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올린 글 한 줄로 기업 망하기도 한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6.02 17: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기관리 전문가 안드레아 보님-블랑 GEC RISK 대표

위기관리 컨설팅회사인 GEC RISK의 안드레아 보님-블랑(Andrea Bonime-Blanc) 대표는 5월27일 시사저널이 주최한 2015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서 기업 평판을 강조했다. 그는 “리스크에 대처하지 못해 평판에 금이 간 기업은 다음 리스크에서 더 큰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정치학 박사이자 법학 박사인 그는 지난해 <평판 리스크 핸드북>이라는 책을 펴냈다. ‘2015 굿 컴퍼니 컨퍼런스’ 강연 후 그를 만나 기업 평판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안드레아 보님-블랑 GEC RISK 대표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평판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위기관리와 평판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가.

 

 

대표적인 게 세계적인 영국 석유회사 BP다. 2010년 4월 멕시코 만에 설치됐던 BP의 시추선(딥 워터 호라이즌)이 폭발하면서 11명이 사망하고, 3개월 동안 400만 배럴이 넘는 원유가 바다에 유출돼 심각한 해양오염을 가져왔다. 직원은 사망했는데 BP 경영진은 살 구멍만 찾느라 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미국 연방법원은 지난해 BP에 중과실 판결을 내렸다. BP는 최대 180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게 될 전망이다). 그 기업은 벌금보다 더 큰 평판을 잃었다.


기업 평판의 중요성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시대에 더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미디어 기업인 IAC의 홍보 임원인 저스틴 새코는 2013년 영국에서 남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면서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아프리카로 간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담이다. 나는 백인이니까”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가 날아가는 11시간 동안 난리가 났다. 그 글은 일반인에게 에이즈는 흑인이 걸리는 것이어서 백인인 자신은 괜찮다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에이즈연맹과 흑인 단체의 강한 반발을 샀고 주요 미국 언론에 보도됐다. 회사 경영진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그를 해고했다. 그 임원은 남아프리카 공항에 도착한 후에야 자신이 해고된 사실을 알았다. 이처럼 기업의 평판은 한 개인의 말실수로도 치명타를 입게 되며, 특히 SNS 시대에는 그 속도가 빠르다. 그만큼 기업의 평판 관리가 중요한 시대다.


모든 기업은 위험에 대비한다. 석유회사라면 환경이나 보건 문제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예상하지 못한 위험 즉, 블랙 스완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예방할 방법은 없는가.

 

나는 한 달 전 아르헨티나에 있었다. 금요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는데 그 전날 칠레의 칼부코 화산이 폭발했다. 다음 날 화산재가 아르헨티나 공항까지 덮쳤다. 이 때문에 모든 미국 항공사 운항은 취소 됐지만 아르헨티나 비행기는 정상적으로 이륙했다.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로 인한 운항 취소는 분명 항공사에 블랙 스완이다. 그런데 속수무책으로 운항할 수 없는 항공사가 있는가 하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항공사가 있었다. 그 배경은 평소의 위기관리 능력에 달려 있다.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예상할 수는 없다. 다만 기업의 위기관리 임원은 닫힌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성장, 전략, 시장 상황에만 신경 쓰기 때문에 블랙 스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열린 생각으로 모든 상황 변화를 보면서 위험을 재빠르게 감지해야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위기관리 임원이 위험을 감지하고 대표에게 보고하더라도 대표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그 점이 가장 큰 딜레마다. 특히 리스크 관리에 돈을 쓰지 않으려는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자동차회사 GM은 10년 넘게 결함을 은폐했다. 점화 스위치 불량으로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위험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104명이 사망했고 180명이 부상을 입었다. GM은 지난해 결함을 인정하고 세계적으로 3000만대를 리콜했다. 회사 내부에 위기관리팀이 있지만 GM은 내부 문화가 좋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직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위기관리는 임원과 직원이 공유해야 대응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이른바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가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기업에 다가오는 위험을 임원진이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기업 이사회는 대표이사가 요청하는 서류에 사인하는 일을 한다. 사실 이사회는 회사의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대표이사와 논의해야 한다. 기업의 위기관리 임원도 리스크를 감지할 때마다 이를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대표이사는 위기에 대응할 방법을 적절한 시기에 써야 한다. 그러면 기업에 탄력성이 생겨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사회, 위기관리 임원, 대표이사가 각각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차이를 좁힐 수 있다.


위기를 맞고도 회복한 사례가 있는가.

 

몇 해 전 중국에서 멜라민 우유 파동이 있었고 심지어 우유를 마신 아이가 죽었다. 우유 판매는 중단됐고 중국 판매업체에 우유 원료를 공급하던 뉴질랜드 낙농 기업(폰테라)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 업체는 당시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중국 내 다른 협력업체를 찾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 기업이 택한 방법은 중국 협력회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중국에 100% 지분을 투자해 목장을 늘린 것이었다. 폰테라는 멜라민 파동 이전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있다. 이는 위기를 기회로 삼은 대표적인 사례다. 먼지를 카펫 밑으로 쓸어 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 먼지는 다시 카펫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위험을 감지하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세계 250개 기업의 투명성 순위를 발표했는데, 톱10에 미국 기업은 없고 유럽과 아시아계 기업이 많은 이유는 뭔가.

 

내부 규정, 자료 등 기업의 모든 것을 대중에 얼마나 공개하느냐가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1위를 차지한 ENI(이탈리아 국영 탄화수소공사)는 모든 자료를 공개한다. 물론 얼마나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자료 공개로 투명성을 확보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투명성은 기업의 정보 공개와 관련이 깊은가.

 

그렇다. 가장 투명하지 않은 기업 톱10 순위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설립한 지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그 순위에 있다. 그 기업은 정직한 회사로 알려졌지만 기업 자료 등을 공개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무슨 의미겠는가. 투명성은 기업의 평판과 직결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