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무능’ 뒤에 그들만의 카르텔 있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6.1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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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식약처 4급 이상 퇴직자 10명 중 3명, 산하 기관·기업 재취업

지난해 11월 국내 보건의료계는 특정 기관장의 후임 인선을 두고 홍역을 치렀다. 50조원 규모의 재원을 관리하고 있는 건강보험공단 새 이사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당초 김종대 당시 건보공단 이사장 후임으로 성상철 전 병원협회장(현 건보공단 이사장)과 최성재 전 청와대 보건복지수석, 박형태 당시 건보공단 기획상임이사 등 후보 3인이 물망에 올랐다.

3배수 후보 중 성 전 회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가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라는 점이 불씨가 됐다. 성 전 회장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낸 신현확 전 총리의 사위이자, 같은 기념회 이사 출신이다.

성 전 회장 인선과 관련한 반대 논리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가 병원업계 출신이라는 것이 쟁점이 됐다. 건보공단 노조 등 반대론자들은 성 전 회장이 서울대병원장 출신으로 대한병원협회장을 역임하며 병원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온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 주장을 폈다. 건보공단이 병원업계와 의료보험 수가를 두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야 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그의 인사 문제로 공직 사회와 병원업계·의학계·한의학계·약학계 등의 미묘한 이해관계가 노출된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이 5월27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뉴스원
 

퇴직 일주일 만에 공공기관 재취업 68.1%

메르스 사태가 보건의료계를 강타하고 있다. 보건 당국과 병원, 유관 기관 등이 메르스 사태 대응 과정에서 무능을 드러내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다. 특히 메르스 사태가 악화일로를 겪는 가운데서도, 보건 당국과 병원 등이 메르스 환자 및 감염 병원 등의 세세한 정보 공개를 늦추면서 국민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건복지부 관료와 산하 기관, 그리고 병원업계로 이어지는 이른바 ‘보피아’(보건복지부+마피아)를 메르스 사태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그 배경에는 보건의료 당국 관료 출신들의 퇴직 후 ‘짬짜미 인사’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현숙 의원실(새누리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0년간(2005~14년 8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소속 4급 이상 퇴직자의 재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4급 이상 퇴직자 474명 중 144명(30.4%, 일부 중복자 제외)이 산하 기관이나 이익단체, 관련 사기업체 등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저널이 이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보건복지부 4급 이상 퇴직자 69명이 산하 공공기관으로 재취업한 사실이 드러났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들의 보건복지부 퇴직 일자와 공공기관 재취업 일자다. 69명의 공공기관 재취업자 중 47명이 퇴직 후 일주일 이내에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0명 중 7명꼴로 퇴직과 동시에 산하 기관으로 옮겨가는 사실상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보건복지부 A 국장은 2013년 11월17일 퇴직한 다음 날인 18일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공단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2013년 7월10일 퇴직한 B 국장도 하루 뒤인 1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로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C 사무관은 2012년 6월2일 퇴직과 동시에 바로 부처 산하 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건의료 행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 공직자들의 재취업 관행은 더 큰 문제다. 최근 10년간(2005~14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 4급 이상 퇴직자 중 산하 기관과 협회 및 대학, 민간 기업체 등에 재취업한 이는 총 92명이었다. 이들 중 산하 기관으로 재취업한 사례는 11명이었고, 나머지 81명은 이익단체나 민간 업체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식약처의 업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영리 활동을 하는 민간 제약회사 등 기업체와 대형 병·의원을 운영하는 대학으로 재취업한 이는 35명으로 38%에 이른다. 공로연수를 마지막으로 2013년 6월 식약처에서 퇴직한 D씨는 건강보조식품 제조회사인 S사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검정센터에서 근무했던 E씨는 2013년 7월 퇴직 후 항암제를 개발하는 코스닥 상장 의약품 제조업체 K사의 사업본부장으로 재취업했다. 식약처에서 퇴직한 후 민간 기업 등으로 건너간 81명 중 4명은 국내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약처 4급 이상 38.5% 관련 기업·대학으로

식약처 퇴직 공무원의 경우 일반적인 공직자의 취업 제한 규칙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 퇴직자 중 재취업 일자가 확인되는 20명 중 14명(70%)은 퇴직 후 일주일 내에 관련 이익단체나 민간 기업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퇴직일과 재취업 일자가 동일하거나, 오히려 퇴직일 이전에 재취업한 사례도 있었다. 보건의료 분야 관료 출신들이 산하 기관은 물론 민간 분야와 짬짜미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복지부와 식약처 출신 공직자들이 산하 기관과 이익집단, 사기업체에 진출하면서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 업계 간의 유착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현숙 의원은 “복지부·식약처 등 보건의료 당국 퇴직자들이 민간 분야 등으로 재취업하면서 공직 활동 경험과 인맥을 동원해 해당 분야 규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정부 부처-산하 기관-업계의 유착에 따른 부실 규제가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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