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청와대’의 무엇이든 감추기
  • 서명수│전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2.1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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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자폐 성향... 출입기자에게 비서실 직제표조차 안 줘

청와대, 즉 대통령비서실은 국정 운영의 컨트롤타워이자 권력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다. 그래서 필자가 청와대를 처음 취재하게 됐을 때는 권력의 속살을 안에서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몹시 흥분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년여 동안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청와대가 소통은커녕 ‘불통’의 상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함을 넘어 무기력증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초기 2년간 청와대를 출입한 이후 이명박 정부 후반 2년과 박근혜 정부의 지난 2년을 연이어 취재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극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보안’ 생명처럼 여기는 정보기관 방불케 해

결론적으로 ‘박근혜 청와대’는 무엇이든 무조건 감추고 싶어 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자폐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된 인사 문제에서부터 미국 방문 과정에서 인턴 성추행 스캔들로 물러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인수위 시절 보여준 ‘불친절하고 고압적이면서도 알맹이 없는’ 브리핑은 불길함의 예고편이었다. 마치 ‘보안’을 생명처럼 여기는 정보기관처럼 청와대는 모든 것을 감추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역대 청와대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관행적으로 배포해오던 대통령비서실 직제 기구표와 전화번호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를 오랫동안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이야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각 수석과 비서관 산하에 누가 일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지만 출입 경력이 짧은 기자들은 상당 기간 애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1월16일 밤 전용기 내에서 기자들에게 회의 참석 성과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엇보다 청와대가 명실상부한 국정 운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 생활과 국가 운영에 직결되는 정책을 누가 어떻게 조율하는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도 청와대의 비밀주의는 국정 운영에 자신 없어 하는 ‘삼류 아마추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이명박 청와대’ 시절에는 늘 청와대 직제표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궁금한 사항에 대해 관련 수석은 물론 비서관과 행정관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취재를 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청와대가 수석비서관급 인사만 공식 브리핑을 할 뿐, 비서관급과 하위직 인사는 아예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 다른 경로를 통해 파악해 내정되거나 ‘알려졌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을 담당하는 춘추관장(1급) 인사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극단적 비밀주의는 보안을 중시해온 박 대통령의 오랜 습성 때문이지만 소통 부재를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기자들의 전화를 홍보 담당 외에는 아예 받지도 않았다.

2013년 9월, 기초연금 논란이 일자 진영 복지부장관은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청와대가 받아주지 않자 항명성 사표를 썼다. 그는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원박(元朴)’이었다. 국무위원과 서면으로 소통하려는 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새누리당 대표와의 회동도 정례화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를 출입하면 대통령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국무위원도 대면하기 어려운 박 대통령을 기자가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동행 취재하면 출국하는 비행기에서 박 대통령과 악수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필자 역시 박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에 동행하면서 전용기 내에서 박 대통령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기자들이 상주하고 있는 춘추관 기자실을 직접 방문한 것은 지난해 1월 신년기자회견 때가 처음이었다. 박 대통령이 춘추관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과 인사를 나눌 때 한 종편 방송 여기자가 박 대통령에게 다가가 “한 번 안아봐도 되느냐”며 반갑게 포옹을 한 사진이 논란을 빚은 것도 이때였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1년 만에 다시 신년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자실을 찾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광우병 논란이 빚어지자 직접 춘추관 구내식당을 찾아 기자들과 삼계탕 오찬을 했다. 수시로 청와대 뒤편 인왕산 등산 행사를 갖고 기자들과 막걸리를 함께 마시는 등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를 실천했다. 필자는 이 전 대통령과 함께 하산하면서 30여 분 동안 당시의 여러 국정 현안들에 대해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었다.  

철저히 ‘이너서클’ 중심으로 국정 운영 

박근혜 대통령의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외부 행사가 없으면 오후 6시면 청와대 본관에서 퇴근한다. 지난해 박 대통령의 출근 수행을 둘러싸고 문고리 권력들 사이에서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 주인이 교체되면서 청와대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조정됐다. 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열림에 따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나 각 수석실 회의도 늦춰진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의 공식 업무 시간은 이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해서는 상당히 느슨한 것이 사실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얼리버드’(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서양 격언) 원칙을 실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오전 7시30분이면 출근해 각종 회의를 주재했다. 때문에 수석과 비서관 및 행정관들의 출근 시간은 이른 새벽으로 앞당겨질 수밖에 없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서 주말도 없었다.

청와대 내부의 소통 부재는 ‘이너서클’을 중심으로 한 국정 운영의 당연한 결과다. 청와대는 정치권 출신 인사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성분 검증’을 거쳤다. 이른바 ‘이너서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인사는 청와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이너서클에서 OK 승인이 나면 청와대에 입성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박 대통령은 기로에 섰다. 스스로 변화의 중심에 서느냐, 변화의 대상이 되느냐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전임 대통령들이 임기 중반 이후 측근 비리 등으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면 박 대통령은 일방통행식 리더십으로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 민심과 동떨어진 채 섬에 고립된 청와대를 지지할 국민은 없다. 지금 청와대에는 자리 보전에 급급한 월급쟁이 직원 외엔 잘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 스스로 공언한 ‘적재적소’의 인사가 절실한 곳은 바로 청와대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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