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정부, 낙타가 비웃는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6.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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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부재·우왕좌왕에 메르스 공포 확산…“감염 병원 공개” 목소리 높아

6월5일 현재 메르스 상황은 ‘통제 범위에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42명의 환자가 모두 병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전염된 사람이다. 아직 바이러스가 병원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로 퍼지지 않아 역학조사 등의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나가는 연결 고리를 차단하면 대재앙은 막을 수 있다.

치사율이 40%라고 하지만 그건 의료 환경이 열악한 중동 지역의 통계치다. 국내 치사율은 6월4일 현재 5.7%로 집계됐다. 세계 의료계는 메르스의 치사율을 10% 정도로 본다. 일반 독감 치사율이 0.1%인 것에 비하면 높은 편이지만 감염자의 절반이 죽어나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근거로 보건 당국은 메르스가 일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있다.

6월4일 서울대병원 응급실 입구에 설치된 격리센터에 메르스 의심 환자로 추정되는 환자가 들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6월1일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주부 김인영씨(45)는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세 살배기 아이를 부여안고 안절부절못했다. 이 병원에는 메르스 임시 격리실이 옥외에 설치됐고 수시로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환자를 옮겼다. 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체온계로 아이 열만 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왔는데 메르스 때문에 무서워 병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라며 “다른 병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건소·내과가 무조건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안내하는 행동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가가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병원에서 무슨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최근 가족 모임 계획이 있다는 직장인 조 아무개씨는 평택에 있는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 오지 말라고 했다. 최초 메르스 환자가 나온 지역에서 오는 친척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직장인은 바이러스 침입을 막는다며 코에 바셀린을 발랐다.

메르스 사태를 보는 보건 당국의 시각과 일반인들의 체감에는 큰 간격이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질병관리본부장은 국민에게 브리핑하지 않고, 이번 사태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인 감염내과 교수들도 연구비가 깎일까 봐 그러는지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며 “소통의 부재 때문에 국민만 혼란스럽고 불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이 불안한 이유는 바이러스보다 막연한 공포다. 메르스 환자가 죽고 격리자가 거리를 활보하는 상황에서 자신이나 가족이 변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특히 정보가 부족할수록 불안과 공포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국민은 인터넷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얻은 작은 정보를 믿고, 유언비어나 괴담에 귀를 세운다. 정부는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전히 국민이 원하는 바를 인식하지 못한 대응이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메트로웨스트메디컬센터의 전진학 감염내과 과장은 시사저널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정부의 소통 부재가 메르스 사태를 키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의 개인적 경험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권고 사항을 보면, 정부는 지역적으로 메르스 지정 병원을 선정해 국민에게 공표해야 한다”며 “사우디아라비아가 메르스 창궐을 조기에 막지 못한 이유도 중앙 보건 당국과 지방, 중앙 부서와 지도층 사이의 소통 부재가 큰 원인이었다. 모든 보고는 즉시 중앙 보건 당국에 통합돼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
“사우디 메르스 창궐 이유는 소통 부재”

비근한 예가 메르스 확진 병원의 공개 여부다. 일부 설문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8명은 메르스 병원을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보건의료노조도 6월4일 성명을 내고 “은폐와 정보 통제는 메르스 예방과 확산 방지에 역행하는 처사이고 국민 불신을 키울 뿐”이라며 “환자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병원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메르스 확산 방지보다 경영 타격을 우려하는 반(反)의료적 행위이며 국민 건강보다 병원 이익을 앞세운 반(反)공익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부는 6월5일 현재까지 병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 권준욱 중앙메르스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메르스 발생과 상관없는 시기에 병원을 이용한 환자나 종사자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과도하게 걱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도 병원 공개에 반대한다.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의료진은 확진 환자를 치료하느라 고생이 많은데, 병원이 공개되면 당장 해당 병원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확진 환자가 있는 병원도 감염 관리 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졌다면 다른 공간에는 전파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병원이 공개되면 국민이 확진 환자가 있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기존에 병원에 입원한 환자도 메르스 환자가 그 병원에 있다면 퇴원하겠다고 할 것이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나 수술을 받지 않아 생명이 위독해질 수도 있다”며 “병원은 메르스 환자 진료도 중요하지만 기존 환자를 보호할 의무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 입장과 국민의 안전 가운데 어느 것이 중요한가를 생각하면 병원 공개가 당연한 것”이라며 “정부가 병원을 공개하고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면 국민이 알아서 판단한다”며 병원 공개를 주장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도 “병원 공개로 병원이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메르스 확산 우려에 6월4일 서울 대치동 대치초등학교에 이틀간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병원 보호와 국민 건강, 무엇이 중요한가”

메르스 병원 공개에 반대하지만 지금처럼 환자를 여러 병원에 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손장욱 고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몇몇 병원으로 환자를 모아서 진료할 필요가 있다”며 “대신 의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노출되지 않은 병원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을 공개해야 할 법 규정은 없다. 다만 미국의 경우 그 전례가 많지 않다는 게 정부 측의 해명이다. 에볼라 발병 시기에 미국 하와이 주와 조지아 주는 치료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의료기관이 외면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주에서는 에볼라 환자의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 과정을 공개했다. 지난해 5월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메르스 환자 두 명이 발생했을 때도 먼스터 시 커뮤니티 병원은 첫 환자가 치료받고 있다고 공개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당시 환자의 동선, 치료 과정 등을 매주 일반인에게 알렸다.

사스 발병 당시 홍콩도 모든 병원 상황을 공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홍콩 정부가 처음부터 정직하게 정보를 충분히 공개해 대중과 언론에 전달함으로써 대형 전염병으로 퍼지는 것을 막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정부가 병원 공개를 하지 않아 국민이 직접 나섰다. 어떤 사람이 최근 언론 보도 내용과 제보 등을 근거로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다. 정부가 공개하지 않으면 국민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메르스 환자 병원 14곳의 위치와 병원 이름이 공개돼 있다.

확진 환자는 병원에서 직·간접적으로 감염됐다. 이른바 병원 내 감염자다. 다른 국가에서도 그렇듯이 병원은 감염 위험이 큰 특수 공간이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의사협회 TF팀 위원장)는 “환자의 가래를 뽑거나 내시경 검사 등을 할 때 바이러스가 많이 나온다. 기침하면서 수많은 침(비말)이 퍼진다. 그 비말이 문고리 등에 묻어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옮는다”고 병원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6월3일 서울대병원 응급실 입구에 메르스 의심 환자 격리센터에 관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병원 관리 제대로 안 되면 위험 계속될 것”

현재까지 지역사회에서 감염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병원 밖으로 퍼지면 사실상 통제 불능이 된다. 따라서 병원에서 바이러스 노출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급선무다. 천병철 고대안암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모든 감염병은 병원에서 시작한다. 병원 관리가 향상되지 않으면 병원 내 감염 위험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원의 일반 병실은 물론 중환자실도 여러 환자가 한 병실에 모여 있는 4~6인실이다. 감염병이 퍼지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중환자실에서 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할 때 옆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그 상황을 목격하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라며 “외국처럼 병실을 1인실로 바꿔야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병실에 보호자가 있는 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환자 곁에 24시간 붙어 있고 환자의 가래를 뽑는 등 보호자가 간호사 일을 대신하는 후진적인 병실 환경이 우리 의료의 현실”이라며 “환자들도 엉켜 있는데 내외부 출입이 자유로운 보호자와 방문객까지 있는 병실에서 감염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 희박  


지난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의학지(NEJM)에 실린 연구 논문을 보면, 메르스 환자가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상황이 26건 있었고 전체 가족 수는 280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감염이 일어난 사람은 12명(4%)이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신자가 모여드는 이슬람 최대의 성지순례 행사인 하지 기간에도 지난 3년간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또 2차 감염자는 치사율이 1차 감염자보다 떨어지는 점도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을 작게 보는 근거다.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지역 감염은 거의 없었다”며 “여행이나 모임 제한, 휴교 조치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학계에 메르스 무증상 감염자가 4분의 1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콧물 등 가벼운 증상 정도인데, 바이러스 위험성이 작아 감염을 일으킬 정도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감염병 전문가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감염병 전문가가 부족하고 그나마 깊이 있는 연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 감염내과 전문의는 200명 정도인데, 소화기내과 의사가 10명이라면 감염내과에는 2~3명이 고작이다. 미국에서는 7~8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며 “따라서 바이러스·세균·곰팡이 등으로 나눠 집중해서 연구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은 최초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다. 역학조사는 특정 감염병 발생 원인과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방역 대책을 세운다. 역학 전문가는 질병 원인을 수사하듯 찾아야 하기 때문에 ‘질병 수사관’이라고도 불린다.

질병관리본부 14명, 인천공항검역소 2명, 17개 시·도 18명 등 전국적으로 34명의 역학조사관이 있다. 이 중 32명이 3년 임기의 공중보건의여서 경험 축적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보의는 군 복무 대신 3년간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한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매년 의대 졸업생이나 역학 분야 박사 소지자를 80명가량 선발해 2년간 실무 교육을 통해 현장에 필요한 역학 전문가로 양성한다. 65년간 전문가 5000여 명을 배출했다. 인구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국내보다 역학 전문가가 200배나 많은 셈이다.

전문가 부족으로 인해 신종 감염병이 유입될 때마다 대학병원의 감염내과 전문의를 차출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감염내과 전문의나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는 국가 지정 격리병원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메르스 환자는 몇 명? 


유럽질병예방통제청(ECDC)에 따르면 2012년 2월부터 올해 5월29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 환자는 총 23개 국가에서 1167명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479명이 사망했다. 최근 4개월간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 환자는 총 165명이 발생했으나 1월부터 증가 추세를 보이던 환자 발생은 2월 둘째 주에 28명의 환자가 발생해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다. 환자와 사망자 대다수는 사우디아라비아(1007명 감염, 442명 사망)와 UAE(아랍에미리트·76명 감염, 10명 사망)에서 발생했다.

유럽의 경우 영국에서 4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3명이 사망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각각 3명과 2명의 환자가 발생해 1명씩 숨졌다. 그리스와 터키에서도 메르스 환자가 1명씩 발생해 모두 숨졌다.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서 각각 1명과 2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필리핀인 1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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