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망 넓히는 사이 큰 물고기 잡을 구멍 ‘숭숭’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3.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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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고위 공직자 비리 규정 대폭 삭제…국회 논의 거치며 알맹이 빠져

‘김영란법’이 논란을 빚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법 적용 직업군을 무분별하게 확대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못지않게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대책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게 문제다. 애초 김영란 전 위원장이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낸 원안(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 법안)은 공직자의 ‘부정 청탁 금지’와 ‘이해 충돌 방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입안됐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 충돌 방지 조항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해 충돌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사적 이해관계가 개입돼 공정하고 청렴한 공직 활동이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말한다. 김영란법 원안과 이후 현 정부에서의 조정안은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 규정’(4조)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이견이 크다는 이유로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통째로 삭제됐다. 법안 통과에 쫓기면서 논란의 여지가 큰 부분은 빼고 가자는 편의주의 때문에 원안이 심각히 훼손된 것이다.

국회, ‘이해 충돌 방지’ 규정 통째로 들어내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이 빠지면서 김영란법은 빈껍데기가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원안 12조(고위 공직자의 사적 이해관계 직무 수행 금지)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는 임용 전 2년 내에 재직했던 법인이나 단체 또는 대리·고문·자문 등의 용역을 제공했던 고객 등과 관련한 특정 직무를 임용 후 2년간 수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원안은 고위 공직자가 직위에 임용되거나 취임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지난 3년간 민간 부문에서 한 업무 활동의 명세서를 소속 기관장에게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업무 활동 명세에는 고위 공직자가 임용·취임 전 재직했던 기관·단체 등과 업무 내용, 고문·자문·상담 내용 등을 소상히 밝히도록 했다. 특히 원안은 15조(가족 채용 제한) 규정을 통해 ‘고위 공직자는 소속 공공기관이나 산하 기관, 공공기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기관에 공개 경쟁 채용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가족이 채용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러한 법 조항 도입은 그동안 고위 공직자가 교묘히 법망을 피해 자신과 이해관계에 있는 특정 기업체 등의 이익을 챙기는 활동을 한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김영란법 원안의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은 이러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용한 장치였다. 하지만 막판 시간에 쫓겨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는 논란이 계속되자 보완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김영란법 표결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진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이미 제정된 법률에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면 국민 여론은 개혁 후퇴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보완 입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잉태부터 탄생까지 기구한 운명을 겪은 김영란법이 본래의 법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재입법될 수 있는 시간은 딱 1년 6개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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