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어머니의 한은 어디나 똑같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6.0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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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추악한 전쟁’ 희생자 어머니들 담은 사진전 여는 김은주 작가

1976년 3월24일 아르헨티나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페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무너졌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페론 정권의 부패와 무능은 극심한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군부에 의해 혼란이 수습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혼란보다 더 혹독한 탄압과 독재가 아르헨티나를 피로 물들였다. 군부 정권은 좌익 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군대와 경찰, 정보기관을 총동원해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원칙도 기준도 없이 무고한 시민들이 체포되고, 살해되고, 실종되었다. 어린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차별적으로 비밀수용소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고문을 못 이겨 사망한 시신들은 바다에 던져졌다. 공포 정치는 1983년 10월까지 무려 8년간 계속됐다. ‘추악한 전쟁’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다. 

아르헨티나가 겪은 혹독한 8년의 한가운데였던 1980년 5월, 지구 정반대편 한국의 광주에서도 유사한 비극이 빚어졌다.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이 신군부의 군화 아래 짓밟혀 수백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젊은 대학생이 상당수였고, 심지어 중·고등학생들도 있었다. 피로 물든 광주에서 어머니들의 가슴속에는 한(恨)이 서렸다. 부모 잃은 자를 고아라고 부르고, 남편과 아내 잃은 자를 과부 또는 홀아비라 부르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지칭하는 말은 없다고 할 만큼 그 고통과 한은 표현하기 어렵다. 사진작가 김은주씨(46)가 그런 한을 표현해보고자, ‘광주의 어머니들’을 앵글 속에 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사진전을 여는 김은주 작가와 전시회 포스터. ⓒ 시사저널 임준선
“자식 이름 부르는 외침, 광주 어머니들과 같아”

“처음부터 ‘광주’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우리 시대 ‘어머니’에 주목했고, 전국을 다니며 다양한 어머니들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광주민주항쟁 희생자들의 어머니 단체를 알게 되었다. 우리 세대라면 광주항쟁은 다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직접 광주의 어머니들을 보는 순간, 또 다르게 다가왔다. 뭔가 남겨야겠다는 강한 울림. 2년을 고심한 끝에 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광주에 살다시피 하며 어머니들 한 분 한 분을 만나,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사진 작업을 했다.”

김 작가는 이 작품들을 모아 2011년 5월 광주에서 <여기, 여기…오월 어머니>란 타이틀로 전시회를 열었다. ‘5·18 민중항쟁 31돌 기념사업위원회’ 주최였고, 그녀의 첫 개인전이었다. 5월의 햇살만큼이나 반응은 뜨거웠다. 이때부터 그는 ‘오월’ ‘광주’ ‘어머니’를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숙명을 느꼈다. 2013년에는 <그날의 훌라송-오월 어머니>(광주민주항쟁 33주년 기획전) 전시회를, 2014년에는 <달콤한 이슬-1980 그후>(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 프로젝트) 작품전에 참여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광주 출신도, 이른바 운동권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그저 사진을 좋아하는 평범한 삶에, 딸을 키우는 여느 어머니였다. 그녀가 아르헨티나로 향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광주’와 ‘아르헨티나’만 다를 뿐, ‘오월’과 ‘어머니’란 같은 키워드를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 ‘오월의 광장 어머니들’은 그녀가 광주에서 작업하는 내내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었다.

“광주나, 아르헨티나나 역시 어머니는 똑같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월의 광장에 발을 딛는 순간, 아르헨티나 언어인 스페인어로 울부짖으며 실종자 자식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떨림의 외침은 광주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았다. 소름이 돋았고 전율이 느껴졌다. ‘아,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구나’ 하고 통하는 느낌이 있었다.”

사진전은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전시장(사진)에서 6월28일까지 열린다. ⓒ 김은주 제공
“올가을엔 미얀마, 내년엔 이란 어머니들 찍을 것”

아르헨티나에서의 작업은 훨씬 더 지난하고 고단했다.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은 광주 어머니보다 자존심 강하고, 자세도 꼿꼿했다. 마치 운동권 투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얼굴만 찍는 게 아니라, 아픔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더 몸서리를 쳤다. 쳐다보기도 싫다는 게 이유였다.

“광주의 어머니들은 그래도 국가에서 인정해준 덕에 상당 부분 내면적으로 승화시킨 측면이 있으나, 아르헨티나는 상황이 달랐다. 아직도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곳의 어머니들은 지금도 투쟁 중이다.”

광주 어머니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을 설득했으나,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마음을 열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래도 4년 전 역시 카메라 앞에 선뜻 서기를 꺼려하던 광주 어머니들을 설득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호소했다. 한 명씩 이국의 어머니들은 낯선 동양의 여성 사진작가 앞에 서기 시작했다. 30여 년 전 시위가 벌어졌던 그 광장에서,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던 수용소에서, 그리고 시신이 던져졌던 바다를 배경으로 다시 서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담은 소중한 작품들을 모아 김은주 작가는 6월3일 <Mothers(오월 어머니)> 사진전을 열었다. 그의 네 번째 개인전이다. 역시 장소는 광주다.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오는 6월28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5·18기념재단이 후원한다. ‘광주 오월 어머니와 부에노스아이레스 Donde Estan(어디에 있니)’이란 부제도 붙었다. ‘광주 어머니’를 시발로 같은 아픔을 겪은 전 세계 어머니들과 연결 짓기 위함이다. 아르헨티나 어머니 작품 15점과 함께 나란히 광주 어머니 작품 8점이 전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작가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한은 천추의 한이라고 한다”며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아픔을 갖고 있는 지구촌 어머니의 모습을 담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우선 당장 9월에 미얀마로 갈 일정이 잡혀 있다. 내년에는 이란으로 간다. 미얀마에서는 ‘88 민주 어머니회’를 만나고, 이란에서는 ‘하바란의 어머니회’를 찾아간다. 모두가 암울한 시기, 국가권력에 의해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한이 담긴 그곳에서 그녀의 앵글에 새롭게 담길 또 다른 어머니들의 모습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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