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라고 얕보지 마, 이기잖아
  • 김경윤│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15.04.0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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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김태형, 롯데 이종운, KIA 김기태 감독 초반 돌풍

초보들의 거침없는 행진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올 시즌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프로야구 감독들이 KBO리그 초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다. ‘선 굵은 야구’를 지향하는 두산 김태형 감독(48)과 ‘조용한 리더십’을 표방하는 롯데 이종운 감독(49)은 초보답지 않게 강한 장악력을 발판으로 팀의 순위 싸움을 이끌고 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새 출발을 한 ‘중고 신인’ 감독들의 활약도 뛰어나다. LG에서 KIA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김기태 감독(46)은 최악의 전력난을 딛고 연승의 휘파람을 불고 있고, 김성근 감독(73)은 만년 꼴찌 한화를 개조하고 있다. 최악의 전력난, 침울한 팀 분위기 속에서도 호성적을 이끄는 새 감독들의 활약상에 야구팬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베어스맨 두산 김태형 감독, 팀을 장악하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베어스맨’이라 불린다. 1990년 두산의 전신인 OB에 입단한 후 20여 년간 줄곧 두산 베어스에서만 선수와 코치 생활을 했다. 2011시즌이 끝난 후 감독 후보군에서 탈락해 잠시 SK 배터리코치로 일했지만, 올 시즌 친정팀 두산의 감독으로 복귀해 스프링캠프 때부터 강한 리더십을 발산했다.

ⓒ 뉴시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김태형 감독은 장악력이 강한 지도자다. 선수 때부터 그랬다. 김 감독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두산 홍성흔에 따르면, 김 감독은 선수 시절 군기반장 역할을 했다. 감독 부임 이후에도 성향은 그대로 드러났다. 두산의 한 선수는 “김태형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잘못된 행동을 한 선수들을 따로 불러 가차 없이 야단을 쳤다. 김 감독의 카리스마에 훈련장엔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말했다. 초보 감독 행보로선 파격적인 모습이다.

김태형 감독의 카리스마는 두산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지난해 두산의 팀워크는 좋지 않았다. 특유의 허슬플레이(민첩하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중력이 실종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김 감독은 특유의 장악력으로 색깔 되찾기에 나섰다. 김 감독은 비시즌 기간 동안 수비에서의 허슬플레이와 적극적인 공격 야구를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그리고 3월28, 29일 잠실 NC와의 개막 2연전과 4월1일 대전 한화전에서 이런 모습이 극대화됐다. NC전에선 두산 김현수·오재원이 몸을 사리지 않는 호수비로 투수의 부담을 덜어줬다. 롯데에서 이적한 뒤 LG를 상대로 승리 투수가 된 장원준은 “역시 두산은 수비가 강한 팀이다. 야수들의 거침없는 수비 플레이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화전에선 과감한 ‘초구 공략’으로 타선의 힘을 극대화시켰다. 김태형 감독은 “스코어링 포지션에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대로 보고 있는 선수들은 엄하게 꾸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은 4월2일 대전 한화전에서 패할 때까지 개막 3연승을 달렸다.

외유내강 롯데 이종운 감독, 팀 분위기 일신

롯데 자이언트 이종운 감독은 팀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느낌이다. 롯데는 지난해 ‘CCTV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롯데 프런트 고위층이 선수단 숙소에 설치된 CCTV 화면을 사찰해 사생활을 침해했고 선수들은 단체 행동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 사건은 정치권까지 나서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부산 야구팬들은 “롯데를 불신한다”며 시민구단을 만들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런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이종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감독은 다른 지도자와는 다르게 선수들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을 내세워 부드럽지만 엄격한 팀 분위기를 만들었다. 롯데의 한 선수는 “그 어느 때보다 팀 분위기가 좋다. 적당한 긴장감과 편안함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이종운 카드는 프런트와 선수단 모두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다. 롯데의 한 프런트 관계자는 “말이 없는 사람이 더욱 무서운 법이다. 이종운 감독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직력을 다지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는 토종 에이스 장원준이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마운드 전력이 약화됐다. 하지만 현재 롯데는 타선의 힘을 바탕으로 선두권에서 순위 싸움을 하고 있다. 사실 롯데는 매년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거두다 여름부터 주저앉는 경향이 많았다. 현재까지 나름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종운 감독이 여름 슬럼프 기간에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독배 받은 KIA 김기태 감독, 팀 재건 성공

김기태 감독이 KIA 타이거즈의 감독 제의를 받아들였을 때, 주변에선 “독이 든 성배를 마셨다”고 표현했다. KIA의 팀 전력이 예년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KIA는 비시즌 기간 동안 주력 선수들이 다수 이탈했다. 키스톤 콤비인 안치홍·김선빈이 동반 입대했고 양현종까지 해외 진출을 노리는 분위기였다. 많은 전문가가 KIA를 최하위 후보로 평가했다. 하지만 KIA는 해외에 있던 윤석민의 복귀와 양현종의 잔류로 투수진이 안정됐다.

문제는 야수였다. 김기태 감독은 특유의 ‘형님 리더십’으로 베테랑 야수들과의 관계를 새로 정립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베테랑 선수들을 다독였고 그동안 상처를 입었던 많은 선수를 팀에 녹여냈다. 대표적인 선수는 최희섭이다. 최희섭은 고질적인 부상과 이전 코칭스태프와의 불화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김기태 감독은 비시즌 동안 최희섭을 끌어안으며 그의 부활을 유도했다. 최희섭은 현재 김기태 감독에게 매료돼 있다. 그는 “감독님을 위해서 야구를 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는 경기에서 표출되고 있다. 최희섭은 3월28, 29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개막 2연전에서 6타수 3안타, 1홈런 2볼넷을 기록하는 등 무서운 기세로 배트를 돌리고 있다.

당초 KIA는 엄격한 선후배 문화와 권위주의가 강한 팀이었다. 김기태 감독도 원칙을 중시하는 지도자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합리적인 운영 방식을 통해 엄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한편, 선수들에겐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있다. KIA는 개막전 이후 3연승을 달리며 단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과감하게 새 지도자를 감독으로 영입한 두산·롯데·KIA는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상위권 싸움에 나서고 있다. 아직 프로야구 전체 판도를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세 구단이 반전에 성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은 파격적인 선수 운용을 펼치는 지도자다. 전문가들조차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선수 기용을 하며 경기를 치른다. 김 감독은 개막 이후 예상 밖 선수 기용법으로 위기를 타파해나갔다. 만년 하위 한화의 팀 성적도 꿈틀대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4월1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1번 타자로 송광민을 내세웠다. 보통 1번 타자는 발이 빠른 선수를 기용한다. 한화엔 이용규, 나이저 모건 등 1번 타자에 적합한 선수가 많지만 김 감독은 발이 느린 송광민을 톱타자로 출전시켰다. 최근 타격감이 좋은 송광민에게 출루를 맡긴 뒤 이용규-김태균-나이저 모건으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에서 득점을 노리겠다는 생각이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내내 이런 파격적인 라인업을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까지 3루수를 맡았던 송광민을 외야수로 보직 이동시킨 후 1일 두산전부터는 다시 3루 수비를 보게 했다.

투수 기용도 예측 불허다. 당초 김성근 감독은 5년 차 좌완투수 유창식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창식은 1일 두산전에서 계투로 깜짝 등판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발투수는 가장 먼저 나오는 투수라고 보면 된다. 언제든지 투수는 교체될 수 있고 중간으로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선발-계투-마무리로 이어지는 현대 야구의 틀 속에 자신의 생각을 가둬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큰 틀에서 투수 로테이션을 가져가고 있지만 언제든지 경계선을 허물어 팀의 전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김성근 감독의 파격적인 선수 기용은 막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펼쳐진다. 4년간 1군 무대를 벗어나  있었던 김 감독은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데이터를 분석해 세밀한 작전을 세우고 있다. 지난 4월2일 대전 두산전에선 수비 포메이션 변화로 팀 승리를 챙겼다. 당시 한화는 두산을 상대로 5회 초까지 4-2로 앞서 있었다. 5회 초 수비 2사 1, 3루 동점 위기를 맞았다. 상대팀 타자는 정수빈. 김 감독은 외야수들을 좌측으로 극단적으로 이동시켰다. 밀어치기에 능한 좌타자 정수빈이 우측으로 끌어치기를 하도록 함정을 판 것이다. 이와 동시에 유격수 권용관을 2루 쪽으로 배치했다. 정수빈의 끌어치기 타구가 우측으로 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정수빈은 한화 벤치가 유도한 대로 끌어치기를 했고 공은 중전 안타성 코스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공을 권용관이 잡아내 아웃 처리했다.

김성근 감독의 파격적인 선수 기용과 데이터에 기초한 작전, 심리전이 만년 최하위 한화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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