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유병언 딸이 한국 사법부 이겼다
  • 최정민│파리 통신원 ()
  • 승인 2015.04.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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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법원 섬나씨 한국 인도 결정 제동 ‘드림팀’으로 구성된 변호인 주장 먹혀

하나의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1월7일 프랑스 항소법원은 한국과 프랑스의 범죄인 인도 협정에 따라 492억원의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 섬나씨를 한국에 송환하라고 선고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4월1일 프랑스 대법원은 항소법원의 판단을 뒤집었다. 유씨에 대한 한국 인도 결정에 제동을 걸고 사건을 항소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유씨는 ‘모래알 디자인’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세모그룹 계열사로부터 컨설팅비 등의 명목으로 48억원을 받는 등 모두 492억원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프랑스 경찰이 유씨를 체포해서 구금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40일이었다. 다만 변호사를 선임해 송환에 불복하는 소송을 낼 경우 지연이 가능해진다. 1년 정도까지 법정 다툼이 가능해서다. 지난해 5월 파리 인근 고급 아파트에서 체포된 유씨는 그 직후 소송을 위해 거물급 변호사들을 선임해 화제가 됐다.

ⓒ 일러스트 오상민
유씨 변호인, 한국 언론의 집단적 린치 우려

사건 초반 르몽드의 보도에 따르면, ‘악마의 변호사’로 불리며 이른바 거물 악당들의 변호도 사양하지 않는, 아무도 맡지 않는 자를 변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파트릭 메조뇌브 변호사는 유씨의 대변인 격으로 카메라 앞에 자주 섰다. 그는 “내용적으로 프랑스에서 유씨의 경제 활동과 세월호 경영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명확한 증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유로 유씨의 한국 인도를 성립시킬 수 있는 조건이 불충분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메조뇌브는 한 발짝 더 나갔다. 그는 한국의 사법 환경을 언급했다. “한국에는 여전히 사형제도가 존재하며 고문의 위험성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유씨에 대한 인도 요청 역시 정당하지 못하다고 항변했다. 한국 측의 인도 요청이 “(세월호 사건의 희생양을 삼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며 “이런 이유로 인권의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르몽드의 한국 특파원인 필립 메스메는 “한국에서는 어떤 변호사도 유씨의 변호를 맡지 않을 것”이라고 당시의 한국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이유에서 프랑스 사법부의 성격을 고려해볼 때 유씨의 송환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올해 1월 상황이 역전됐다. 파리 항소법원은 변호인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유씨 일가 재판 과정, 한국 정부의 송환 요청 자료를 검토한 결과 유씨가 한국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를 밝히며 한국 인도를 결정했다. 항소법원에서 인도 결정이 떨어지자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프랑스 언론들은 일제히 “유씨의 한국 송환에 ‘파란불’이 켜졌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경제주간지인 ‘챌린지’에 따르면, 유씨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인 라셀 랭동 변호사는 지난해 12월17일 공판 직후 “모든 사항이 불분명하다. 이번 재판의 근원은 혈연 관계”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랭동 변호사를 비롯한 유씨의 변호인단은 한국에서 벌어질 언론에 의한 집단적 린치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 선고 직후 변호인단 중 한 명인 에르베 테밈 변호사는 “프랑스로서는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양, 공정 재판  기대 못해”

올해 초 송환 결정이 나자 에르베 테밈은 즉각적으로 항소 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결국 이번에 파기 환송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프랑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결국 한국 사법제도의 공정성을 의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변호인단이 내세운 논리의 궤는 오로지 이것 하나였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양을 찾는 분위기에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변호인단의 주장이 먹혀들었다는 게 정황상 가장 잘 어울린다.

거물급 변호사의 영입 역시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사건 초기 유섬나씨가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 소개된 메조뇌브 외에도 면면을 보면 단순한 거물 변호사 선임이 아니라 ‘드림팀’을 구성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하다. 파트릭 메조뇌브와 라셀 랭동, 에르베 테밈에 이르는 변호인 라인은 프랑스 법조계와 정계, 그리고 좌·우파를 모두 아우르는 포진이었다. 파트릭 메조뇌브는 현 집권당인 사회당 인사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주로 변호를 맡아왔다. 그만큼 미디어 노출에 익숙한 인물로 이번 유씨의 재판 초기에 한국 정부에 강도 높은 비판을 공개적으로 쏟아내는 악역을 자임했다.

파기 환송 직전의 공판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에르베 테밈의 경우, 메조뇌브와는 정반대로 프랑스 우파 정당인 대중운동연합 수뇌부인 장 프랑수아 코페 전임 대표의 변호인 출신이다. 여기에 비교적 젊은 여성 변호인인 라셀 랭동이 합류했다. 그녀가 속한 로펌은 스타 변호사인 카밀 크슈너가 있는 곳이다. 카밀 크슈너는 ‘국경 없는 의사회’의 발족 멤버이자 사회당 출신으로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냈던 베르나르 크슈너의 딸이다.

이번 파기 환송 결정에 대해 프랑스 대법원은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사법부에 대한 불신인지 아니면 거물급 변호사들의 선임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하는 것도 추론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1월7일 송환 결정 때와 달리 어떤 프랑스 언론도 이번 파기 환송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은 파트릭 메조뇌브와 에르베 테밈, 라셀 랭동이 속한 로펌에 이번 결정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한-프랑스 관계 껄끄럽게 만든 세월호 여파 


‘세월호’ 사건과 프랑스는 어떠한 교차점도 찾을 수 없는 별개의 영역이지만,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프랑스에 사업체를 두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 남부 리모주에 대규모 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점, 무엇보다 유 전 회장 자신이 ‘아해’라는 작가명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었다는 점 때문에 한국과 프랑스 관계에 적잖은 파장이 있었다.

유 전 회장의 활동 영역이 예술 분야였던 만큼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문화예술 분야였다. ‘아해’라는 작가명으로 열렸던 루브르와 베르사유의 전시가 문제가 된 탓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우환 작가의 베르사유 전시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그랑팔레에서 열린 아트페어인 ‘아트파리’의 원래 주빈국은 한국이었지만 세월호 사건 직후 ‘싱가포르와 남아시아’로 급하게 주빈국이 교체돼 진행됐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예정된 이유는 올해가 ‘한-프랑스 상호 교류의 해’였기 때문인데, 이 행사의 존폐마저 위태로웠던 이유는 프랑스 측 집행위원장이 바로 아해의 루브르 전시를 성사시켰던 앙리 루아레트 전 루브르 관장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프랑스 상호 교류의 해’ 행사는 오는 9월에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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