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자리 만들려고?
  •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15.04.3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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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지금부터 한 달 전, 안심전환대출 광풍이 불었다. 광풍이 불 때는 잘 몰랐으나, 지금 와서는 그 의미가 분명해졌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관리한다면서 돈을 가장 잘 갚고 있던 계층에게 국민 세금을 넣고 채무 재조정을 해준 것이다. 인도적 견지에서 보면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한 정책이고, 국가 전체의 체제적 위험 관리 차원에서 보면 가장 위험한 영역인 저신용, 다중 채무, 연체자들에 대한 채무 재조정은 외면한 매우 ‘편파적’인 정책이었다.

비난이 빗발치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들고나온 카드가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이다. 서민금융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서민금융상품을 통합하고 휴면예금관리재단·국민행복기금·신용회복위원회 등 관련 금융기관도 법제화 또는 통합해 서민금융진흥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카드는 겉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혀 서민을 위하는 정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앞세워 금융 감독 퇴직자들 자리를 몇 개 더 만들려는 음험한 의도가 엿보인다. 따라서 필자는 반대한다.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은 몇 가지 근본적인 측면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우선 하나의 기관이 서민금융 공급, 채권 추심, 채무 재조정을 한꺼번에 하겠다는 게 잘못됐다. 일반 사람들이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니, 원스톱 서비스를 하겠다는데 뭐가 잘못인가. 한 군데서 다 하면 거기만 방문하면 다 끝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한 군데만 방문하면 된다는 것은 뒤집어서 말하면, 죽으나 사나 그곳만 가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그 한 군데의 심사가 이상하게 꼬인 상황이라면 거기에 목매달아야 하는 서민은 참으로 난감하게 된다. “아니 정부가 하겠다는데 심사가 꼬일 리가 있나.” 하지만 서민금융진흥원은 정부가 아니라 ‘그냥 상법상의 주식회사’일 뿐만 아니라, 태생적으로 ‘심사가 꼬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금 공급자가 채무 재조정 기능을 겸하기 때문이다. 돈 빌려준 사람이 채무 재조정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제도가 과연 채무자에게 유리한 제도인가. 채무자에게 공정한 제도인가.

정부가 진정으로 서민금융을 원한다면 다음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해보기 바란다. 우선 채권 금융기관의 대변자인 신용회복위원회에 대항해 채무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를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금 상황은 비유적으로 말해 경총은 있는데 노총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는 전경련 같은 것을 또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금융 감독 퇴직자가 그 자리를 꿰차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마도 정부는 ‘그저 조직만 창설하게 해준다면 뭐든지 다 양보해드리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조직 욕심을 테스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 그래요? 그럼 조직 만들어보죠. 대신 그 자리에는 재경부·금융위·금감원·한국은행에 조금이라도 근무했던 사람은 못 오게 하는 조건으로요.” 아마 그러면 정부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리트머스 시험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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