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는 것보다 지속 가능성 갖추는 게 더 어려워”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5.12 13: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인터뷰…“국내 기업 해외 진출 견인차 되고 싶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언론 노출을 꺼린다. 은둔형 경영자에 가깝다.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400만원대에 달하면서 집중 조명을 받는 것이지, 정작 서 회장 자신은 ‘조용한 경영’을 해왔다. 판을 크게 벌이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그가 굴지의 화장품 기업을 일궈 세계적 부호가 된 비결이다. 서 회장과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최근 중국에서 ‘K-뷰티’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아모레퍼시픽이 약진하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결과로 본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 초 중국에 진출했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이 현지 연구소와 협력해 오랜 기간 중국 고객의 피부 특성이나 소비자 트렌드 등을 연구해왔다. 지난해 상반기 ‘라네즈’의 글로벌 매출이 브랜드 전체 매출의 절반을 뛰어넘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네즈는 중국에서 매년 두 자릿수 이상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현장을 통한 고객 연구와 차별화된 제품 및 마케팅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아모레퍼시픽 제공
매출 대부분이 화장품 관련 분야이고, 그중에서도 중국 비중이 크다. 중국 시장에서 밀렸을 경우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기업이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강한 브랜드 파워와 제품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역시 현장을 소홀히 했다면 연구실 속의 제품에 머물렀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철저하게 현장 중심 경영을 추구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다 보면 ‘K-뷰티’ 선두 주자로서 중국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중국에는 얼마나 자주 방문하나.

1년 중 3분의 2 이상이 중국을 포함한 국내외 출장이다. 해외 출장 시에는 가능한 한 여러 매장을 방문한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글로벌 유통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새로운 유통 경로에 진입할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내용은 매월 초 진행하는 정기조회를 통해 전 임직원과 공유한다.

업계에서는 바이오 및 제약 업종이 블루오션이라고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제약 사업을 포기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1990년대 초반 회사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큰 도전을 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이래 줄곧 ‘대한민국 1등’을 유지해왔다. 안일함에 사로잡혀 변화된 세상과 고객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미(美)와 건강 사업 분야에 집중했다. 대다수 기업이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선제적으로 체질을 강화시켜 나간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뷰티 앤 헬스(Beauty & Health)를 중심으로 한 ‘원대한 기업(Great Global Brand Company)’을 지향하고 있다. 의약품 위주의 전통적인 제약회사에서 탈피해야 한다. 에스트라(구 태평양제약)가 의학과 화장품을 결합한 메디컬 뷰티 계열사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내수 시장에서 방문판매 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책은 무엇인가.

소비자들의 구매 환경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디지털과 모바일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아모레 카운슬러와 거래처, 지역사회, 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젊은 층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공무원 시험 등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나에게는 회사를 경영하는 데 확고한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모든 문제의 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믿음과, 이를 통해 ‘고객’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것이다. 고객은 아모레퍼시픽이라는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아모레퍼시픽의 은인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난 70년간 끊임없이 고민하고 혁신하면서 한 길을 걸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젊은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을 세우길 바란다. 자신만의 굳건한 원칙을 갖고 흔들림 없이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계획한 바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

해외 출장을 다니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다. 경영 관련 분야뿐 아니라 역사·철학·미술 등 특별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다. 좋은 책 내용은 직원들과 나누기 위해 반드시 기록한다. 때로는 베스트셀러 작가나 여성 탐험가, 공연기획자 등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테마 강좌를 마련해 임직원들과 함께하기도 한다.

남성 CEO로서 화장품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어려움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가까이에서 조언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부친이자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 회장님을 가장 존경한다. 선친께서는 저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선대 회장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문해보곤 한다. 선대 회장님의 여권은 나의 애장품 1호다. 선친께서 30대에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며 고생하셨을 모습을 종종 떠올려보곤 한다. 그러면 마음속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최근 재산에 대한 뉴스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주가는 기업이 갖고 있는 성장 잠재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주식시장에서 회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글로벌 사업은 여전히 시작 단계다. 키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지속 가능성을 갖추는 일이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으면 한다.

언론에서는 벌써 장녀 서민정씨를 주목하고 있다. 회사 경영에 참여시킬 계획은 있나.

딸이 아직 학업 중인 학생이고, 나이도 어려서 경영 활동 참여 등을 논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