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아들 김평일, 조카 명령을 받다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북한 전문기자 ()
  • 승인 2015.07.2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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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삼촌 평양 불러들인 김정은…체제 안정 과시용인 듯

 

지난 7월15일자 북한 로동신문 1면에는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이 실렸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대사(大使)회의’ 참석자들과 단체로 기념촬영을 한 장면이다. 우리의 재외공관장 회의에 해당하는 이 행사는 해외 주재 북한 대사들이 평양에 모여 김정은 체제의 대외 정책과 외교 노선에 대해 지침을 받고 논의하는 자리다. 로동신문은 ‘제43차 대사회의’라고 밝혔다. 연례행사 수준으로 치러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 행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우리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김정은의 행사 공개 결정이나 지시 없이는 어려운 일이란 얘기다.

기념사진에는 김정은을 위시해 리수용 외무상과 김계관 제1부상(수석 차관)이 앞자리에 앉고, 뒤로는 계단형으로 각국 주재 대사와 외교 일꾼들이 줄지어 선 광경이 드러났다. 그런데 대사들이 선 맨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에 자리한 인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김평일 체코 주재 북한 대사다. 김일성 주석의 차남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이다. 김일성 혈족을 일컫는 이른바 평양 로열패밀리의 리스트에서 오랜 기간 잊혔던 비운의 인물이다.

1월29일 체코 정부로부터 대사 신임장을 받고 있는 김평일. ⓒ AP연합

김정일 반감으로 27년간 해외 떠돌아

김평일은 북한 고위층 사이에 ‘곁가지’로 불렸다. 김일성과 본처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일이 1970년대 중반 후계 권력을 잡아나가자 ‘본가지’가 아닌 곁불 세력으로 폄훼당한 것이다.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 북한이 선전하는 김정숙은 1949년 출산 도중 숨졌다. 김일성은 1953년 타이피스트이자 비서 출신인 김성애와 재혼했다. 평양여자사범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김성애는 1970년대 여성동맹위원장을 맡고 노동당 중앙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거머쥐며 권세를 누렸다. 퍼스트레이디로서 김일성의 사회주의 국가 순방 때 동행하기도 했다. ‘평양 치맛바람’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기세등등하던 김성애는 남동생 김성갑이 권력 남용 등으로 처벌당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권력 전면에서 사라졌다. 계모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던 김정일이 1980년 제6차 노동당 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추대되면서 운명은 갈렸다.

김성애는 김일성 주석과의 사이에 딸 경진과 아들 평일·영일 형제를 뒀다. 이들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자리를 다지면서 곁가지로 냉대를 받았다. 김일성종합대를 나온 김평일은 1981년 유고 주재 대사관 무관으로 3년 근무했다. 평양 귀환 후 인민무력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1988년 헝가리 주재 대사를 시작으로 불가리아·핀란드·폴란드 대사를 거쳐 지난 2월 체코 대사에 부임했다. 무려 27년간 해외만 떠돌고 있는 것이다. 한 살 아래 남동생 김영일은 독일 주재 이익대표부에서 근무하던 2000년 현지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대북 정보를 다뤘던 정부 당국자는 “김일성의 아들인데도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주재국 현지에서 병으로 사망할 정도라면 얼마나 곁가지에 대한 처우나 배려가 부족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평일의 누나인 김경진도 헝가리 대사로 있는 김광섭과 함께 외국에 장기 체류 중이다. 처남·매부 사이인 김평일과 김광섭은 이번 대사회의 기념촬영 때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곁가지인 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비치는 듯한 시기가 있었다. 1994년 6월 김일성 주석이 평양을 찾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를 맞으면서 김성애를 퍼스트레이디로 동반한 것이다. 김일성 부부는 카터 일행과 대동강에서 유람선을 타며 기념촬영을 했고 이 사진은 북한 선전 매체와 외신을 탔다. 하지만 한 달 후 김일성이 심근경색으로 급사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김성애는 이후 김일성 추도대회 때 잠시 모습을 보였다. 현재 91세의 고령인데 북한 매체에서는 그녀의 동정을 전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김성애가 사실상 연금 상태에서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7월1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도·시·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정은 체제에 돌발변수 생길 경우 ‘대안’

정부 당국과 대북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건 북한이 왜 김평일의 평양 대사회의 참석 사실을 공개했느냐 하는 점이다. 그것도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사진을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로동신문을 통해 전한 대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북 부처 당국자는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이른바 곁가지로 불리는 김성애 소생들에 대한 유화책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3대 세습을 통한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만큼 유일 지배 체제에 도전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을 드러내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김평일은 북한군 대좌 출신으로 인민무력부 작전국 부국장까지 지내 군부 내 지지 세력도 적지 않았다. 또 외모가 김정일보다 더 김일성을 닮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해외 생활 속에서 권력 기반을 사실상 상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평일의 등장 나흘 후인 지난 7월19일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북한 TV는 김영주가 지방 대의원 선거에서 투표하는 모습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95세 고령인 김영주가 다리를 절뚝이며 투표를 마치고 투표장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사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드러났다. 김영주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헌병대에 근무한 친일 경력 때문에 김일성 정권 수립에 합류하지 못했다. 소련 유학을 거쳐 노동당에 발을 디뎠고, 김일성의 지원에 힘입어 핵심인 조직지도부장까지 올랐다. 북한 권력 2인자로 기세를 올리던 그는 1972년 5월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7·4 남북공동성명의 산파역을 했다. 하지만 조카인 김정일과의 후계 자리 다툼에서 밀려 은둔을 강요받아야 했다.

김평일에 대해 아버지 김정일과 다른 차원의 행보를 보인 김정은이 향후 로열패밀리 멤버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을 끈다.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김정은이 후계 권력을 다져가고 있다는 게 한·미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형 김정남과는 화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평양 권력의 곁가지 세력들이 사실상 거세된 상태인 게 분명하지만, 김정은 체제에 돌출변수가 생길 경우 대안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아버지 시대의 곁가지 문제에 전향적 태도를 보인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둘러싼 이복형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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