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의 뒷돈 거래를 까발려라”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3.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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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발 기획 사정에 따른 정국 후폭풍에 여야 촉각

박근혜 대통령이 칼을 뺐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돌격”을 외쳤다. 검찰 수사는 기다렸다는 듯 즉각적이다. 어느 누가 봐도 ‘준비된’, 말 그대로 ‘기획 사정’ 정국이다. 

이 총리의 측근 중 한 명은 “총리의 레토릭(rhetoric)이 아니다. 저렇게 강성의 표현은 여태 써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저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습니다”라고 선포했던 이 총리의 발언은 총리가 직접 쓴 것이 아닐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기획자가 따로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청와대와 정부가 밀어붙이는 지금의 사정 정국을 바라보는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검찰의 칼이 종국에는 어디를 향할지 지금은 가늠하긴 어렵지만, 일단 ‘친이(명박)계’는 납작 엎드렸다. 이 총리가 ‘방산 비리’ ‘자원개발 비리’ ‘대기업 비자금과 횡령’ ‘사익을 위한 공문서 유출’이라는 4대 부패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 뉴시스
“대통령으로선 으름장 놓을 필요 있어”

TK(대구·경북) 지역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총리의 ‘부패와의 전쟁’에 저리 힘을 실어주는 것을 보면, 며칠 하고 끝날 사안은 아닌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적 함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내유보금 과세, 최저임금 인상 등 기업엔 악재가 많은 요즘, 사정의 날을 들이댄다 하니 경제 활성화보다는 경기가 냉동될까 그게 걱정이다. 특히 기업 목을 죄면 자유로울 수 있는 의원들이 몇이나 되겠나”라고 말했다.

여권에서 보는 이번 사정 정국의 의도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 이를 위해 대통령의 최대 강점인 도덕성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의원은 “인사 난맥, 세월호 참사, 비선 실세 개입 논란 등으로 국민이 잊었지만, 원래 박 대통령의 힘은 ‘원칙’과 ‘신뢰’였다. 원칙은 빛이 좀 바랬다고 해도 해먹진 않을 것이란 ‘도덕성’에 관한 신뢰는 살아 있다”며 “나는 깨끗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전 정권이 얼마나 더티(dirty)했는지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년을 허송한 박 대통령으로선 올해 어떻게 해서든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이번 사정 정국이 국면 전환용 카드로 읽히는 이유다. 친이계 등 여권 일각에선 여전히 ‘개헌’을 말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선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자서전까지 펴내 ‘나는 죄 없다’고 소리쳤으니 박 대통령으로선 여권의 한 전략통 인사의 말 그대로 으름장을 놓을 필요가 있었다. 3월12일 이 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 때 그 옆에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서 있었던 것도 박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3월19일 친이계 전격 회동도 무기한 연기되는 등 촌극이 연출됐다. “(MB) 정권이 끝난 지 2년이 지났고 (부패를) 잡으려면 그때 (정권 당시) 다 잡아야 한다. 검찰이 그때 부패는 가만뒀다가 정권이 바뀌면 하니 ‘정치검찰’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이재오 의원), “기획 수사를 해서 성공한 경우가 없다. 누가 기획을 했는지 정말 새머리 같은 기획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다 집권 3년 차에 (기획 수사를) 했는데 다 실패했다.”(정병국 의원), “비리가 없는데도 정책 실패, 경영 실패, 이런 부분을 사정의 칼날과 잣대로 다시 재단하면 그 부분에 관해선 문제가 있지 않은가.”(강승규 전 의원)

이렇듯 이번 사정 정국의 칼날이 MB 정권을 향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친이계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개헌 등 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사정 정국이 ‘공직사회 길들이기’라는 시각도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공무원을 죄인 취급해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기획이라는 설이다. 행정자치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이런 고강도 사정이라면 우리 공직사회에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일하는 조직으로 바꾸려는 의지는 보이는데 너무 채찍 위주”라며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론 ‘총선 공천권’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여의도 정가를 살피는 한 정보통 관계자는 이번 사정 정국을 “20대 총선 공천권을 둔 예비전쟁”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여당은 오로지 내년 총선만 보고 움직인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등 공천 룰 논의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에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미국 방식인 오픈프라이머리는 여야가 한날한시에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공천 룰 논의만 하다 기존 룰대로 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이 지지율 40~50%를 유지하고 과거 정권, 즉 친이계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면 ‘비박(非朴)’ 진영 전체가 도매금으로 ‘흠집 있는 집단’이 된다. 지지율이 바닥이 아닌 다음에야 BH(청와대)도 어느 정도 공천 지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4대 부문 개혁에 웬만큼 성과를 낸다면 광복 70주년인 올해 박 대통령의 치적도 빛을 낼 수 있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다는 것은 그만큼 세게 쥐어짜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야권 규합’과 ‘여당 주도 정국’ 등 역풍 가능성

사정 정국을 반기는 쪽은 일부 친박계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아직 우리가 건재하다는 것을, 박 대통령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다.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는 지역민이 늘어나고 있다”며 “그동안 몇 차례의 당내 경선에서 친박계 결집이 모래알이란 비판을 들었지만, 친이계가 결집하면 반대로 우리도 손을 잡게 된다”고 말했다.

사정 정국이 당초 의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나는 야권의 규합이다.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새정치민주연합이 사정 정국의 파고에 따라 크게 뭉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혹 새정치연합으로 사정의 바람이 불면 김한길·안철수 등 굵직한 인물들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시기의 문제다. 사정 정국이 국민 여론을 움직일 경우 4·29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이는 곧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체급을 올려주게 되면서 다소 수평적으로 재편된 당·정·청 관계의 무게추가 당 중심으로 다시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각에선 전 정권과 대기업을 향한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별 소득 없이 끝날 경우, 오히려 레임덕이 아주 일찍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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