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은 ‘소맥용’, 진짜 맛은 수입 맥주로?
  • 이승현│이데일리 기자·이석 기자 ()
  • 승인 2015.06.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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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맥주 대형마트 점유율 40% 돌파…국내 맥주업체들 ‘초비상’

수입 맥주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과거 일부 마니아층만 즐길 만큼 희귀한 상품이었지만 요즘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산 맥주를 위협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에서는 전체 맥주 판매량 중 수입 맥주 비중이 40%를 돌파했다. 다른 마트들에서도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맥주 수입량은 2005년 1930만L에서 지난해 1억1800만L로 10년간 6배 이상 늘어났다. 바야흐로 수입 맥주 전성시대다.

일부 마니아층서 대중 맥주로 급속 확산

수입 맥주 시장이 급성장한 가장 큰 요인은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진 것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맥주 하면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맥주 시장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와바’를 필두로 한 수입 맥주 전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다양한 수입 맥주를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고, 여기서 맥주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수입 맥주 골수 고객이 된 것이다. 이후 수입 맥주 전문점들은 취급하는 맥주를 늘리는가 하면 ‘수입 맥주 할인점’이란 형태로 진화하면서 문턱을 더욱 낮췄다.

이런 흐름에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이 대형마트들이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경쟁적으로 수입 맥주 전문 코너를 만들었다. 지금은 다른 어떤 상품군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취급하는 맥주 종류도 200여 가지에 이른다. 수시로 ‘1만원에 4병’과 같은 파격 할인 행사를 열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음주문화가 변한 것도 수입 맥주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가볍게 그리고 집에서 술을 마시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야 술을 마신다고 하면 밖에서 1차·2차·3차로 이어지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최근에는 1차에서 반주를 하고 2차에서 가볍게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문화가 보편화됐다. 또한 밖에서 요란하게 술을 마시는 것보다 집에서 여유롭게 술을 즐기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다. 대형마트의 술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공통점은 국산보다는 수입 맥주가 선호된다는 것이다. 취할 때까지 많이 마실 게 아니라면 고급스러워 보이고 특별할 것 같은 수입 맥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수입 맥주의 인기 이유에 사족을 달자면 지난 몇 년간 우리 술문화를 주도해온 ‘소맥’ 유행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국산 맥주는 소맥용이고 제대로 된 맥주를 맛보려면 수입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국내 맥주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국내 맥주 시장은 그동안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 양대 브랜드가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들은 맛과 품질보다는 마케팅과 영업으로 승부를 걸었다. 대다수 술이 음식점을 통해 판매되는 국내 술 유통구조상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시원한 술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따라 음식점에서는 술을 냉장고에 넣고 판다. 냉장고에는 여러 종류의 술을 담을 수 있을까? 기껏해야 소주 2종, 맥주 2종(최근에는 3종으로 늘어났다)을 넣으면 꽉 찬다. 어떤 맥주가 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느냐는 영업력에 의해 좌우된다. 다양한 맥주를 개발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구조다. 이런 상태로 수십 년간 두 회사가 국내 맥주 시장을 끌고 온 것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양사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맥주 종류만을 생산했다. 하이트맥주는 하이트·맥스·d, 오비맥주는 오비맥주·카스·오비골든라거를 각각 주력으로 판매해왔다.

2010년 이후 수입 맥주의 추격이 거세지자 국내 맥주업체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줄곧 라거 맥주(거의 모든 국내 맥주는 라거 맥주다)만을 생산해오던 관행을 깨고 에일 맥주를 출시했다. 하이트진로는 2013년 ‘퀸즈에일’을, 오비맥주는 2014년 ‘에일스톤’을 내놓았다. 수입 맥주의 대항마로 라거보다 고급 맥주라는 인식이 있는 에일 맥주를 들고나온 것이다.

본격적인 품질 경쟁도 시작했다. 신호탄은 세 번째 대형 맥주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한 롯데가 쐈다. 롯데가 들고나온 ‘클라우드’는 독일 정통 제조법을 들여와 맥주 발효 원액에 물을 타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클라우드가 출시되자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역시 대항마를 내놓았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11월 올몰트 맥주인 ‘더 프리미어 OB’를,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 ‘크림생 올몰트 맥스’를 출시했다. 올몰트 맥주는 맥주의 3대 원료인 맥아·홉·물 외에는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은 100% 보리 맥주를 말한다.

6월4일 서울 용산의 한 유명 마트에서 소비자가 수입 맥주를 고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산 맥주는 정말 맛이 없나?

‘국산 맥주는 싱겁고 맛이 없다’는 소비자 인식도 수입 맥주로 돌아서게 한 요인이다. 국산 맥주의 맛에 대한 논쟁은 지난 2012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한 기자가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취지의 칼럼을 쓰면서 시작됐다.

이코노미스트는 ‘화끈한 음식, 지루한 맥주’라는 기사에서 “마늘과 고추에 절여진 김치나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산 낙지 등 흥미 넘치는 한국 음식들과 달리 맥주는 심심하다”며 “카스와 하이트는 목 넘김은 좋지만 미각을 자극하진 못한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공감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맥주 맛 논란의 관건은 맥주 맛이 제품마다 차이가 없고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국산 맥주업체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외국 맥주회사들도 한 회사가 여러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맥주회사가 단 두 개밖에 없는 구조에서 다양한 맛의 맥주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항변이었다. 국내의 기술력 역시 호가든이나 버드와이저 같은 외국 맥주를 국내에서 생산할 만큼 뛰어나다고도 했다.

이 얘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실제 외국 맥주회사들이 한 회사에서 3~4종의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은 맞다. 틀린 부분은 외국의 경우 다양한 중소 맥주 제조업체들이 공존하면서 대형 업체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 시장에서는 대형 맥주업체들이 강력한 진입 장벽을 만들고 소규모 업체들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대기업에 유리한 주세 제도로 인한 소규모 업체들의 시장 진출 어려움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없는 이유다.     


엔저 등에 업은 일본 맥주의 공습 


집 주변 편의점에 가보면 프로모션 판매(2+1)를 하는 일본 맥주를 자주 보게 된다. 아사히·삿포로·기린·산토리 등 일본 맥주가 수입 맥주 돌풍의 한가운데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일본 맥주 수입량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3만톤을 돌파했다. 2013년 2만5047톤에서 지난해 3만1914톤으로 27.4%나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수입 맥주 증가율(25.5%)보다 높은 수치다. 수입 금액 역시 같은 기간 2739만7000달러에서 3321만2000달러로 18.9%나 늘어났다.

다양하고 풍부한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탓도 있다. 궁극적인 원인은 엔저 현상으로 자금 여력이 생긴 일본 업체들이 영업 드라이브를 건 결과로 풀이된다. 원/엔 환율은 최근 100엔당 900원대가 무너지고 800원대를 기록 중이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여 만에 또다시 원/엔 환율이 800원대에 진입했다. 향후 엔화 가치는 더욱 하락하고, 국내 시장을 겨냥한 일본 맥주의 공습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수입 맥주 1위 업체인 일본 아사이맥주는 최근 이례적으로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업소용 아사히 수퍼드라이 병맥주(300mL)의 주류 도매상 출고 가격을 2450원에서 2170원으로 11.4% 인하했다. 주류업계에서는 그동안 고가 정책을 펴왔던 아사히가 병맥주 가격을 인하한 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국내 맥주 시장에서의 유통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일본 맥주의 약진은 최근 소주·막걸리 등 우리 술의 일본 수출이 급감한 것과 대조적이다. 소주의 경우 그동안 전체 수출의 70% 이상이 일본이었을 정도로 대일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 소주의 일본 수출량은 5만2271톤으로 2013년의 5만7534톤에 비해 9.1% 감소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2013년 7896만 달러에서 지난해 6780만 달러로 14.1%나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인 만큼 국내 기업에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기업은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과감한 투자와 혁신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근 계속되는 엔저 현상과 이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의 공세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사업 구조를 효율화하고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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