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탈환 위한 대장정 첫걸음이 시작됐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2.0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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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앞세운 MB의 반격…자원외교 비리·BBK 등 곳곳 ‘암초’

그토록 견고하게만 보였던 콘크리트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차 없이 그 틈을 파고드는 공격이 시작됐다. 지금의 여권 상황이다. “3년 후 정권 교체는 틀림없는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여’에서 ‘야’로의 교체가 아니라, ‘친박(근혜)’에서 ‘비박(근혜)’으로의 교체가 될 것이다.” 여야를 오가며 풍부한 선거 전략 경험을 갖고 있는 한 정계 원로의 2017년 대선 전망이다. 얼핏 들으면 쇼킹하지만, 곱씹어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역대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사례를 보면, 차기 권력이 현재 권력을 온전히 승계한 예가 한 번도 없다.

1992년 대선 때 당선한 김영삼 후보는 ‘민주계’ 수장으로, 당 내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계’와 죽고 살기 식의 전쟁을 벌였다. 2002년 대선에서도 역시 노무현 후보 지지 세력이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끊임없이 갈등했다. 2012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명박)계’와 박근혜 후보의 ‘친박계’가 벌인 혈전은 그야말로 유혈이 낭자했다. 최근 다소 반등세를 보이곤 있지만, 여전히 지리멸렬한 모습을 면치 못하고 있는 야당에 비해 여당의 재집권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본다면, 그 몫이 ‘비박’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당장 ‘비박’이 ‘친이계’로 온전히 연결되기는 힘들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균열이 생기고 한때 30%대 지지율마저 붕괴되면서 그동안 웅크리고 있던 친이계가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숨죽이고 있던 친이계 인사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정병국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 전 대통령, 이재오 의원,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그 선봉은 역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다. 그는 최근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MB는 지난 2013년 2월 박 대통령에게 권력을 인계한 후 2년 동안 칩거했다. 하지만 그의 회고록 출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특위’가 본격 가동될 조짐을 보이면서 압박을 받은 친이계가 어떤 식으로든 분위기 반전을 도모할 것이란 예측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와 야당에 대한 폭발력 있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물론 MB 회고록은 알맹이가 그리 없고 자화자찬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출간 그 자체에 큰 휘발성이 있어 정치권을 일순 뒤흔들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 시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때였기 때문이다. 현재 권력인 박근혜정부가 레임덕 위기감에 싸여 있는 상황이라 타이밍이 절묘했다.

“지금,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대통령의 시간> 출간이 예정된 일정에 맞춰진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MB 측은 책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청와대에 “(책 출간과 관련해)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MB 측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회고록 출간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청와대는 회고록 출간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면서, 특히 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세종시 반대 의견을 고수했다거나, 남북 관계를 비롯한 민감한 외교 비화를 소개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가 MB의 회고록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숨은 이유는 출간 시점이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한때 20%대까지 곤두박질쳤고, 집권 여당 지도부는 비박계 일색이다. 현 정권의 레임덕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형국이다. 이런 와중에 과거 정권이 마치 현 정권을 향해 칼날을 들이미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정치 단수가 높은 MB와 측근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이와 관련해 MB 정부에 몸담았던 친이계 한 핵심 인사는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회고록 출간은 미국 현지 발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됐던 일이긴 하다. 어쨌든 2년 전 정권을 현 정부에 넘겨주고, 친이계 내부에서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박근혜정부가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이젠 할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박 대통령이나 현 정권과 관련해 민감한 비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친이계가 현 정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고성 사격을 한 것일 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이 전 대통령 측의 회고록 논란을 친이·친박 싸움으로 판을 키운 것은 청와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 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친박계 인사는 “청와대가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은 게 패착”이라며 “회고록을 보면 깜짝 놀랄 내용도 없는데 청와대가 직접 나서 유감 표명을 하면서 마치 전·현직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치는 것 같은 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회고록은 청와대가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여론이 평가해줄 사안이었는데, 성급하게 나서면서 청와대가 싸움의 한 축이 돼버렸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던져놓은 그물에 박 대통령이 걸려들었다는 말이다.

1월30일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회고록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회고록 출간 이후 여기저기서 연락 많이 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과 상관없이 친이계라는 정치 세력이 다시 응집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MB의 퇴임과 함께 친이계는 정치권에서 그 존재감을 거의 상실했다. 친박계는 MB 정부 말기였던 지난 2012년 4월 총선부터 대거 약진하면서 당권을 거머쥐고 있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MB 정부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이어졌지만, 이재오 의원을 제외하고는 친이계 의원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할 정도였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친이계의 구심력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정무직으로 근무한 한 친이계 인사는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과거와는 다른 점”이라며 “그동안 친이계는 친박계의 그늘에서 찍소리 못하고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하지만 회고록 출간 이후 그 해명을 듣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권력의 중심에서 언저리로 밀려난 친이계 내에서 화색이 돌고 있는 분위기는 다른 친이계 인사의 최근 동정에서도 느껴진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이 언론의 조명을 받은 이후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사람들이 다시 연락을 해와 인사치레를 한다”며 “유력 인사들이 식사라도 한번 하자면서 만나자고 한다”고 말했다. 

5년 동안 권력을 잡았던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는 정치권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카드를 여럿 가지고 있다. 친이계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서는 여야에서 두루 공감대가 넓혀지고 있는 형국이다. 개헌 전도사로 통하는 이재오 의원의 한 측근은 “이 의원이 한때 개헌론의 최전선에 나섰다가 최근 공개 행보를 줄이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서 봐야 한다”며 “개헌 추진 전략에서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다른 세력을 내세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개헌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많았지만, 정치란 꾸준히 이슈화를 시도하면 결국은 이슈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이 의원이 보여준 것”이라며 “개헌론이 현실화되는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말했다.

“2007년 경선과 2008년 공천 뒷얘기 있어”

친이계는 제2의 회고록 출간에 대한 냄새도 풍기고 있다. 이 또한 향후 정국에 메가톤급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는 소재다. MB 회고록 출간을 주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전 대통령에게 ‘박 대통령과의 애증을 다뤄야 한다’는 여러 전직 장관과 수석들의 건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MB의 측근인 이동관 전 홍보수석도 “(이번 회고록은) 정치적 민감성 있는 얘기는 전부 다 뺀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 얘기라든가 2008년 (총선) 공천 뒷얘기 등”이라고 밝혔다. 정국 상황에 따라 이런 것들을 깔 수도 있다는 의도를 슬쩍 내비친 것이다.

친이계는 2016년 총선에서 상당한 수의 원내 의석을 확보해 세력을 키운 후, 제2의 집권을 노릴 공산이 크다. 이를 친이계 내에서는 ‘정권 탈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빼앗겼던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지금 여권 내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대부분 친이계를 포함한 비박계 인사들이다. 김무성 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대표, 홍준표 경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다. 친박은 이완구 총리 후보자 정도만 거론될 뿐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더구나 이완구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친이계가 다시 국민 지지를 받기는 불가능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MB의 실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워낙 큰 탓이다. MB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보다 MB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MB의 비용>이란 책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캐나다 정유회사 하베스트 날 인수를 둘러싼 의혹 등 자원외교 비리 문제, 여기에 지난 2007년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BBK 문제 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MB가 불쑥 정치의 한복판으로 진입한 데 따른 또 다른 파장인 셈이다. 그래서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제는 MB 빛깔을 탈색하고 가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제는 2016년 총선 향해 진군이다” 
사무총장 이어 원내수석부대표도 확보한 친이계


새누리당 내부 권력 구도가 ‘친박계’에서 ‘비박계’로 급격히 쏠리는 것도 ‘친이계’로서는 반가운 대목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원내수석부대표에 친이계인 조해진 의원을 임명했다. 이에 대해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유 원내대표는 뼛속부터 친박 아니냐. 결국은 친박과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결국은 접점을 찾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조 의원을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한 것도 계파와는 상관없는 인물론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경선 전까지는 자신을 비박이 아니라고 공언해온 것과 달리, 원내대표 당선 후 첫 행보로 친이계 인사를 수석부대표에 기용하자 유 원내대표가 탈박(脫朴)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와 친이계 사이에 사전 교감설이 거론되기도 한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한 표 한 표가 소중한 상황에서 친이계가 전폭적으로 유 원내대표를 밀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특히 원내수석부대표는 대야 협상의 실질적인 행동대장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자리다. 전임 김재원 전 수석부대표가 친박 핵심 인사로서 ‘세월호 협상’ 등 대야 협상의 고비마다 청와대의 입장을 대변해온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친이계로서는 김무성 대표에 이어 유 원내대표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의지를 당 운영에 관철시킬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친이계의 세력화 움직임은 2016년 총선을 앞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 2012년 총선에서 낙천한 친이계 일부 인사들은 이미 내년 총선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친박계가 득세하며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던 과거와는 다른 정치 지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MB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친이계 인사는 “2008년 총선이나 2012년 총선 때처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학살 수준으로 공격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당내 권력 구도가 비박 중심으로 짜이면서 내년 총선에서 친이계가 한판 승부를 걸어볼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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