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자로 죽거나 자식에게 돈을 남겨주나”
  • 브라질 상파울루=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3.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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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야외 미술관 ‘이뇨칭’ 설립자 베르나르도 파즈

브라질은 먼 나라다. 이뇨칭(inhotim)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브라질의 제1 도시 상파울루에서 600㎞ 정도 떨어져 있는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작은 도시 브루마지뉴에 있는 미술관이다. 미나스 제라이스는 노천 철광산이 널려 있다. 몇 달 동안 포클레인으로 산을 긁어내면(철광석을 퍼내면) 산봉우리 하나가 없어지는 곳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난 도로에서는 30톤 이상의 대형 트럭들이 철광석을 쉴 새 없이 운반하고 있다. 도로는 트럭에서 날린 철광석 가루 때문에 온통 붉은색이고 계곡물도 붉다.

200만㎡ 넓이의 이뇨칭은 열대 밀림이자 식물원, 야외 미술관이다. 10분의 1쯤이 야외 미술관과 갤러리, 식물원으로 개방돼 있다. 이뇨칭 미술관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면 전기자동차가 달리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인공 호수, 초현대적인 건축 언어로 지어진 갤러리, 갤러리 옆에 바짝 다가선 밀림 등에서 인간에 의해 통제되는 질서가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엘리우 오이티시카의
밀림에 자리 잡은 21개의 갤러리와 100여 개의 야외 설치작품, 셀 수 없이 많은 실내 전시 작품은 세계 30개국 출신 스타 작가의 작품이다.

올라퍼 앨리아슨은 초대형 망원경을 만들었고, 매튜 바니는 밀림 속에 불시착한 UFO 같은 대형 유리돔 안에 초대형 트랙터를 구겨넣었고, 퉁가는 밧줄과 빈 유리병, 포도주 색 액체 같은 허름한 소재로 보석처럼 빛나는 대형 샹들리에 같은 작품 <true rouge>를 선보이고 있다.

밀림 속에서 환영 같은 현대미술 경험

크리스 버든이 수십 개의 대형 H빔을 대지에 내리꽂은 <beam drop>이라는 작품은 이뇨칭이 어떤 곳인지를 한눈에 설명한다. 작품 뒤에 보이는 먼 산봉우리는 한창 철광석을 파내느라 붉은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 봉우리도 1년 안에 평평해질 것이다. 크리스 버든은 그 산에서 H빔이 날아와 대지에 내리꽂힌 듯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이 이곳 땅의 역사를 응축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시우도 메일렐레스 갤러리에는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 깨진 채로 바닥에 깔린 유리가 청각을 자극하고 가시철망과 사각의 담장이 시각과 청각의 진실을 되묻게 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이글레시아스는 밀림 속에 파묻힌 유리 건물을 통해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환영인지 경계를 지워버리는 감각을 선물했다.

그중 초대형 사각 콘크리트 박스를 물위에 띄워놓은 듯한 현대적 건축미를 선보이고 있는 아드리아나 바레장의 갤러리는 잘 포장된 공간 속에 육식성의 욕망을 담아냈다. 1층 갤러리에는 겉모습처럼 단정한 흰색 타일을 붙인 벽이 부서진 채 설치돼 있다. 가까이 가보면 깨진 담벼락 사이를 포유류의 붉은 내장이 가득 채우고 있다. 2층은 대조적으로 푸른색의 비릿함으로 가득 차 있다. 난폭한 바다의 이미지를 벽면 가득히 모자이크식 화면 구성의 타일 벽화로 채웠다. 

아드리아나 바레장은 이뇨칭의 설립자 베르나르도 파즈의 다섯 번째 부인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세계 50위권 부자 순위에 올랐던 65세의 파즈는 여섯 번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뒀는데 요즘은 이뇨칭 안에 자리한 집에서 산다. 벨루 오리존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3세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옷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파즈는 철광석으로 거대한 부를 일궜다. 그가 결정적으로 돈을 모은 계기는 1980년대 초 중국에 철공장을 세우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빚에 허덕이는 제철소 문을 닫고 철광석 수출에만 전념해 남미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됐다.

① 크리스 버든의 ② 퉁가의 ③매튜바니 ④ 이뇨칭의 설립자 베르나르도 파즈
부자의 사회 기여 새로운 모델 제시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그는 전문경영인에게 사업을 맡기고 은퇴한 후 컬렉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애초 이뇨칭은 그가 식물을 모아뒀던 곳이다. 마다가스카르와 캐리비안 해, 멕시코의 희귀한 나무를 모았다. 그러다 미술에 눈을 뜨면서 초기에는 20세기 중반 이전 브라질 모더니스트 작품을 수집했지만 작가 퉁가의 조언을 듣고 모두 팔아치운 뒤 1998년부터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만 모으기 시작했다.  

파즈는 부자의 사회 기여 활동에 새로운 모델을 선보였다. 그는 소장품이 늘어나자 브라질·미국·독일·한국·영국·포르투갈 출신의 다국적 큐레이터를 고용했다. 2011년 1300종의 야자수를 포함해 4500종의 식물 자원을 보유한 식물원을 브라질 정부의 식물원협회에 가입시켰다. 무엇보다 2008년 이뇨칭 미술관을 사립 미술관에서 공공기관으로 바꾼 것은 획기적이다. 연간 예산이 공개됐고 이사회 멤버가 들어섰다. 이뇨칭 미술관에 공개된 미술품은 소유권이 파즈에게 있되 이뇨칭에 대여한 형식으로 돼 있다. 매년 6000만 달러를 이뇨칭 미술관 운영비로 대고 있는 파즈는 매일 아침 8시에 식물원을 순찰한다.

그의 이뇨칭 프로젝트는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트럭 운전수 또는 광산 노동자가 되거나 히우나 상파울루 같은 대처로 흘러나가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컸던 아이들이 이제는 큐레이터, 관광 가이드, 예술품 복원사 등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뇨칭은 1200명을 고용하고 있는 브루마지뉴에서 철광회사 발레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직장이다.

베르나르도 파즈는 이뇨칭에 럭셔리 호텔을 짓고 있으며 인근에 상업 공항을 짓는 데 대한 허가를 정부로부터 받아냈다. 공항이 완공되고 도로가 확장되면 히우나 상파울루에서 오는 데 1시간이면 족하다. 현재 연간 40만~50만명인 방문객이 100만명으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파즈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싶지 않다. 왜 부자로 죽거나 자식에게 돈을 남겨주나? 나는 이뇨칭을 예술이나 문화에 평생 접해보지 못한 사람을 위한 곳으로 만들 것이다. 이뇨칭은 내 생전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적어도 1000년은 갈 것이다.”

이뇨칭 관람을 마치고 떠나려 할 때 소매를 걷어붙인 백발의 한 신사와 마주쳤다. 부드럽게 눈인사를 건넨 그가 파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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