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집사 아들 ‘혈세 4조6000억 투자’ 관여 의혹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2.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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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 캐나다 정유사 ‘하베스트 날’ 인수…자문사 서울지점장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아들

어린이집 2000개를 새로 지을 수 있는 혈세 4조6000억원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캐나다 정유사 하베스트 날(NARL) 인수 배경을 둘러싼 파문이 거세다.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실상을 접한 국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검증을 했기에 폐공장과 다름없는 곳에 천문학적 금액의 투자가 이뤄진 것이냐”며 분노하고 있다. 당시 한국석유공사는 공식적으로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결정했으나, 그 과정이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 받기도 전에 계약하러 캐나다 출국

한국석유공사가 혈세 4조6000억원을 들인 하베스트 날 인수와 관련해 미국의 금융투자회사인 메릴린치의 서울지점 투자자문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투자를 결정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단독 확인됐다. 메릴린치 서울지점은 당시 이명박(MB) 대통령의 집사로 알려진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아들이 지점장으로 있던 곳이어서 석유공사가 대통령의 측근과 관련된 업체를 자문사로 선정해 밀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대통령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메릴린치 자문보고서 ⓒ 시사저널 최준필
MB 정부의 대표적 자원외교 실패 사례로 꼽히는 하베스트 날 인수는 당시 투자자문사 메릴린치의 투자자문보고서에 기초해 이뤄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4조6000억원을 투자해도 좋다는 근거와 명분이 사실상 메릴린치의 투자자문보고서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투자자문 과정이 엉터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석유공사가 메릴린치로부터 관련 보고서를 전달받은 지 24시간도 채 안 돼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석유공사가 하베스트 날을 인수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한 날짜는 한국 시각으로 2009년 10월22일이다. 그런데 석유공사가 당시 메릴린치의 투자자문보고서를 받아 본 것은 그보다 하루 전인 10월21일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 특위는 최근 이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더구나 당시 석유공사가 전달받은 보고서는 정식 책자도 아닌 이메일 파일 형태였다. ‘Project Hermes’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영문으로 작성됐으며 모두 55쪽으로 구성돼 있다.

석유공사는 자료를 받은 지 불과 하루 만에 계약을 체결하고 보도자료를 냈다. 2009년 10월20일 강영원 사장은 신규사업처장으로부터 메릴린치의 하베스트 자산평가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날 저녁 김성훈 부사장이 비행기를 타고 하베스트 날 매입을 위해 캐나다로 출국했다. 보고서가 전달되기도 전에 출국부터 한 셈이다. 캐나다 현지 시각으로 10월20일 도착한 김 부사장은 곧바로 협상장인 캘러리로 간 후 그날 밤 일사천리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정황들로 미루어 보고서와 상관없이 이미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고서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형식적 행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 시사저널 포토
석유공사는 왜 메릴린치 보고서를 정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서둘러 투자 판단을 내린 것일까. 야당 측은 이것이 방만한 투자를 넘어 정권 실세 아들의 기업을 밀어주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당시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으로서 하베스트 날 투자를 관장했던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아들 김형찬씨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메릴린치가 투자자문사로 선정되는 과정부터 의혹투성이다. 석유공사는 MB 정부 때 하베스트사 인수를 비롯해 4건의 대형 해외투자 사업에 대한 자문료로 메릴린치에 총 248억원을 지급했다. 새정치연합 부좌현 의원은 “하베스트 날 인수 건을 제외한 3건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선정 절차조차 없었고, 그나마 절차가 있었던 하베스트 날 인수의 경우에도 ‘밀어주기’ 정황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메릴린치 자문보고서에 ‘김형찬’ 명시”

석유공사는 해외투자자문사를 선정하기 위해 2009년 3월, 제안서를 제출한 10개 업체를 상대로 3차례에 걸쳐 평가를 진행했다. 그해 3월11일, 1차 평가에서 메릴린치는 계량평가에서 중·하위권인 공동 5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자문사 선정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인 비계량적 평가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아 1위로 1차 평가를 통과했다. 1차 평가 후, 보름여 만인 3월28일 열린 2차 평가에서 메릴린치는 계량평가에서 전체 4개 업체 중 3위에 머물렀으나, 이번에도 비계량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2위로 2차 평가를 통과했다. 2차 평가 이틀 후 석유공사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1위 업체를 제치고 2위를 한 메릴린치를 자문사로 최종 선정했다.

당시 석유공사의 ‘자문사 선정위원회’에는 강영원 사장을 위원장으로 서문규 석유공사 부사장(현 사장)과 김성훈 신규탐사 본부장 등이 있었고 두 사람은 이후 모두 승진했다. 당시 선정위원회는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좌현 의원은 “메릴린치가 석유공사에 제출한 자문 제안서에는 상무 직함으로 김백준 전 기획관의 아들 김형찬(Peter Kim)씨가 명시돼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형찬씨가 몸담았던 메릴린치가 자문을 맡았던 건은 하베스트만이 아니었다. 40%나 비싼 가격으로 영국의 석유탐사업체 다나를 인수했다는 의혹 뒤에도 메릴린치가 있다. 석유공사는 2010년 9월 당시 주당 13파운드(2만3629원)였던 다나의 주식을 18파운드(3만2717원)에 제안해 4조169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시가총액(2조8900억원)보다 1조1269억원이나 비싸게 산 것이다. 당시는 유럽 경제 위기 여파로 인수 직전 다나 주가가 11파운드(1만9993원)까지 곤두박질쳤던 상황이다.

다나 인수 자문을 맡았던 곳은 메릴린치인데 당시 주당 20파운드가 적정하다는 자문을 내놓는 등 무리한 투자를 부추긴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8월19일에 열린 석유공사 이사회에서조차 메릴린치 자문보고서에 대해 “다나의 부채 상환 등을 고려할 때 추가로 10억 달러가 소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공사의 다나 인수와 관련해 메릴린치는 자문료로 74억원을 챙겼다.

메릴린치와 MB 정부에 대한 유착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박범계 새정치연합 의원이 “한국투자공사(KIC)가 2008년 1월 미국 메릴린치에 약 20억 달러를 투자하는 과정에 MB의 측근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박 의원은 “MB의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아들 김형찬씨는 (KIC의) 전격적 투자 결정이 있은 뒤 메릴린치의 서울지점장으로 영입됐다”고 주장했다. 2008년 국감 때는 당시 최경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이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조원을 ‘몰빵 투자’해 1조원의 원금 손실을 낸 것을 지적했을 정도다. 메릴린치와 김형찬씨에 대한 의혹이 예전부터 제기돼온 것이다.

MB 회고록 “자원외교 성급한 평가 옳지 않다”

하베스트 날 인수와 관련해 메릴린치 부분은 향후 국정조사에서 핵심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 측은 ‘친이(명박)계’인 권성동 간사를 중심으로 최대한 방어하려 하고 있지만, 야당은 해당 의혹을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MB 정부의 자원외교 진상 규명을 위해 참여연대와 민변 등으로 구성된 국민모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이진요)에서도 하베스트 날 인수 건을 집중 검증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의혹이 일파만파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MB 집사의 아들 김형찬씨는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에 갔다”는 등 여러 소문만 무성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펴낸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통해 “오랫동안 유전 개발을 해온 서구 선진국들도 많은 검토 끝에 시추해서 기름이 나올 확률은 20퍼센트에 불과하다 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자원외교의 성과를 성급히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석유공사 측은 이런 논란들에 대해 “현재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언론을 통해 별도 입장을 내놓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SK에너지 보고서 “하베스트 날 가치 매우 낮다” 


한국석유공사가 캐나다 정유회사 하베스트 날을 인수한 지 3년 만에 국내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수를 요청하고 다닌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로 SK에너지는 석유공사의 요청을 받고 하베스트 날 인수 건에 대해 검토보고서를 만들었다. 시사저널은 2012년 12월 SK에너지가 작성한 ‘NARL Feasibility Study 결과 보고서’ 전문을 입수해 내용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하베스트 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메릴린치와는 달리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담고 있었다.

SK에너지는 2012년 10월7일부터 11월18일까지 약 40일 동안 15명이 캐나다 현장을 방문하는 등 세밀한 검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설비 노후화, 전문 인력 부족, 정제 시황 악화 등 현재의 환경하에서 지분의 매각 가치는 매우 낮을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 “미국 동부 및 유럽 등 양대 시장에 인접하고 있는 등 장점에도 불구, 운영 컨트롤타워 부재로 회사 전체 운영을 최적화하려는 노력과 밸류체인(Value Chain·기업 내 부가가치 창출에 관련된 일련의 활동 및 기능) 간 의사소통이 부족해 점진적으로 경쟁력 약화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그 밖에도 “적절한 설비 투자가 진행되지 못해 지속적인 영업손실 발생에 따른 엔지니어 근무 환경 악화로 다수 엔지니어가 퇴사해 유경험 엔지니어가 부족하다” 등 부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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