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고 무시무시한 놈들이 나타났다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
  • 승인 2015.06.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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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돌아온 <쥬라기 월드> 화려한 CG보다 전통 촬영 방식 고수

1993년은 영화 역사상 기념비적인 해 중 하나였다. 그해 6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개봉됐다. 거대한 발부터 천천히 훑고 올라간 카메라가 마침내 브라키오사우루스의 거대한 몸체를 온전히 비출 때, 경이로움에 전율한 관객의 표정은 스크린 안에서 공룡을 바라보던 알란 그랜트 박사(샘 닐)의 표정과 정확히 일치했다. 거친 피부 질감과 세세한 근육 움직임까지 재현해 만든 거대 공룡은 그 어떤 영화도 선사하지 못했던 감흥을 안겼다. 그렇게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던 때가 있었다. 22년 전이다.

<쥬라기 월드>로 이름을 바꾸고 21세기에 새롭게 돌아온 이 영화가 안고 있던 가장 큰 숙제가 바로 그것이다. 22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필요하다면 영화에서 지구 전체를 부수고, 100% CG(컴퓨터그래픽) 캐릭터가 떼로 등장해도 이상할 것 없는 스펙터클의 시대에 돌아온 거대 공룡들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속 대형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부터가 이미 이와 비슷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이다. 영화 초반, 테마파크의 관리자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공룡을 발표할 때마다 관심이 치솟아요. 더 크고 무시무시한 종일수록.” 이를 달리 생각하면 스펙터클의 자극에 무뎌지는 관객과 블록버스터를 향한 일침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쥬라기 월드>는 일부러 새롭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대신,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한다.

ⓒ UPI 코리아

자극 무뎌진 관객과 블록버스터에 일침

코스타리카의 한 섬, 하루 방문객이 2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 높은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가 있다. 사람들이 직접 공룡을 구경하고 스릴을 느끼게끔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던 존 해몬드 박사(리처드 아텐보로)의 22년 전 꿈이 이번 편에 이르러 비로소 현실로 이뤄진 셈이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듯 작고 순한 트리케라톱스의 등에 올라타고, 관객들은 수중 공연장에 몰려들어 마치 동물원 돌고래 쇼를 보듯 거대 어룡 모사사우루스가 식인 상어를 단숨에 잡아먹는 진풍경을 목격한다. 클레어의 조카이자 이곳에 놀러 온 잭(닉 로빈슨)과 그레이(타이 심킨스) 형제 역시 눈앞에 펼쳐진 신세계에 입이 떡 벌어진다.

테마파크의 다른 공간에는 유전학자 헨리 우 박사(B.D.웡)가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새로운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가 격리돼 있다. 쥬라기 월드의 CEO 마스라니(이르판 칸)는 클레어에게 관객들에게 공개하기 전 종의 특성을 더욱 면밀히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를 위해 클레어는 전직 군인이자 동물행동학 전문가 오웬(크리스 프랫)을 부른다. 그는 수년간 ‘통제가 아닌 상호존중 관계’로 벨로시랩터 무리를 훈련해오고 있다. 이 와중에 지능적인 인도미누스는 탈출에 성공해 공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쥬라기 공원을 일반에 공개하기에 앞서 소수 인원이 안전 진단에 나선다는 1편의 설정과는 달리, <쥬라기 월드>는 이미 2만명의 관람객이 운집한 공간을 배경으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그 규모가 아예 다르다. 그런 장소에서 유전자 배합을 통해 지능적 공룡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이미 예고된 재난에 다름 아니다. 이 영화는 결국 과학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인간의 오만이 어떤 재앙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단순한 설정은 사실 이전 시리즈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며, 심지어 22년 전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 <쥬라기 월드>는 인도미누스 렉스라는 무시무시한 공룡의 종류를 만든 것 외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과거에 이 시리즈가 관객에게 안겼던 순수한 쾌감 그대로를 전하는 데 집중한다.

거대한 테마파크에 입장한 후 이곳을 구석구석 둘러보도록 관객을 안내하는 건 호기심에 들뜬 열한 살 소년 그레이다. 그는 책에서만 봤던 공룡을 실제로 보며 경이로워한다.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는 순간부터 호기심에 들뜬 그 소년의 눈으로, 우리는 22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원의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 순간 하릴없이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는 스펙터클로 감수성을 이야기하는 데 능한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의 영화들에서 선사했던 것과 유사한 종류의 감흥이다.

 

1편과 비슷한 카메라 앵글 삽입해 향수 자극

물론 <쥬라기 월드>의 감독은 스필버그가 아니다. 그는 총제작자의 자리를 택하는 대신 메가폰을 신예 감독 콜린 트레보로우의 손에 쥐여주었다. 1976년생인 트레보로우는 스필버그의 SF를 보고 자란 세대의 대표 주자다. 감독은 곳곳에서 예전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전함과 동시에 최대한의 예우를 보인다. 클레어가 ‘쥬라기 공원’ 티셔츠를 입은 직원에게 “그건 너무 구식 아닌가?”라고 하자 직원이 “전설이었다”고 받아치는 유머를 집어넣은 건 예사다. 이 영화에서 최악의 상황을 기회로 바꾸는 것은 과거의 유산들이다. 1편에서 공원 내 이동 수단이었던 포드 익스플로러 개조 차량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는 수단이 된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활용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공룡의 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장면을 비롯해 일부러 1편과 똑같이 찍은 듯한 몇몇 카메라 앵글은 반갑기까지 하다.

오웬과 클레어가 조카들을 찾아 공원을 헤매다 숨을 거두기 직전의 아포토사우루스와 만나는 장면 역시 꽤 뭉클하다. 이 장면은 CG가 아닌 직접 모형을 만들고 리모트 컨트롤로 조종하는 방식인 애니마트로닉스 기법으로 탄생했다. 감독이 과거 특수 효과를 담당했던 스탠 윈스턴과 그의 팀이 작업해 완성했던 전 시리즈에 대한 예우를 표시한 방식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더욱 큰 그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림만을 부르짖는 오늘날의 블록버스터 환경에서 예전 방식과 맥을 잇는 스펙터클을 구현한다. 낡았다고 생각한 것들에서 답을 찾아내는 것. 그 점이 이 영화를 ‘요즘 영화’와는 조금 달리, 어떤 면에서는 매우 클래식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중요한 이유다. “나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영화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쥬라기 공원>이라고 답한다. 그 영화를 보면 언제나 여덟 살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그게 내가 이 영화에서 지향했던 바다.” 트레보로우 감독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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