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주의 민낯 보여준 대륙의 유니클로 동영상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5.07.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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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탈의실에서 촬영…물질만능주의 판치는 중국의 민낯

7월14일 저녁,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위챗(微信) 등 중국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한 편의 동영상으로 떠들썩했다. 한국의 SNS에도 올라온 이 영상에는 젊은 남녀 한 쌍이 밀폐된 공간에서 아이폰을 이용해 성행위를 찍는 장면이 담겨져 있다. 전체 분량은 1분 11초로,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상의를 벗은 여성에게 “입맞춤을 하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두 남녀는 “남편이라고 불러봐” “우리가 함께할 것이라 말해” 등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서히 성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영상이 52초쯤 이르렀을 때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싼리툰(三裏屯) 유니클로 매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층에는 탈의실이 없으니, 옷을 입어보시려면 2층이나 3층으로 올라가세요”라는 여직원의 안내 방송이었다. 당초 이 영상을 본 중국 누리꾼들은 SNS상에서 떠도는 흔해빠진 섹스 동영상쯤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유니클로 매장 탈의실에서 찍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7월16일 중국 베이징의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여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AP 연합

섹스 동영상 찍힌 매장, 관광 명소 떠올라

밤새 중국 SNS에서는 ‘유니클로가 은밀히 홍콩이나 타이완의 연기자를 고용해 바이럴 마케팅을 했다’ ‘경쟁사인 자라(ZARA)나 H&M이 제작한 유니클로 저격 동영상이다’ 등 의견이 분분했다. 바이럴 마케팅은 누리꾼이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기업이나 상품을 홍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시간이 갈수록 전자를 지지하는 의견이 늘어나자, 다음 날 아침 유니클로는 웨이보를 통해 “해당 동영상은 절대 우리 회사의 마케팅 영상이 아니다”며 “사건 전모를 밝히기 위해 공안 당국에 신고해 수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실제 유니클로가 성명을 발표한 후 중국 SNS에서는 해당 동영상이 삭제됐다. 중국 언론 매체는 “신고를 받은 베이징(北京)시 차오양(朝陽)구 공안분국이 이번 사건을 중시해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누리꾼들의 ‘인육수색(人肉搜索)’을 통해 공개된 남녀의 신상정보와 웨이보 계정도 모두 삭제됐다. 인육수색이란 인터넷을 통해 특정인의 정보를 찾아내 망신을 주는 인신공격 행위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일주일이 지난 7월22일 현재, 사건의 전모는 모두 드러났다. 19일 베이징 시 공안 당국에 따르면, 동영상 속의 두 남녀는 실제로 오랜 연인 관계였음이 밝혀졌다. 남성은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성은 현재 베이징의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다. 1990년대에 태어난 ‘주링허우(九零後)’ 세대다. 이들은 지난 4월 유니클로 매장 탈의실에서 성관계를 가지면서 동영상을 촬영한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 조사에서 당사자들은 “위챗을 통해 친구에게 동영상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유출됐다”며 “유출된 사실을 알고 공안 당국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안 당국은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처음 게재한 쑨(孫) 아무개씨를 음란물 유포 혐의로 형사구류에 처했다. 또한 동영상을 다른 곳으로 퍼 나른 누리꾼 3명에게도 음란 정보 유포 혐의로 행정구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성행위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관련 처벌 조항이 없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 치안관리처벌법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알몸을 드러내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5일 이상 10일 이하의 구류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류 매장 탈의실이 법률에서 적시한 공공장소에 해당하는지 중국 법률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 일은 한낱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국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첫째는 섹스 동영상이 찍힌 매장이 하루아침에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동영상이 공개된 다음 날부터 싼리툰 매장 앞에 많은 중국인이 몰려와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유니클로 매장 직원들이 이를 제지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촬영에 나서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일부 젊은이들은 다른 매장의 탈의실 안에서 동영상 장면을 흉내 내면서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둘째는 누리꾼들이 인육수색을 통해 섹스 동영상 속에 등장한 남녀의 신상정보를 모두 공개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당사자들은 인권을 침해당하는 2차 피해를 겪어야 했다. 물론 일부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의류 매장 탈의실에서 성행위를 가진 이들을 처벌하라는 의견도 비등하고 있다. 마침 7월20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지하철 안에서 과도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한 쌍의 연인을 찍은 동영상이 떠돌면서 누리꾼들의 비난이 더욱 거세지는 상황이다. 해당 동영상에서는 남성이 좌석에 앉아 주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있는 여성의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애무하고 진한 키스를 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모두 촬영한 다음 SNS에 공개해버렸다. 이 영상을 두고 21일 중국 언론은 “공안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지만, 어떤 혐의를 두고 수사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문제는 어느 언론매체도 누가 도둑 촬영을 했는지, 이 같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가 적법한지 등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 넘은 관음증과 이지메 증상

중국 누리꾼들은 공공장소에서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벌인 철부지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렸다고 의기양양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얼굴이 드러나고 신상정보가 공개된 당사자들이 겪은 인권 침해와 심적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도를 넘은 관음증과 이지메 증상을 드러냈다. 심지어 남의 불행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며 동영상에 나오는 남녀의 모습이 담긴 티셔츠·스카프·팬티 등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엽기적인 행태까지 보였다.

또한 웨이보와 위챗을 운영하는 인터넷업체인 신랑(新浪)과 텐센트(騰迅)는 7월14일 밤 떠돈 섹스 동영상과 그 속의 남녀 신상정보를 삭제하지 않았다. 다음 날 유니클로가 공안 당국에 신고한 다음에야 조치를 취했다. 중국 인터넷 매체는 기사를 통해 동영상 속 남녀의 사진과 웨이보 계정을 공개해버렸다. 중국 신문과 TV는 싼리툰 매장에 기자를 보내 해당 탈의실과 매장 직원을 밀착 취재했고, 탈의실을 남녀가 함께 이용하기 쉽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주기까지 했다.

대담하게 매장 탈의실에서 성관계를 맺은 주링허우 연인, 그들의 신상을 털고 집단 이지메를 가한 누리꾼들, 섹스 동영상과 개인정보를 방치한 메이저 인터넷업체, 인권 침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낯 뜨거운 이슈를 생산해나간 언론, 남의 불행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상인들…. 기본적인 사회 가치관과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중국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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