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그룹 후계자 10명 중 3명 군대 안 갔다
  • 이석 기자·유지민 인턴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7.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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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병역 이행 전수조사…면제율 일반인 평균의 5배

국내 30대 그룹 후계자 중에서 33.3%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꼴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얘기다. 병무청이 최근 발표한 일반인의 군 면제 비율이 6%대인 점을 감안하면 5배 정도 높은 수치다.
 
시사저널은 현재 30대 그룹의 공식 후계자, 혹은 경영 승계가 유력한 3·4세의 병역 이행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오너가 없는 KT ·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은 조사에서 제외했다. 유력 후계자가 아직 학생인 2곳(SK그룹· 미래에셋)과 병역 사항을 공개하지 않은 1곳(한국타이어)을 제외하면 군대를 면제받은 인사는 모두 9명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가 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20대 2명, 50대 1명, 30대 1명 등의 순이다. 병역 면제 사유는 질병이 4명(44. 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외국 국적 및 장기 유학 2명(22.2%) , 과체중 1명(11. 1%) , 기타(미응답) 2명(22.2%)이었다. 방위나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대체복무를 한 사람은 3명이었다. 정상적으로 군에 입대해 병역 의무를 마친 재벌 후계자는 15명(55.6%)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들도 어디에서 군 복무를 했는지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공동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임준선

10대 그룹 후계자 면제율 56%로 가장 높아

군 면제자들은 주로 10대 그룹에 몰려 있다. 10대 그룹의 면제율은 56%로 전체 평균의 두 배에 육박했다. 미국 브라운 대학에 재학 중인 최인근씨(최태원 SK그룹 회장 장남) , 산업기능요원을 지낸 구광모 (주)LG 상무(구본무 LG그룹 회장 장남)와 조원태 한진칼 대표(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장남)를 제외하면, 육군 병장 이상을 마친 사람은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장남)와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장남)가 전부다. 두 사람은 각각 육군 특공연대와 공군 장교를 나왔다.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은 각각 허리디스크와 담낭(쓸개) 절개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경련 회장)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상무는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사실상 면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씨와 박정원 두산건설 및 (주)두산 회장은 각각 일본과 싱가포르 국적자로 분류되면서 군대를 가지 않았다. 특히 롯데가는 2세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이어 3세인 신유열씨도 병역 의무를 피해갔다. 두산가의 4세대 장자인 박정원 (주)두산 회장도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 차남의 영주권 편법 취득과 외국인학교 편법 입학 의혹이 불거진 터여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20대 그룹으로 범위를 넓혀도 면제율은 평균 이상이다. SK그룹을 제외한 19개 그룹 중에서 8명이 면제를 받아 면제율은 42. 1%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장남)과 이선호씨(이재현 CJ그룹 회장 장남) ,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장남) 등이 병역을 면제받았다. 정용진 부회장은 재벌 관련 병역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다. 1987년 서울대 입학 당시 작성했던 학생카드에 정 부회장의 키는 178cm, 몸무게는 79kg이다. 3년 후인 1990년 정 부회장은 유학을 다녀와서 징병검사를 받았다. 몸무게는 104kg으로 과체중에 의한 면제 판정을 받았다. 당시 면제 기준인 103kg을 1kg 초과한 것이다. 유학생활 중 스트레스를 받아 체중이 급격히 늘어날 수도 있지만 의혹의 시선이 만만치 않았다.

이선호씨는 아버지 이재현 회장과 같은 유전병(샤르코-마리-투스(CMT) )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30대 그룹에서 병역을 면제받은 인사는 조현준 (주)효성 사장(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장남)이 유일했다. 20~30대 그룹 후계자의 경우 병장 이상으로 만기 전역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조사됐다. 하지만 상위 20대 그룹, 특히 10대 그룹의 면제율이 높게 나오면서 전체 평균 또한 크게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업체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재벌그룹 총수 일가 3·4세는 평균 28세에 아버지 회사에 입사해 32세도 안 돼 임원으로 승진했다.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기간은 4년도 되지 않는다. 일반 직원이 20년 이상 일해도 임원 승진 확률이 1%도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신(神)의 자식들’임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사회 상류층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갈등 관리 전문가인 이계옥 한양대 겸임교수는 “영국의 왕실에 속한 귀족들은 장교 신분으로 반드시 군 복무를 이행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를 포함해 왕실 남성 모두가 최전선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며 “재벌 총수 일가도 사회 갈등 해소 차원에서 병역 기피 관행을 스스로 청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룹별로 보면 범(汎)삼성가의 면제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삼성에서 분가한 그룹은 현재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 등이다. 이들 그룹의 차남과 삼남까지 포함한 3세나 4세는 모두 10명이다. 이 중 5명이 면제를 받아 면제율 50%다. 앞서 언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CJ가 장남 이선호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외에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과 고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이 질병이나 과체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질병 종류도 갑상선과 근시, 허리디스크, 유전 질환 등 다양했다. 그나마 한솔그룹이 4세 체제로 접어들면서 범삼성가의 면제 비율을 많이 낮췄다. 3세인 조동혁 명예회장과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조동길 회장은 모두 장기 유학등을 이유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4세 4명은 모두 공군 병장이나 산업기능요원을 지냈다.

 

조동만 전 부회장의 차남 현승씨가 최근 병역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 ‘옥에 티’였다. 조씨는 2012년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근무지인 금형제조회사 대신 별도의 오피스텔에 출근하는 등 규정대로 복무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현승씨의 아버지인 조동만 전 부회장 역시 8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체납하고 있어 ‘부전자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범현대가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고 정주영 창업주의 직계 3세는 현재 11명이다. 이 중 군대를 면제받은 인사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유일하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삼남 예선씨는 학생이어서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 현대비앤지스틸의 정일선 사장과 정문선 부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남 정영선씨,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경선씨,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의 장남 현선씨 등은 육군 병장이나 카추샤 등으로 복무했다. 면제율은 10%로 나타났다. 방계인 한라그룹·성우그룹·한국프랜지공업 · 현대산업개발 ·KCC 등의 3세나 4세 역시 대부분 육군 병장 이상으로 복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아들)만 12개월 방위를 지냈다.

범LG가는 구씨의 LG그룹과 허씨의 GS그룹으로 나뉜다. 구씨는 고 구인회 창업주에서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직계 4세의 경우 구광모 (주)LG 상무가 산업기능요원 판정을 받았고,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의 장남 웅모씨와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장남 형모씨는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하지만 방계인 구본진 LF(옛 LG패션) 부사장과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구자원 LIG그룹 회장 장남) ,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회장의 장남과 차남 등 4명은 병역을 면제받았다.

GS가의 경우 허창수 GS그룹 회장에 이어,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상무도 제2보충역을 받았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과 차남 허자홍 H-Plus ENG 대표, 허준홍 GS칼텍스 상무(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장남) 등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 차녀 해군 소위 임관

SK가는 최신원 SKC 회장에 이어 장남인 최성환 상무가 해병대를 제대했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최창원 부회장은 모두 면제를 받았다. 자녀들은 아직 학생인 만큼 후계 체제를 논하기는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대신 최 회장의 차녀인 민정씨가 2014년 말 해군 소위로 임관한 것이 눈에 띈다.

한화가에는 김승연 회장과 차남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있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장남 동관씨와 차남 동원씨가 공군 장교로 임관했지만, 3남인 동선씨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공로를 인정받아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 김호연 회장의 경우 장남 동환씨는 공익근무요원 출신이고, 차남 동만씨는 공군 소위로 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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