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손바닥에 들어와 돈과 연애하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3.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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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소설 등 유료 콘텐츠, 모바일 서비스로 큰 인기

인터넷 시대에 공짜 콘텐츠로 호객 행위를 하며 수익을 올리던 포털업자의 등쌀에 고사 위기에 몰렸던 콘텐츠 생산자들이 모바일 혁명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웹툰·웹소설 등을 제공하는 ‘레진코믹스’ ‘탑툰’ ‘조아라’ 등 포털 서비스에 기반을 두지 않은 독립적인 콘텐츠 제공회사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2013년 개설된 레진코믹스는 게임회사인 NC소프트로부터 50억원을 투자받았는데 2014년 누적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웹툰 서비스회사인 탑툰은 2014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회원 수 800만명에, 누적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웹소설 제공업체인 조아라는 최근 하루에 평균적으로 올라오는 소설이 2000편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고 지난해 매출은 70억원을 넘었다.

ⓒ 서울문화사 제공
이들의 성공에는 스마트폰의 확산이 한몫했다. 현재 국내 인구 중 약 3900만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노령 인구와 유아 인구를 빼면 온 국민이 스마트폰을 쓴다는 얘기다. PC는 사무용·업무용으로 주로 쓰이지만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손안에 있는,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미디어다. 그래서 영화나 만화, e북 보기 등 엔터테인먼트용으로 적합하다. 웹툰·드라마·영화 등을 업무 시간에 사무실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는 출퇴근 시간 등 짬이 나는 시간에는 언제든지 즐길 수 있다. 게다가 5세대까지 등장한 무선인터넷 속도는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 안에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재깍재깍 대령한다. 웹소설을 제공하는 조아라의 경우 모바일 사용자가 82%로 PC 사용자 18%를 크게 웃돌 정도로 콘텐츠 시장은 이미 모바일로 굳어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모바일 결제가 간편해진 것도 유료 콘텐츠 시장이 살아나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간단한 터치만으로 콘텐츠의 유료 결제를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불법으로 다운받기보다 안전하게 결제하고 즐기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됐다.

간편한 모바일 결제 시대에 맞춰 유료 콘텐츠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중 제일 먼저 수혜를 보는 곳이 바로 유료 웹툰 사이트다. 과거 인터넷 혁명 시대에 먼저 치명상을 입었던 분야가 출판만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2000년을 전후해 펼쳐진 인터넷 혁명에 만화가 적응하면서 생겨난 웹툰은 출판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와 만났다. 포털 ‘다음’이 2003년 뉴스 섹션에 ‘만화속세상’이라는 웹툰 코너를 개설했다. 만화 작가 강풀은 칸과 페이지를 파괴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는 스크롤 방식을 <순정만화>라는 작품에 처음 적용시켰고 이것을 계기로 웹툰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정교화됐다. ‘네이버’도 이에 자극받아 2005년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이버의 가세로 웹툰은 포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콘텐츠가 됐다. 하루 1000만명가량이 방문하자 포털 웹툰 서비스는 한국 만화 사업을 대표하는 플랫폼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웹툰은 만화 제작 시스템도 바꿨다. 과거에 만화가 지망생은 보통 유명 만화가 밑에서 몇 년을 문하생으로 지내다 편집자로부터 글과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만화 잡지에 등단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웹툰 시대의 도래는 작가 지망생과 불특정 다수의 웹툰 독자가 인터넷 게시판을 두고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작가의 탄생을 공유했다. 웹툰 초창기 <마시마로> <파페포포> <마린블루스> 등 이전과는 다른 감성을 지닌 작품이 이런 직거래 방식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사람들은 이를 ‘웹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인터넷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웹툰의 룰은 소재와 주제 그리고 표현의 한계를 없애고 새로운 스타 작가도 등장시켰지만 ‘원고료’라는 것을 없애면서 수많은 작가와 만화가 지망생을 ‘미생(未生)’으로 내몰았다. 포털업자는 페이지뷰가 높은 특정 작가와 작품에만 제대로 된 고료를 지급했다. 웹툰이라는 생태계가 말하자면 최후의 승자만 살아남는 고대 로마의 검투장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웹툰이 인터넷 시대에 킬러 콘텐츠라는 점이 확인됐지만 포털업자들이 웹툰을 호객용 공짜 콘텐츠로 취급하며 ‘웹툰=무료’라는 인식이 강화됐다는 것은 모순이다.  

여성 전용 웹툰 플랫폼 ‘마녀코믹스’의 스마트폰 시연 장면. ⓒ 서울문화사 제공
웹툰, OSMU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포털 서비스를 통해 확산한 웹툰의 거의 유일한 장점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보면서 웹툰은 만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OSMU(One Source Multi Use)’, 즉 원작 하나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웹툰은 이미 그림으로 구현돼 있어서 따로 콘티를 만들 필요가 없기에 드라마와 영화 원작으로 안성맞춤이다. 예전의 드라마와 영화 원작 공급처가 시나리오 공모전이나 소설이었다면 요즘은 웹툰이라고 할 수 있다. 웹툰은 다른 스토리 분야에 비해 독립적이고 상대적으로 저비용으로 2차 저작이 가능하다. 때문에 “요즘 드라마 제작자와 영화감독은 웹툰만 쳐다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6년 강풀의 <아파트>로 시작된 웹툰의 영화화는 <바보> <순정만화> <26년>으로 가능성을 보였고 윤태호의 <이끼>나 최종훈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웹툰은 드라마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주호민의 <무한동력>, 박윤영의 <여자만화 구두>, 이종범의 <닥터 프로스트>, 이충호의 <지킬 박사는 하이드씨> 등이 드라마로 제작돼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 윤태호의 <미생>에서 핵폭탄급 폭발력을 보여줬다.

웹툰의 드라마화는 2015년에도 현재형이다. 현재 ‘마녀코믹스’에 연재되고 있는, 조선시대 책을 사고파는 책쾌와 뱀파이어 선비의 사랑을 그린 조주희·한승희의 <밤을 걷는 선비>가 지상파 방송 편성이 확정돼 7월에 안방을 찾을 예정이다. 원작을 뛰어넘는 제작 능력을 인정받은 <미생> 제작사가 강의 신 하백과 한 소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하백의 신부>를 차기 예정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웹툰은 K팝과 드라마에 이어 제3의 한류 붐을 이끌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여러 나라의 수많은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한국산 웹툰을 번역해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다. 네이버·다음 등 몇몇 포털에서도 웹툰의 글로벌화를 추진 중이다.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가진 기술력으로 웹툰을 글로벌 콘텐츠의 첨병으로 삼아 새로운 한류 브랜드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KT경제연구소가 올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000억원인 웹툰 시장 규모는 2018년 8800억원대에 이른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란 예측이다.

웹툰 플랫폼 경쟁적으로 생겨

웹툰의 성장세는 스마트폰 혁명으로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결제가 간편해지고 많은 웹툰 이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웹툰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미스터 블루’ ‘프라이데이 코믹스’ ‘야툰’ 등 20개 정도의 중소 플랫폼이 운영 중이며 앞으로 계속 생겨날 예정이다.

‘레진코믹스’와 ‘탑툰’의 유료화 모델 성공은 그런 움직임에 물꼬를 트게 했다. 만화가 더 이상 대형 포털의 호객용 공짜 콘텐츠가 아니라 작가의 온전한 창작물로서, 제값을 내고 즐기는 콘텐츠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창작자들도 자신의 몫을 챙기며 창작에 몰두할 수 있게 됨으로써 더 훌륭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성인 웹툰 플랫폼의 시장 크기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이 생기면 생길수록 이용자가 늘어나고 시장도 계속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의 독자는 유명 포털 같은 이름값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좋은 작품을 쫓아 움직이고 있다. 콘텐츠 시장의 ‘고퀄(높은 퀄리티)’ 경쟁에 의해 새로운 부의 지도, 문화계 권력의 판도가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여심 매혹하는 웹툰 ‘마녀코믹스’ 


유료 콘텐츠 시대에 등장한 ‘마녀코믹스’(mcomics.co.kr)는 여성 전용 웹툰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말 그대로 여자를 위한 모든 만화를 한곳에 모았는데 2014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인기작 <밤을 걷는 선비>와 <하백의 신부>,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진 <궁> <탐나는도다> <예쁜 남자> 등 탄탄한 작품들로 라인업을 꾸렸다. <밤을 걷는 선비>와 <하백의 신부>는 곧 드라마로 재탄생할 예정이어서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남성 성인 만화 플랫폼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성 만화 전문 플랫폼이 생겼다는 것은 콘텐츠 분야에서의 블루오션 발견이고 경제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뉴스다. 이와 함께 여자만을 위한, 여성의 속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주는 특별한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여성들에게는 반가운 봄소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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