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오세훈·남경필·원희룡 깃발 들어올리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4.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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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수론’ 앞세워 성완종 게이트 직격탄 맞은 여권에 ‘세대교체’ 바람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율에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도 여당이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문제는 대선 후보 지지율이다. 야당 주자들에 비해 뒤진다. 더 큰 문제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여권의 주요 대선 후보들이 실제 대선에 나설 경우, 과연 본선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점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계속해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여권의 최대 고민으로 차기 대권 주자의 경쟁력 부재를 꼽았다.

4월12일 국회 사랑재에서 새누리당 ‘원조 쇄신파’ 인사 30여 명이 모였다. ⓒ 연합뉴스
기존 60대 ‘여권 5룡’,  성완종 강풍에 흔들 

실제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권의 대선 후보 1~5위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완구 총리, 김문수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정몽준 전 의원 등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이들을 차기 대권의 주인공으로 보는 데 의구심을 갖는다. “새로운 잠룡의 출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윤 센터장은 “집권 3년 차인 올해는 잠룡이 등장해야 대선 경쟁력이 생긴다. 내년이면 늦다”고 말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집권 4년 차에 등장한 인물이 1년 후 깜짝 당선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바람이 분다. 그것도 ‘젊은’ 바람이다. 미미하게 일렁이던 ‘쇄신’의 미풍이 초대형 태풍으로 변해 정치권의 기압골을 뒤흔들 기미가 엿보인다. 최근 새누리당의 상황이 그렇다. 억눌려 있던 쇄신 요구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강도 높은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집안 단속’을 뚫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4월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파격적인 내용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진보적 보수로의 전향 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과감한 ‘좌클릭’이었다. 4월12일에는 2000년대 이후 당내 쇄신파 계보를 잇는 인사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수 진영의 쇄신 방안을 논의하고 생존 전략을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회동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여권에 일기 시작한 쇄신 바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scene)들이다. 정치권을 둘러싼 단·장기적 국면(situation)도 예사롭지 않다. 2012년 대선 불법 자금 수사로 번질 조짐을 보이는 ‘성완종 게이트’는 정치권에 떨어진 핵폭탄급 이슈다. 이미 ‘5룡’ 가운데 2명이 직격탄을 맞았다. ‘차떼기’의 아픔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구태에 쇄신의 요구가 봇물을 터뜨릴 기세다. 그 중심에 유승민 원내대표와 ‘쇄신파’의 리더 ‘오·남·원’이 거론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가리킨다. 이들 4인은 모두 50대다. 공교롭게도 기존 5룡은 모두 60대다. ‘세대교체’ 요구로 연결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50대 기수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4월8일 연설에서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 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밝혔다. ‘유승민 쇼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지난 2월 원내대표 선거 결과 자체가 이미 파격이었다. ‘친박계’가 민 이주영 의원을 여유 있게 눌렀다. 출석 의원 149명 중 84표를 얻었다. 박빙일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쇄신 의지를 강조한 유승민 의원에게 ‘비박계’와 ‘소장파’의 지지가 쏠린 것이다. 당 안팎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당의 혁신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이 많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 나흘 후, 이른바 ‘원조 쇄신파’들이 대규모 회동을 가졌다. 정병국·정두언·박민식·이이재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태근·진수희 전 의원 등 원내외 인사 30여 명이 참석했다. 급조된 모임이 아니다. 당일 회동에 참석했던 정태근 전 의원은 모임이 성사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 초 정두언 의원, 남경필 지사, 박형준 사무총장 등과 만날 자리가 있었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쇄신의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나온 적이 없다’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시절부터 당의 변화를 꾸준히 요구했던 이들이 모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교환했다. ‘미래연대’ ‘새정치수요모임’ ‘민본21’ 등 2000년대 초 이후 소장파 모임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연락을 돌려 추진해온 끝에 성사된 자리다.”

단발성 기획이 아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일 계획이다. 조직적으로 혁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 이미 오래전 일인 만큼, 함께 정책 토론을 하며 서로의 공감대를 키워나간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주로 총선을 앞두고 각각의 정책 발표가 집중되기 마련인데, 그러지 말고 모임에서 합의된 몇몇 주요 정책을 당의 총선 전략으로 관철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일부 견해차가 있긴 하지만 새누리당의 정책 방향이 좀 더 중도·실용으로 가야 한다는 것, ‘낡은 보수’ ‘강경 보수’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범국민 정당을 표방해야 한다는 것 등을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4월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아래)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2월부터 일기 시작한 당내 ‘쇄신’ 요구

4월 들어 나흘 간격으로 벌어진 두 상징적 ‘장면’의 뿌리는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변화와 혁신을 표방한 유 원내대표가 2월 당선됐고, 비슷한 시기에 여당 ‘원조 쇄신파’들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기획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 차에 돌입하던 때다. 집권 3년 차는 흔히 레임덕이 본격화되기 전, 그나마 정권이 국정 운영을 조율할 수 있는 기회로 알려져 있다. 그런 ‘3년 차’에 막 접어들던 때, 이미 여당 내부에서는 정권과 차별화된 행보를 취하려는 흐름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셈이다. 당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원내대표의 ‘파격’ 선출, 조직적 움직임이 사라졌던 ‘원조 쇄신파’ 세력의 부활을 통해서다. 두 장면을 겹쳐 보면 떠오르는 진실이 있다. 집권 3년 차 초반부터 이미 여당 내 ‘탈(脫)박근혜’ 움직임이 ‘쇄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복지 및 민생을 강조하며 중도·실용을 표방하는 ‘쇄신’ 흐름은 과연 여당 내 주류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고려해야 할 정치적 국면들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성완종 리스트’ 정국, 장기적으로는 내년 총선 및 2017년 대선이다.

권력형 비리 이슈는 대개 ‘기득권’에 타격을 안긴다. 결국 힘이 있는 이들을 향해 ‘검은 커넥션’도 뻗기 마련이다. 과거 혹은 현재 권력의 주류인 이들이 정치적 타격을 받기 쉽다. ‘성완종 리스트’ 정국 역시 마찬가지다. 여권 실세에 속하는 인물들이 대거 혐의에 연루된 상황이다. 여당 전반이 위기지만, 동시에 여당 내 비주류·소장파 세력엔 기회이기도 하다. 당내 ‘기득권’ 세력 전반이 도덕성 면에서 치명타를 입는 사이 ‘쇄신’을 부르짖으며 입지를 넓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823억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쓴 한나라당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궤멸 위기에 놓였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천막당사 생활 등으로 민심을 돌려 총선 ‘선방’을 이끌었다. 당내에서 비주류에 속했던 박 대표가 유력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당시 초·재선 의원이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도 천막당사 시절 종횡무진하며 소장파의 존재감을 드높였다. 이후 이들은 여권의 중진급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마찬가지로 향후 ‘성완종 리스트’가 여권 주류에 큰 타격을 안길 경우, 당내 쇄신파들이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틈새’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

‘원조 쇄신파’ 회동을 주도하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4월12일 모임에서 “미증유의 메가톤급 부패 스캔들로 한국 보수의 봄날이 가고 있다”면서 “꼴통 보수의 시대를 끝내고 중도·혁신의 신보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비리 의혹에 휩싸인 여권 주류를 ‘꼴통 보수’로, 중도·혁신을 표방하는 자신들을 ‘신보수’로 차별화했다. 정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치권 전체가 집을 다시 지어야 할 상황이다. 6개월 정도만 지나면 (정치권)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성완종 게이트’가 여권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을 뒤흔들 가능성, 그로 인해 권력 구도가 재편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쇄신파 잠룡들 조기 부상 가능성

대선이 다가올수록 여권 내에 고조되는 위기의식도 쇄신파 세력에 유리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 내에서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보수가 두 차례 연속으로 집권했다. ‘10년’이면 국민들 사이에서 정권 교체 심리가 굉장히 커진다. 유권자 40%가 보수 지지층인 점을 감안해도,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10~25% 상당의 중도층을 공략하는 게 필수다. 그런데 현재 거론되는 당내 대권 주자들 중에는 중도 유권자를 끌어올 만한 위력을 가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상황으로는 역대 최다 표차로 패배한 2007년 대선 때 노무현 정권의 여당(대통합민주신당) 꼴이 날까 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탓에 ‘쇄신파’로 분류되는 대권 잠룡들이 조기에 부상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세대교체론’ ‘50대 기수론’ 등을 내걸고 대권 가도를 걸으며 쇄신파의 당내 입지 확보를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들은 ‘차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될 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강점은 전·현직 지방행정 수장과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행정 능력과 리더십 검증을 거쳤거나 또는 거치고 있다는 점이다. ‘검은 정치’의 부패가 되살아난 성완종 게이트가 여권의 세대교체를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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