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도덕성 심각한 타격 입힐 것”
  • 감명국·조해수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4.13 09: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완종 자살, 정국에 미치는 파장···재보선 영향은 의견 엇갈려

#1. 2004년 3월11일 낮 12시반 무렵. 경찰에 한 신고전화가 접수됐다. “한남대교 남단 쪽에 사람이 투신했다.”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었다. 이날 오전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TV 생중계를 통해 방영됐다. 노 대통령은 친형 노건평씨가 남 사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것과 관련해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본 남 사장은 바로 자택을 나서 한강에 몸을 던졌다. 노무현 정부 집권 2년 차가 시작되던 시점에 터진 이 자살 사건은 당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바로 다음 날인 12일 노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가결로 이어졌다.

#2. 2009년 5월23일 오전 11시. 부산대병원 원장이 공식 브리핑을 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전 8시23분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이미 의식이 없었고 사망했다”고 밝혔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친인척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고,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뒷산인 봉화산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정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집권 2년 차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에 빠지며, 국정 지지율이 20.7%까지 떨어졌다(리얼미터 2009년 6월24일 조사). 

박근혜 대통령이 4월10일 청와대를 방문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을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세상 떠나면서 거짓말 남기고 갔겠나’ 정서

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의 잇단 인사 낙마 사태와 청와대 문건 유출 등으로 집권 1~2년 차를 보낸 박근혜 정부는 3년 차인 올해 접어들어 사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원외교와 방산업체 비리 등 이명박(MB) 정부가 타깃이 되는 모양새였다. ‘친이계’는 반발했지만, 한때 20%대까지 급락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모처럼 반등에 성공하며 40%대를 다시 회복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도 순항했다. 특히 야권 우세 지역 일색인 4·29 재보선에서 고전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오히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전패’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급반전이 이뤄졌다. 전임 정부들을 수렁 속에 빠뜨렸던 자살 정국이 이번 정부에서도 조성된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여당에는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어제(4월9일) 일간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32.8%까지 떨어졌다. 지난주 주간 집계가 37.2%였는데 오늘도 많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대통령 지지율 하락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핵폭탄급 사건이 터졌다”며 “리스트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핵심 실세들이기 때문에 정권 차원의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 금품을 줬다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났고 공소시효 때문에 기소는 쉽지 않겠지만, 현 정권의 도덕성에는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국민들의 정서에는 ‘설마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한 사람이 마지막 메모를 남기면서 거짓말을 남기고 갔겠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런 의심을 받는 인사들이 현직에서 직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이택수 대표 역시 “사정 정국을 통해 국면 전환을 꾀했는데, 그 역풍을 맞았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 크다.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듯하다”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과 여당에 악재인 것은 맞지만,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성완종 전 회장의 단순한 기억 착오에 따른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날짜나 직함에서 (메모지 내용이) 일부 틀린 게 발견됐다.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칫 정치 공방만 가열된 채 논란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전체가 혼란에 휩싸인 채 소모전으로 일관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간 진영 논리 속에서 정작 민생 정치는 또 뒤로 밀리는 상황이 발생할까 두렵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서로 비난만 하는 그런 상황이 걱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무튼 박근혜 정부는 도덕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나마 가장 큰 장점으로 그것을 내세웠는데, 일정 기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력 핵심들이 논란이 되는 것 자체로도 국정 주도에 영향을 받겠지만, 파장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여론의 향배가 결국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선거 격차 줄여도 결과 뒤집기는 어려울 듯”

향후 사정 정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현우 교수는 “당장 검찰은 무리한 수사에 대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자연히 수사는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추가로 더 파헤치는 데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호 교수도 “지난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죽음 때와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검찰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당장 코앞에 다가온 4·29 재보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전국적인 선거가 아닌 일부 지역 재보선의 성격상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팽팽한 구도였다면 영향을 미치겠지만, 현재 워낙 야당이 어려운 판세여서 이를 뒤집을 상황이 되기는 쉽지 않다. 격차를 줄이는 정도는 몰라도 결과 자체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현우 교수도 “재보선은 이번 이슈에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택수 대표는 “선거가 불과 보름여 남았기 때문에 충분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면 후보들에게도 영향이 미치고, 새정치연합으로서는 패색이 짙었던 선거인데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여겨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새정치연합은 이 기회를 국면 반전 카드로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다. 이미 당 차원에서 강력 대응할 채비에 나섰다. 현재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검찰의 메모지 은폐 의혹과 현 정권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새정치연합은 검찰이 유족 측에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를 전달하지 않다가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나간 후 갑자기 메모지 내용을 밝히게 된 배경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 성 전 회장이 박근혜 정권 전임 비서실장에게까지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만큼 돈이 어디까지 흘러들어갔는지 압박할 계획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