가 핵심 키워드와 세부 키워드를 붙여 구성한 보수단체 성명·논평의 주요 ‘맥락’은 다음과 같다.

①‘국정원’을 ‘무력화’하고 ‘난도질’하는 ‘검찰’의 ‘수사’를 진행하게 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②‘종북’ 세력의 ‘숙주’와 ‘결합’하고 있어 색출하는 등의 ‘대응’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③‘대한민국’의 ‘헌법’ ‘가치’가 ‘반역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나아가 ‘공산화’되고 ‘침몰’하게 되기 때문에, ‘핵개발’하는 ④‘북한’ ‘김정은’을 ‘추종’하는 ⑤‘통합진보당’ ‘일당’ 등의 ‘비호 세력’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돼야 한다는 식이다.

이종대 이사는 핵심 키워드들과 세부 키워드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담론을 형성하는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피아에 대한 명확한 구분에서 논리가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단순화하면 ‘종북’(피)-‘대한민국’(아)의 대립 구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적과 나, 부정적 대상과 긍정적 대상을 분명히 가르는 것이 보수단체 성명·논평의 논리적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심화 의미망 통한 심층 분석

모든 것의 중심에 ‘종북’이 있다

이번에는 심화 의미망이다. 키워드 수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좀 더 입체적으로 의미연결망을 구성해봤다. 앞서의 작업이 핵심 키워드를 추출해 이것이 어떤 맥락으로 보수단체의 담론을 형성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면, 심화 의미망을 통해서는 이를 떠받치는 논리 및 의식의 흐름이 좀 더 정교하게 드러난다(<자료3> 참조).

키워드들이 서로 연결되며 형성한 의미망이 자못 흥미롭다. 5개 핵심 키워드는 가로와 세로 두 개의 축을 구성하며 ‘┣’ 모양을 갖췄다. 세로축에는 보수단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대한민국’과 ‘국정원’이, 가로축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북한’과 ‘통합진보당’이 각각 놓였다. 그리고 두 축을 가운데서 연결하는 의미망의 허브는, 다름 아닌 ‘종북’이다. 빈도만으로는 4번째에 불과했던 ‘종북’이 심화 의미망을 구성해보니 가장 중심이 되는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다.

앞서 이종대 이사는 보수단체 성명·논평의 핵심 맥락을 ‘종북’(피)-‘대한민국’(아)의 대립 구도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다 언급 키워드인 ‘대한민국’과 의미망에서의 중심 키워드인 ‘종북’ 중, 담론은 ‘대한민국’발(發)이 아닌 ‘종북’발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종북’을 제외한 4개의 핵심 키워드는 국가·정당·국가기관 등 실재하는 대상이다. ‘종북’은 다르다. 뜻만 풀면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담론 영역에서는 그렇게 지목된 상대를 배제하고 밀어내는 부정적 평가가 더해진, 감정적이며 가치 중심적인 단어다. 이렇듯 감정적 키워드인 ‘종북’은 보수단체 전체 담론의 중심에 자리 잡고 다른 핵심 키워드들과의 의미망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보수단체들은 ‘종북’이라는 증오·배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정원’을 옹호하고, ‘북한’과 ‘통합진보당’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셈이다.

부정적 핵심 키워드들이 이어진 세로축이 비대칭을 이룬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통합진보당’과 관련되는 세부 키워드들은 여타의 키워드들과 거의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오로지 ‘북한’과 연결되며 의미망 오른쪽으로 삐져나와 있다. ‘통합진보당’과 ‘대한민국’ 혹은 ‘종북’과의 관련성 등은 성명·논평에서 담론으로 거의 구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이종대 이사는 “‘종북’이라는 키워드를 기점으로 모든 담론이 ‘북한’으로 수렴하고, ‘통진당’에 대한 공격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과 맞서는 ‘종북’에 대한 증오의 에너지를 토대로, 보수단체의 공격은 ‘북한’을 매개해 ‘통합진보당’을 향해 집중된다.

‘애국 시민’, 그들의 ‘그을린 사랑’

그들은 스스로를 ‘애국 진영’ ‘애국 시민’이라 칭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리는 이들을 용납할 수 없다. 국가의 안보를 해치는 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가슴속 한가운데 깊이 뿌리내린 적의 이름은 ‘종북’이다. 그렇게 사랑은 증오로 번역되고, 특정 세력을 향한 극단적 배척을 추동하는 엔진으로 작동한다. 분노의 불길로 일그러진 그을린 사랑을, 과연 우리는 건강하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