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소주’가 아니더냐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7.01 13: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하고 단맛 나는 소주 열풍…‘반짝’ 하다 사그라질 거란 지적도

‘달콤한 소주’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롯데주류는 지난 3월20일 유자과즙과 유자향이 첨가된 칵테일 소주 ‘순하리 처음처럼’을 출시했다. 기존의 17.5도 처음처럼 제품보다 알코올 도수를 3.5도 낮춘 이 소주는 낮은 도수와 달콤한 맛 덕분에 젊은 층과 여성층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순하리 처음처럼은 출시 초기엔 저도주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은 부산·경남 지역에서만 판매됐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5월21일부터 전국적으로 판매망을 넓혔다. 출시 후 70일 만인 5월 말 기준으로 누적 판매량 2200만병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방 소주의 ‘매서운 반격’ 

순하리 처음처럼이 주류업계의 ‘허니버터칩’이라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자 경쟁사들도 과즙·과일향을 첨가한 제품을 선보이며 따라잡기에 나섰다. 특히 지방 소주업체들이 매서운 공세를 펼치고 있다.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주류업체 무학은 지난 5월 순하리 처음처럼의 대항마로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13.5도)를 선보였다. 옐로우(유자)·레드(석류)·블루(블루베리) 3종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 6월8일에는 스칼렛(자몽)을 출시해 총 4종으로 전선을 강화했다. 이 시리즈 제품은 출시 일주일 만에 200만병을 판매한 데 이어, 한 달 만인 지난 6월12일 기준으로 누적판매량 1000만병을 기록했다. 무학은 6월22일부터 주력 제품인 ‘좋은데이’와 신제품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를 전국 편의점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롯데주류가 지난 3월 출시한 ‘순하리 처음처럼’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소주업계에 저도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부산 향토 소주업체인 대선주조 또한 순한 소주 열풍에 가세해 6월9일 15.8도의 ‘시원블루 로즈’와 14도 리큐르 제품인 ‘시원블루 자몽’을 출시했다. 이번에 출시한 시원블루 로즈는 대선주조가 지난 2월 일식당 등에 한정판으로 출시해 호평을 받은 16.9도 시원블루 로즈를 더 낮은 도수로 개발해 새롭게 내놓은 제품이다. 시원블루 자몽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자몽에 대한 20대 젊은 층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점을 확인한 후 그 결과를 반영해 만들었다. 현재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앞으로 ‘순하리 처음처럼’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와 같이 지역 호응을 기반으로 수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도 반격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6월19일 13도의 과일 리큐르 제품인 ‘자몽에이슬’을 선보였다. 하이트진로 또한 기존 주력 상품인 참이슬 소주(17.8도)보다 알코올 도수가 4.8도나 낮은 제품을 출시하며, 저도수 트렌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몽에이슬은 출시 하루 만에 115만병이 팔릴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소주의 저도화 바람은 오래전부터 불고 있었다. 1965년 처음 출시된 희석식 소주는 30도였는데 이후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계속 낮아졌다.

 

1990년대 말부터 저도주 경쟁 본격화

소주 시장 선두 주자인 진로는 1973년 25도짜리 참이슬을 출시하면서 30도가 대세이던 소주 시장에 저도화 바람을 일으켰다. 1990년대 말부터 주류업계의 저도주 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진로는 순한 술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1998년에는 23도, 2001년에는 22도, 2004년에는 21도로 꾸준히 알코올 도수를 낮추다가 2006년에는 19.8도짜리 ‘참이슬 후레쉬(fresh)’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2위 업체인 두산주류(현 롯데주류)도 같은 해 20도짜리 ‘처음처럼’을 출시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팽팽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무학은 2006년 ‘좋은데이’ 도수를 16.9도까지 낮췄다. 이 무렵 출시된 소주들의 도수는 대체로 16~18도 정도였다.

다시 저도주 열풍을 일으킨 곳은 롯데주류다. 올해 14도짜리 순하리 처음처럼을 선보이면서 그동안 소주의 마지노선으로 봤던 16도의 벽을 단번에 무너뜨린 것이다. 과일향과 단맛을 더한 것 또한 ‘신의 한 수’였다. 순하리 처음처럼은 기존 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을 치밀하게 분석해 나온 결과물이다. 롯데주류는 2013년 10월부터 1년 동안 440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분석에 나섰다. 조사 결과 소비자들은 기존 소주의 향과 맛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가격이 저렴한 소주를 베이스로 과실주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게 됐다.

14도는 와인류와 비슷한 도수라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롯데주류는 신중하게 움직였다. 초기에는 순하리 처음처럼의 출시 지역을 저도주를 선호하는 부산·경남 지역으로 한정했고, 소비자 반응을 살핀 후 판매망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폈다.

과일향 소주 열풍 언제까지 갈까

지금은 순하리 처음처럼이 이끈 저도의 ‘과일향 소주’ 열풍에 업계가 우르르 따라가는 모양새지만,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주류업계에서는 과일향 소주가 과거 매실주나 복분자주, 백세주 열풍이 일었을 때와 같이 ‘트렌드 마켓’으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주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치맥(치킨·맥주)’과 같이 술을 안주와 함께 먹는 문화가 있는데 과일향 소주는 음식과 함께 먹기엔 단맛 때문에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과일향 소주가 앞으로 시장을 어떤 규모로 구축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시장이 형성되려면 재구매자 비율이 어느 정도 형성돼야 하는데, 과일향 소주 유행 초기엔 호기심에 사 먹는 사람이 많지만 이것이 재구매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 같다. 실제 재구매자 비율이 계속 떨어지는 현상이 포착돼 앞으로 특정 시장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이종현
통상적으로 여름철은 소주 시장의 비수기로 꼽힌다. 올해 국내 주류업계에 ‘때 아닌’ 소주 전쟁이 벌어지면서 소주 원료인 주정을 공급하는 업체들의 주가가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낮은 도수의 ‘과일향 소주’ 열풍에 한동안 정체된 소주 판매량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소주 매출은 2012년 -7.1%, 2013년 -2.3%, 2014년 -6.4% 등으로 3년째 감소세를 보였으나 올해 1~5월에는 전년에 비해 2.8% 증가했다. 이마트가 올 1~5월 집계한 주류 판매량 조사 결과에서도 소주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8% 늘어났다. 순하리 처음처럼 등 저도 소주 매출이 33%나 급증해 전체 소주 매출 상승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본 곳은 주정업체다.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정업체는 MH에탄올·창해에탄올·한국알콜·풍국주정·진로발효 등 5개사다. 이 가운데 진로발효는 저도주 열풍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진로발효의 주가는 순하리 처음처럼이 출시되기 전인 지난 3월 초까지만 해도 3만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3개월이 지난 현재 50% 넘게 올라 4만3850원(6월25일 종가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MH에탄올과 창해에탄올 등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MH에탄올의 주가는 지난 5월7일 7160원에서 6월25일 종가 기준으로 1만3800원으로 뛰어올랐다. 코스닥에선 창해에탄올의 주가가 6월22일 4만원대를 돌파하면서 최근 1년 사이에 가장 높은 가격을 보였다. 창해에탄올 주가는 지난 5월7일 2만7250원에서 6월25일 종가 기준으로 4만1600원을 기록했다.

김윤오 신영증권 연구원은 “주정 사업은 업계 내 경쟁이 제한적이고 소주 사업과 밀접히 연관돼 있어 안전성과 수익성을 두루 갖췄다”며 “순하리 등 저도 소주 인기로 소주 수요의 저변이 확대된 것도 긍정적이다”고 진단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