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바람아 불어다오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3.1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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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 자신감 갖는 새누리당…야당 후보 난립도 호재

“한 곳만 이겨도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난 3월9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4·29 재·보궐 선거 목표를 이렇게 정리했다. 서울 관악 을과 광주 서 을, 경기 성남 중원 등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로 국회의원 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3곳 모두를 열세 지역으로 보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기류다. 최소한 한 곳은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래 야당 의석이었던 곳 아니냐”며 4월 재·보선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던 새누리당이 이처럼 자신감을 갖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은 3월12일 4월 재·보선 지역에 인천 서·강화 을이 포함되자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당 소속 안덕수 의원이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는데도 “어차피 선거 구도로 보면 우리에게 훨씬 유리해진 것 아니냐”(한 핵심 당직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곳이 전통적으로 여당 우위 지역이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인천 서·강화 을은 옛 통진당 의원 지역구 3곳보다 훨씬 수월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기존 3곳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당장 새누리당은 경기 성남 중원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곳”(함진규 경기도당위원장)으로 분류했다.

3월6일 주한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쾌유 및 종북 세력 척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인공기 등이 그려진 그림을 불태우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다가 4곳 다 이기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은 여당 후보로는 이례적으로 이곳에서 재선(17, 18대) 고지에 올랐던 신상진 전 의원을 일찌감치 공천했고, 신 전 의원은 진작부터 바닥을 누비고 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대한의사협회장 출신으로 지역 내 조직 기반이 탄탄한 신 전 의원이라면 야당에서 어느 누가 나오더라도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새누리당이 승리를 점치는 직접적인 이유는 야권 표 분열 가능성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옛 통진당은 물론 정의당과 ‘국민모임’까지 독자 후보를 추진하고 있다. 막바지 ‘야권 연대’가 될 수는 있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당 핵심 관계자는 19대 총선 때 신 전 의원이 야권 단일 후보였던 김미희 옛 통진당 의원에게 불과 654표 차이로 분패했던 점을 언급하며 “재·보선에선 젊은 층의 투표 참여가 적고 조직표의 위력이 크게 작용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야권 표가 조금이라도 나뉜다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서울 관악 을도 지금껏 새누리당엔 난공불락이었지만, 이번엔 다른 분위기가 읽힌다. 이곳 역시 야권 지지층 표가 나뉠 경우를 상정한 기대감이다. 성남 중원과 마찬가지로 새정치연합과 옛 통진당, 정의당, 국민모임이 모두 후보를 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때 이상규 옛 통진당 의원에게 4.9%포인트 차이로 패했던 오신환 당협위원장을 진작에 후보로 확정했다. 당시엔 무소속으로 출마한 야당 성향의 김희철 전 의원이 28.5%나 득표해 야당 표가 양분된 특수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번 재·보선도 비슷한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광주 서 을 선거와 관련해서도 ‘어게인 이정현’을 꿈꾸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여권엔 불모지이지만 천정배 전 장관의 새정치연합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야권 전체가 술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광주 출신의 정통 관료이자 박근혜 대통령 호남 인맥의 핵심인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영입해 정면대결을 펼치겠다는 방침이다. 야권 분열에 대한 비판 여론을 등에 업고 ‘실력자’를 내세워 지역 발전론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다. 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솔직히 애초에는 4월 재·보선이 힘든 싸움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전반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형성돼가고 있다”며 “광주야 워낙 특수한 곳이니까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지만, 혹시 이러다가 4곳 모두 이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월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4·29 보궐 선거 경기 성남 중원에 공천을 신청한 신상진 전 의원(오른쪽)에게 추천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가의 보도 ‘종북’ 다시 고개…역풍 우려도

새누리당의 재·보선 기대감은 비단 야권 분열이라는 외부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해온 ‘종북 프레임’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호기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박완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을 계기로 새누리당이 우리에게 또다시 ‘종북 딱지’를 붙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새누리당은 이번 피습 사건 이후 범인 김기종씨와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다소 억지스럽게’ 묶어내려 애쓰고 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에게 “김기종과 연루된 의원들을 솎아내고 이들을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라”고 압박했고, 심재철 최고위원은 아예 “테러범 김기종은 바로 얼마 전까지 이종걸·우상호·문병호·김경협 의원 등의 도움으로 국회를 드나들었다”며 야당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 같은 흐름은 여권 전체의 큰 방향이기도 하다. 김씨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있자마자 검찰과 경찰이 무려 100명이 넘는 매머드급 수사팀을 꾸린 게 단적인 예다. 게다가 수사의 한 축은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에 맞춰져 있다. 미국 정부는 오히려 이번 사건을 극단주의자의 독자 범행으로 여기는 듯한 기류인데도, 우리 내부에서 이를 ‘큰 판’으로 만들어가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34쪽 기사 참조).

새누리당의 대응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가까운 한 최고위원은 “4월 재·보선을 앞둔 때라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은 우리에게 분명 호재”라며 “선거를 치러야 하는 만큼 아무래도 정치적인 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이 사무총장과 심 최고위원 등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은 이 같은 흐름을 단호히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선 정반대 효과를 낳을 것이라며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도 많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새정치연합이 발끈할수록 논란이 커질 테니 우리로선 나쁠 게 없다”고 밝혔다.

무리한 종북 논란이 여당에 역풍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는 않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얼마나 높은데, 선거 때만 되면 ‘종북’이니 ‘빨갱이’니 한다고 표가 모이겠느냐”면서 “자칫 다수의 말 없는 중도층을 돌아서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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