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수’의 아버지는 ‘메로디 크림’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5.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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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환 회장 1945년 창업…1·4 후퇴 때 ‘ABC포마드’ 큰 인기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전신은 (주)태평양이다. 태평양이 설립된 것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약 한 달 후였던 1945년 9월5일이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올해로 정확히 ‘고희’(古稀)가 된 셈이다. 태평양의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이 태평양화학공업사란 이름으로 처음 회사를 연 곳은 남대문종합시장이다. 서 회장은 광복 직후 물자가 부족해 원료 구하기가 어려운 탓에 날림으로 만들어진 화장품들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메로디 크림’이란 이름의 최초의 브랜드 화장품을 내놓았다. ‘동동구리무’나 ‘박가분’ 같은 화장품이 전부였던 시절, ‘메로디 크림’은 큰 인기를 끌었다.

윤독정 여사가 진짜 창업주

남녀유별이 유독 강했던 이 시대에 서성환 회장이 여자 화장품을 만든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공식적인 ‘사사(社史)’는 1945년을 창립 연도로 밝히고 있지만, 서성환 회장이 태평양의 시작을 1932년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던 것도 어머니 윤독정 여사 때문이다.

ABC포마드 광고 ⓒ 아모레퍼시픽 제공
윤 여사는 1932년 개성에서 머리에 바르는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았다. 윤 여사는 보부상으로부터 구입한 동백나무 열매를 곱게 빻아 기름틀에 넣은 후 압착해 기름을 추출했다. 다시 결이 고운 베로 한 번 더 걸러내 동백기름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탄 동백기름이 날개 돋친 듯 팔리자 윤 여사는 ‘창성상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서성환 회장은 이 모든 과정을 도우며, 화장품에 대한 꿈을 키웠다.

남대문에서 사업 기반을 쌓을 무렵 한국전쟁이 터졌고 서성환 회장은 1951년 1·4 후퇴 때 짐을 꾸려 부산 초량동으로 내려갔다. 이후 ‘ABC포마드’(반고체 남성용 머릿기름)를 내놨는데, 이 제품은 당시 부산 일대 남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여성에게는 메로디 크림, 남성에게는 ABC포마드가 오늘날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든 두 개의 초석이 됐다. 휴전 직후인 1954년 서울 용산구 한강로 일대로 사무실과 공장을 옮겼다.

특히 1971년부터는 당시로서는 모험이나 다름없었던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그해 11월 일본에 도쿄 지사를, 1972년 6월에는 미국에 뉴욕 지사를 개설했다. 1972년을 기점으로 태평양은 사업을 다각화했다. 1972년 화장품 판매를 전담할 태평양상사(주)를 설립했고, 1974년 장원산업(주)을 설립해 부동산 임대업에도 손을 댔다. 1980년대 들어서 동방증권을 인수해 증권업에도 진출했다. 여기에 전자와 자동차부품 사업도 시작했다. 이러한 사업 다각화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태평양은 주력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은 모두 정리하면서 충격을 최소화했다. 서성환 회장은 구조조정과 함께 서른네 살이던 둘째 아들을 CEO에 앉혀 오늘날의 아모레퍼시픽으로 성장하는 디딤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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