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요금 ‘꼼수’ 역사는 알고 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6.02 17: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요금제 낼 때마다 논란…‘데이터 중심 요금제’ 효과 믿어도 되나

“음성통화 무료, 문자메시지 무제한, 쓰고 싶은 데이터 양만큼 요금제를 선택하라.” 휴대전화 이용자들의 구미가 당길 만한 이 제안은 최근 이동통신 3사가 내놓은 ‘데이터 중심 요금제’다. SK텔레콤(SKT)이 5월19일 마지막으로 이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이제 이동통신 요금제에서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가 아닌 데이터가 중심이 됐다. KT와 LG유플러스는 업계 1위인 SKT가 뒤늦게 따라오자 해당 요금제를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사용 많은 4~5GB 구간 요금제 없어

보조금 차별을 없애고 단말기 가격을 인하해 가계 통신비를 줄이겠다던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이 시행된 지 8개월, 통신비 부담은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여전하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달라져도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등장한 새 요금제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이미 가입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5월26일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홍보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하지만 평소 음성통화 시간이 긴 일부 직종의 이용자들을 제외하면 새 요금제를 선택한다고 해도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휴대전화의 활용 용도가 과거와 달라졌다.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고 인터넷 서핑과 동영상 감상을 즐긴다. 음성 통화와 문자메시지는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대신 데이터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한 데이터 트래픽 현황을 보면, 전체 데이터 트래픽 수치는 2만9748TB(테라바이트)에서 13만8121TB로 3년 만에 5배가량 늘어났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이 고객을 위해서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데이터 수요 증가에 맞춰 새 요금제를 내놓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통신 3사가 데이터 사용량을 중심으로 요금제를 선택하라고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데이터 양인 4GB(기가바이트)와 5GB 구간은 요금제 자체가 없다. 이른바 ‘중간 요금제’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4GB와 5GB를 사용하는 고객이 같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실제 사용하는 데이터 양보다 많은 6GB 이상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또 LTE 휴대전화에만 적용이 가능한 요금제이기 때문에 3G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고객은 LTE로 전환하지 않으면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이용할 수 없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동통신 요금제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통신비를 인하하겠다며 다양한 요금제를 출시했다. 하지만 통신비를 줄이겠다고 내놓은 다양한 요금제들이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혼란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통신비 인하’ 요구가 처음 제기되자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선택요금제’를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고객들이 자신의 통화 패턴에 맞게 선택적으로 요금제를 사용하면 요금 인하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택요금제 역시 표준요금제를 기반으로 설계돼 있다. 표준요금이 내려가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요금제는 기본요금에 추가금이 붙는 형태일 뿐이다.

무제한 요금제 출시했다 없애기 반복

그러다 2004년 KTF(현 KT)가 처음으로 ‘무제한 정액요금제’를 출시했다. 월 10만원으로 국내 음성통화를 말 그대로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다. 무선인터넷과 SMS(단문 메시지), 국제통화는 제외됐다. 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던 LG유플러스도 결국에는 같은 요금제를 내놓았다. KTF로 고객이 옮겨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해 7월 이 요금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000년대 중반 휴대전화 국내 가입자가 4000만명을 돌파했다. 수치로만 따진다면 국민 1인당 한 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된 셈이다.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이 되자 통신요금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이동통신 요금 인하 방안을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동통신 요금이 적정한지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인하하는 시늉만 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산됐던 요금제 중 하나가 ‘쌍방향 요금제’다. 휴대전화를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요금을 내는 것으로 ‘통신비 20% 인하를 추진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실현시키는 차원에서 2007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시했던 요금제다. 불필요한 통화를 줄여 통신비를 줄이자는 것이었는데, 통신비를 ‘인하’하자는 것인지 ‘절약’하자는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동통신사의 수익은 그대로 두고 통신비를 수신자와 발신자가 나눠서 내게 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이동통신 3사는 할인 제도를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2010년 LG유플러스가 국내 최초로 가구당 통합 요금제를 출시했다. 초고속인터넷과 070 인터넷전화, IPTV와 휴대전화를 묶어 정액제로 이용하게 한 것이다. 뒤이어 KT와 SKT도 유무선 결합 상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할인 상품끼리 결합하는 것이 번거롭고 약정 기간 내 해지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직접적인 혜택’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1년 들어 무제한 데이터 시대가 열렸다. 이동통신 3사가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도 마음 놓고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며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은 것이다. 매달 5만5000원 이상을 내면 용량에 구애받지 않고 무한정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무제한 요금제가 이동통신 통화 품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폐지하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이동통신사들은 또다시 ‘보여주기식’ 요금제를 출시한 것이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가입자들이 술렁이자 이동통신사들은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그해 9월 LTE 요금제가 등장하면서 무제한 요금제는 폐지됐고, 이동통신 3사는 1GB, 3GB, 5GB 등 데이터 사용량에 따른 요금제를 신설했다.

1990년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였던 신세기통신은 1998년 가입자 유치를 위해 ‘패밀리 요금제’를 내놨다. 패밀리 요금제는 기본요금 2만4000원에 휴대전화 4대 간에는 무한정 음성통화를 할 수 있는 요금제였다. 가입자들의 통화량이 많아 통신망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결국 6개월 만에 폐지됐는데 이 요금제에 등록된 017 번호는 경매 사이트에서 개당 90만~100만원에 거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SMS 무제한 요금제’도 문제를 일으켰다. 2003년 3월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을 시작으로 KTF는 2004년 3월, SKT는 2004년 9월 이 요금제를 도입했다. 문자메시지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였다. 이 요금제는 이동통신사의 수익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2005년 폐지됐다. 청소년층에서 심한 반발이 일어났다. 음성통화보다 문자메시지 사용량이 많은 청소년을 겨냥한 맞춤형 요금제였기 때문이다.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해 출시했다가 수익이 나지 않으니까 없애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동통신 3사는 추가 가입을 막는 대신 기존 가입자들에게는 이 요금제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뒷거래가 또 등장했다. 청소년들이 수십만 원을 받고 SMS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된 번호를 사고파는 일이 벌어졌고, 이 번호를 구매해 불법 스팸 메시지를 대량으로 발송하는 업체들이 생겨났다.

SMS 가격 인하 때 할인 효과 큰 청소년 제외

2006년에는 휴대전화 요금으로 어려움을 겪던 10대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강 아무개군(17)이 사용하던 휴대전화의 한 달 사용 요금이 370만원이나 나온 것이다. 무선인터넷 때문이었다. 이동통신사로부터 요금 청구 전화를 받은 강군이 부담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미성년 가입자에 한해 미리 낸 만큼만 휴대전화를 쓰도록 하자는 ‘청소년 휴대전화 선불 요금제’의 법적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인 것도 이 시기다. 요금을 미리 낸 후 휴대전화를 쓸 때마다 지불한 돈에서 사용 요금이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미성년자에 한해 선불 요금제를 의무화하고 보호 조치를 위반한 사업자를 처벌하겠다는 게 법안의 골자였다. 그러나 이동통신 3사는 ‘요금제에 대한 법적 규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2008년 1월부터 이동통신 3사가 휴대전화 SMS 요금을 30원에서 20원으로 내리기로 해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이때도 청각·언어 장애인과 청소년 가입자는 요금 인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음성통화가 불가능하거나 문자메시지 전송량이 많아 요금 할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용자들이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책정한 SMS 건당 가격과 소외 계층을 제외한 세부 사항까지 이동통신 3사가 똑같았다.

2013년 이후 이동통신 3사는 ‘LTE 데이터 무제한요금제’를 앞 다퉈 출시했다. LTE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을 때 “무제한 요금제는 없다”고 했던 이동통신사들이다. 그 이면에는 가입자 빼앗기 경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동통신 3사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출시했다. 이동통신사들 간 경쟁 속에서 출시와 개선을 거듭하고 있는 이 요금제가 과연 통신료 인하 효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예전처럼 ‘꼼수’로 끝날지 두고 볼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