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이 없으면 쓰레기이거늘…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2.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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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회고록 논란 통해 본 처칠·나카소네·블레어·부시의 회고록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 사전적 의미의 회고록은 개인을 주제로 삼는 자서전과는 다르다. 내면보다는 외부 사건에 중점을 두고 설명하며 그 시대의 모습을 이해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 점에서 회고록은 일종의 역사다. 그래서인지 전직 국가원수 등 정치 지도자의 회고록 출판이 예고되면 그를 둘러싼 얘깃거리가 풍성해진다. 주목의 대상이 돼서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바로 ‘정직함’인데 이는 회고록의 생명이다. 다만 저자가 책의 중심이기에 사실이 덮여지거나 왜곡될 소지도 없지 않다. 최근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의 시간>도 그렇다. 출판된 후부터 정계에서 험악한 말들이 오가는 등 정쟁의 소재가 돼버렸다. 내용의 사실 여부와 함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까지 거론되면서 자칫하면 회고록 때문에 검찰 조사가 시작될 판이다. 가뜩이나 회고록 문화가 빈약하기만 한 우리 풍토인데, 가장 생생한 증언이어야 할 직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진실성 시비에 휘말렸다.

<대통령의 시간> 덕에 해외 정치 지도자들의 회고록도 최근 재조명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책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1874~1965년)가 쓴 <제2차 세계대전>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직업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 유일하게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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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칠-유일한 비(非)문인 노벨상 수상자

“내가 공직 때 했던 모든 일은 비서들에게 구술해 기록했다.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문서와 명령, 회의록 등을 만들었는데 100만 단어에 달한다. 이것들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건들 속에서, 그리고 당시의 지식들을 토대로 제작됐다. 그래서 결점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기록들은 당시 전쟁과 영연방 및 대영제국 정책의 최고 책임자가 남긴 것이다. 내가 역사가의 입장에서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해서다. 나는 이것이 역사에 대한 공헌이고 미래에 유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1953년 처칠 전 총리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을 때 그와 경쟁했던 후보들은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그레이엄 그린 등이었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고 있던 사람들 속에서 그의 회고록은 문학적 가치를 뛰어넘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니 서문의 내용은 사실로 입증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사악한 자의 악의는 착한 자의 허약함으로 강화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사악한 자’는 히틀러였고, ‘착한 자’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영국과 프랑스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의 겁먹음,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던 영국과 프랑스의 여론이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고 회고록에서 설명했다.

역사를 넘어 기업가들도 처칠의 회고록을 즐겨 읽었는데, 창업기에 영업의 신으로 불리며 혼다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후지사와 다케오 전 부사장은 처칠의 회고록에서 기업 경영을 연구했다고 훗날 밝혔다. 

■ 나카소네-위안소 언급해 역사논쟁  중심에

일본에서는 회고록에 등장한 증언이 역사 진실 문제로 확대되기도 했다. 고치 시에 있는 ‘평화자료관’이라는 시민단체는 2012년 1월26일 기자회견을 열고 하나의 사료를 내놓았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발릭팍판에서 위안소를 운영한 증거라며 방위성 방위연구소에서 25쪽 분량의 기지설명서를 찾아내 공개한 것이다. 자료에는 위안소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도 있었는데 여기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이름이 관계자로 명시돼 있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78년 <영원한 해군-다음 세대를 위한 이야기>라는 회고록을 펴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해군 중위로 복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고백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 직접 위안소를 설치해 운영했고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 한 문장은 이후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유력한 증거가 됐다. 지금에 와서 보면 용기 있는 회고록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파장이 커지자 그는 자신이 쓴 회고록을 30년이 지나서 부인하기에 이른다. 2007년 1월23일 외국특파원협회와의 기자회견에서 “(위안소 설치는) 사실과 다르다. 휴식을 위한 해군 공원과 오락시설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기에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시민단체 ‘평화자료관’은 이런 나카소네의 부인을 뒤집기 위해 방위연구소를 뒤졌던 것이다.

■ 블레어-노동당 출신의 노동당 정책 비판

처칠의 회고록이 세상에 등장한 후 반세기가 지나 영국의 또 다른 정치 지도자가 회고록을 한 권 냈다. 그런데 다른 책들과는 꽤나 이질적이었다. 1997~2007년 영국 총리를 맡았던 토니 블레어의 회고록은 ‘맛본 적이 없는 공포’를 안고 다우닝 스트리트(영국 총리 관저)에 발을 디딘 날부터 사임에 이르기까지의 기록물이다. <A JOURNEY(여정)>라는 제목인데 블레어 전 총리는 서문에서 ‘이 책을 구식 정치 회고록과는 다른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썼다.

블레어 회고록의 특징은 자신이 총리 시절 겪었던 문제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구체적인 정책 제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노동당 출신인 그는 케인스주의의 ‘재정 적자를 통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비판했다. “납세자는 거액의 재정 적자가 증세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면 체감 경기가 비관적으로 변하고 투자와 구매력이 떨어질 것이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마치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현 영국 총리의 말을 듣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회고록이 출판된 날 캐머런 총리의 측근들이 블레어 회고록의 일부를 트위터로 퍼뜨린 이유다.

블레어 전 총리가 물러난 후 노동당 내부에서는 그의 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회고록에서는 비판에 대한 참회나 사죄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이라크 전쟁 참전을 결정하는 내용에 100쪽 이상을 할애했지만 막상 참전에 대한 평가는 후대의 몫으로 남겼다.

블레어 회고록이 출판됐을 때 영국 일간지 ‘뉴스오브더월드’는 이 책을 두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평가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 이런 인상평을 남겼다. “부시 대통령은 매우 간단한 세계관의 소유자였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런 세계관은 그의 단호한 리더십과 연결돼 있었다.”

■ 부시-“내가 물고문 등 잔학행위 승인했다”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친구인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Decision Points(결심의 순간들)>라는 회고록을 펴냈다. 그가 재임 중 결정한 14가지의 결심이 매 장마다 정리돼 있다. 아내인 로라와의 결혼과 금주(禁酒) 등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본격적인 내용은 3장부터 시작된다. 9·11 테러 전략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그리고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대응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 구제 등에 대한 경위와 이유 등이 다뤄졌다.

책 전체에 애국심이 넘치는 그의 회고록 속에서는 의외로 담담하게 실패를 인정하는 부시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재민 110만명, 확인된 사망·실종자만 2500명을 낳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대응을 회상하며 그는 “더 빨리 결정해야 했었다”고 토로했고, 포로 학대 사건으로 미국의 인권 수준을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를 두고는 “물고문 등 9·11 테러 용의자에게 가한 가혹행위는 내가 허용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미디어의 반응은 혹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책의 서평 기사에서 “요즘 대통령의 회고록은 자신의 삶을 검증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사학자가 파고들기 전에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고, 뉴욕타임스는 “문장이 가장 캐주얼한 대통령의 회고록이다. 하지만 ‘방심했다(blindsided)’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하는 것은 국정을 운영한 사람으로서 너무 부주의하다”고 냉정하게 꼬집었다.

혹독한 점수를 받았지만 부시 회고록은 미국의 강고한 보수 프레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외부의 압력에도 왜 굴하지 않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버락 오바마 정부가 겪고 있는 고초 때문이다. 부시 정부의 화두였던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여전히 오바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냉각된 남북 관계도 그 시발점이 보수적인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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