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왕’은 전두환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07.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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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재임 중 14번…본인도 YS 때 사면 받아

우리나라 정부 수립 후 행정부에서 최초로 제출한 법안은 다름 아닌 ‘사면법’(1948년 8월30일 제정)이다. 이를 근거로 제1공화국에서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사면이 실시됐다. 역대 정부는 겉으로 ‘국민 대통합’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사면이 남용됐다.

정권 유지 수단이나 정치적인 국면 전환, 정치적 거래를 위해 사용됐고, 권력형 부정부패 비리 사범의 족쇄를 풀어주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자기 사람을 ‘특혜 사면’하거나 전 정권 사람을 ‘보은 사면’하는 일도 흔했다. 원칙 없는 사면은 결국 국민의 법 감정을 다치게 했고, 사회 갈등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7년 12월22일 사면 복권으로 안양교도소를 출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 골목에서 친인척과 주민의 환영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노태우 정권, 5공 인사 대거 사면

전두환 정권부터 현 박근혜 정권까지 사면은 총 53차례 단행됐는데 전두환 정권이 가장 많았다. 전두환 정권에서 사면이 많은 것은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던 ‘정통성 논란’ 때문이다. 12·12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 유지 수단으로 사면권을 이용했다. 특히 신군부에 대한 반발이 가장 많았던 1980년대 초 11번 연속으로 사면을 실시했다. 1981년 한 해에만 6회에 걸쳐 특별사면·특별감형·특별복권이 이뤄졌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사면이 이뤄져 사면권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전두환 정권은 임기 말인 1987년 대대적인 사면을 단행했다. 6·29 선언이 있은 후 7월에 2355명(특별사면 1615명, 특별감형 512명)을 사면 복권시켰다. 이때 김대중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도 포함됐다. 정권 말에 시행된 대규모 사면에 대해 ‘보험’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해석이 많이 나왔다.

전두환 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태우 정권은 취임 기념으로 6375명에 대해 사면을 실시했다. 특별사면이 4548명으로 가장 많았고, 특별감형 835명, 특별복권 992명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1992년 12월에 마지막 사면을 실시했는데 밀입북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이던 임수경 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문규현 신부를 가석방하는 등 26명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당시 대외적인 명분은 ‘사회 통합’이었지만, 여론의 눈총은 따가웠다. 노태우 정권의 특사 중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와 처남 이창석씨를 비롯한 5공 비리 관련자 19명도 포함됐다. 노태우 정권 시절 최대 권력형 비리의 하나인 ‘수서 사건’에 연루됐던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과 이원배 전 국회의원도 사면 혜택을 받았다. 권력형 비리자와 밀입북자를 한데 묶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5공 인사들을 위한 ‘끼워넣기’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자처했다. 취임 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제거하고, 숙군 작업, 공직자 재산 등록제, 금융실명제 등의 개혁을 추진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군부독재 청산의 일환으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고, 그 아래 수하들도 차례로 감옥에 보냈다.

하지만 임기 말에 특별사면으로 모두 풀어줬다. ‘12·12 군사정변’과 ‘5·18 광주 학살’ ‘비자금’ 등 비리 혐의로 전 전 대통령은 사형,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으나 2년 만에 풀려났다. 정호용 전 국방부장관, 장세동 전 안기부장, 안현태·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도 석방되거나 남은 형량을 면제받았다. 임기 초와 임기 말의 행태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특별사면은 남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후인 1998년 3월 ‘민주 정권 탄생’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다. 특별사면·감형·복권뿐 아니라 징계사면까지 실시해 총 20만1137명이 혜택을 봤다. 생계형 범죄자들을 대거 사면에 포함시키면서 임기 중 사회 통합 의지를 보여줬다.

임기 중 7차례 실시한 사면 중에는 ‘부적절 인사’가 포함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보 게이트의 장본인이었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여기에 연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등을 특사로 풀어주면서 국민적인 반감을 샀다. 2000년에는 선거법 위반으로 정치 활동이 금지됐던 이명박 전 의원을 사면한다. 이는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발판이 됐고, 제17대 대통령 당선으로까지 연결된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과 측근 인사들을 풀어주거나 사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는 2002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005년 8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사면 복권됐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인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신승남 전 검찰총장 등도 사면 혜택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구속됐던 측근들도 재임 시절에 사면했다. 불법 대선 자금 혐의로 구속됐던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과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 최도술 전 청와대 비서관,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4월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연달아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 논란이 되면서 최근 당시 관련자들이 뒤늦게 검찰 조사를 받았다.

 

‘유전 감형, 무전 만기’

이명박 정권도 사면권을 활용했다. 사면 대상자인 재벌 총수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 사면 규모도 역대 최고였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형이 확정된 지 두어 달도 안 돼 특별사면됐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사면됐다. 김승연 회장은 기업 활동과 무관한 보복 폭행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경제인으로 분류돼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2009년에는 경제 5단체의 특별사면 건의로 기업인 78명이 무더기로 사면됐다. 이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포함됐다. 배임과 조세 포탈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건희 회장의 경우 4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사면이 단행돼 논란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비리 혐의로 구속된 자신의 최측근들도 특별사면에 포함시켰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천신일 전 세중나모여행 회장, 파이시티 비리로 구속됐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고, 그 집행도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약자에게는 엄격하고,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관대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이어 ‘유전 감형’ ‘유전 가석방’ ‘무전 만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돈이 있으면 형량도 줄어들지만, 돈이 없으면 만기를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대 정권을 답습해 이전의 약속을 뒤집고 사면권을 남용한다면 국민과 더욱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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