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죽겠다” 말이 씨가 된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8.12 19:01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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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서울 지역 폭염 사망, 향후 30년 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뛸 것”

 ‘긴급재난 문자.’ 8월6일 오전 10시20분쯤 전국 방방곡곡 시민들의 휴대전화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국민안전처가 일괄 발송한 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8.6 현재 폭염특보 발령 중! 농사일 및 야외 활동 자제, 충분한 물 마시기, 주변 노약자 돌보기 등 안전사고 유의.’ 이날 전국 대다수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은 폭염특보 하한선인 33도를 가뿐히 넘었다. 정부 안전 당국이 각별한 경계를 주문할 정도로, 더위가 국가적인 ‘긴급재난’이 된 셈이다.

정말 무덥다. 말 그대로 폭염이다. 푹푹 찌는 날씨는 한낮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로 하여금 “더워 죽겠다”는 푸념이 절로 나오게 한다. 그런데 ‘살인 더위’라는 말이 단순히 과장의 표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온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한반도 평균기온은 끊임없이 상승하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극한 기후 현상인 폭염 발생 일수 역시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폭염은 시민의 건강 및 안전을 위협하는 엄연한 기상재해로 취급받고 있다.

8월6일 낮 최고기온이 34도에 이른 서울 여의도 도로 위에 지열로 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8월6일 낮 최고기온이 34도에 이른 서울 여의도 도로 위에 지열로 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폭염은 기후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피해가 가장 많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되는 기상재해다.” 한반도의 기후 변화를 진단한 각종 보고서 및 논문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서술이다. 그 이유에 대해 김도우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외 각종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여러 기상 변화 중에서도 폭염 증가가 매우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공통적으로 예측한다. 고령 인구가 폭염에 취약하다는 점 역시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추세가 가파른 만큼 폭염의 사회적 위험성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라는 자연적 요소와 ‘고령화’라는 인구사회학적 요소가 결합해 폭염을 ‘소리 없는 살인자’로 만든다는 얘기다.

이미 조짐이 확연하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1991년부터 2012년까지 폭염 사망자 수 및 전국 평균 폭염 발생 일수 변화를 비교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2004년을 기점으로 폭염 사망자 수가 훌쩍 늘어난 점이 확인됐다. 2004년 이전까지는 1년당 10.2명(이례적 기상 이변인 1994년은 제외한 값)꼴이었으나, 2004년 이후로는 1년당 32.2명꼴로 껑충 뛴 것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폭염 일수가 다소 증가한 영향과 함께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현상과 관련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2004년 이전까지 1년당 6.7일(1994년 제외)이었던 폭염 일수가 이후 1년당 10일 수준으로 늘어난 것, 60세 이상 고령 인구가 1991년 226만명 수준에서 588만명 수준으로 늘어난 것 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온난화·고령화 속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

‘살인 더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위세를 떨칠 전망이다.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인 ‘기후변화 정부 간 패널’(IPCC)이 2014년 발표한 제5차 평가보고서는 “전 지구적으로 추운 낮과 밤의 빈도는 하락하고 따뜻한 낮과 밤의 빈도는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유럽·아시아·호주의 대다수 지역에서는 폭염의 빈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아시아에 속한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상청이 2012년 발표한 ‘한반도 미래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 저감 노력 없이 현재의 경제 성장을 이어나간다는 시나리오하에서 21세기 후반(2071?2100년) 한반도 기온은 현재(1981?2010년)보다 무려 5.7도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폭염 일수는 현재 한반도 전체 평균 7.3일에서 21세기 후반에는 30.2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폭염 일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폭염 사망자 역시 늘어나게 된다. 전문가들은 각종 예측 모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숫자들을 제시한다. 올해 초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14’에서는 학계의 최근 연구를 인용해 서울 지역의 폭염 사망이 향후 30년 뒤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2001~2010년) 인구 10만명당 0.7명에서 30년 뒤(2036~2040년)에는 1.5명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기온 상승에 의한 건강 영향은 일정 온도까지는 잘 나타나지 않다가 일정 온도를 넘어서면 그 영향의 크기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상의 관련 통계 및 전망치는 ‘온열 질환에 의한 사망자 수’에 국한된 것이다. 즉 한여름 동안 자연열에 대한 직접적 노출에 따라 일사병·열사병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로만 한정한 결과다. 폭염 피해를 집계하는 또 다른 방식이 바로 ‘초과 사망자 수’다. 특정 기간 동안 평균적으로 예상되는 사망자 수와 실제 사망자 수 사이의 차이다. 무더위라는 요인 때문에 평소보다 ‘초과’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를 파악해 폭염 피해를 관측하는 방식이다. ‘온열 질환에 의한 사망자 수’가 폭염의 직접적 피해 정도를 드러낸다면, ‘초과 사망자 수’는 무더위의 직간접적 피해를 망라한 추정치인 셈이다. 무려 한 달(29.2일) 가깝게 폭염이 이어졌던 1994년 당시의 초과 사망은 총 3384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기상연구소는 1901년부터 2008년까지 발생한 태풍·대설·폭염 등 기상재해 사망자 수를 분석한 결과, 숱한 대형 재난들을 제치고 1994년 폭염이 1위에 올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살인 더위’가 일반 시민들에게 끼칠 수 있는 직간접 피해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노인·현장노동자 등 ‘취약 계층’ 위험하다

갈수록 위세를 더해가는 ‘살인 더위’는 특정 취약 계층의 생명과 안전을 특히 위협하게 된다. 노인, 현장 노동자, 노숙인 등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2년간(1991~2012년) 총 501명의 온열 질환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연령별로는 40·50대 남성 및 60대 이상 노인이 취약하며, 직업별로는 야외에서 주로 근무하는 농림어업 종사자 및 단순 노무 종사자들에서 피해가 자주 발생하였다. 지역적으로는 폭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남부 내륙에서 피해가 더 자주 발생하였는데, 특히 합천군·의성군 등 고령화율과 농림어업 종사율이 높은 농촌 지역에서 인구당 사망자 수가 가장 높았다.”

보고서는 “도시의 경우 약한 더위에도 건강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냉방시설이 구비되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및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노숙인이 주요 취약 계층이나, 농촌의 경우 폭염 경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고도 논·밭·비닐하우스 등 고온의 환경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노인층이 주요 취약 계층”이라고 밝혔다. 고령층 및 무직자를 제외하면 농림어업 종사자, 단순 노무자, 군인, 기능직 순으로 사망자가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실외 근무자(주로 남성)가 폭염에 매우 취약한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여름 들어 발생한 폭염 사망자는 논밭에서 일하던 70대 노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30대 노동자 등이었다.

정부의 폭염 대책 역시 저소득 독거노인 등 취약 계층의 폭염 피해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더위 쉼터’ 및 재난도우미 운영, 옥외 사업장에 대한 무더위 휴식시간제 권고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안전처는 올해 쉼터 위치 안내 서비스 및 이용 안내 홍보를 강화하는 한편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에 시·도별 재해구호기금을 활용해 긴급 지원에 나서는 등의 폭염 대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실질적인 피해 방지 면에서 그다지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우리 사회의 피폐한 공동체 문화나 노동 경시 풍조 속에서는 노인·현장 노동자 등 취약 계층의 건강권이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8월5일 논평에서 “현장에서는 ‘무더위 심터’를 지정해놓았을 뿐 예산이나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휴식시간제는 단순 권고에 그치고 있다”며 지자체 및 지역 공동체 차원의 예방 정책 적극 지원, 고위험 직업군 별도 홍보·교육, 사회경제적 약자의 건강 적응 정책 마련 등을 포함한 정부의 종합적 대응을 촉구했다.

 

온열 질환 진료환자 연 2.6% 증가 

폭염으로 인한 각종 온열 질환은 다수 시민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 열사병 및 일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 열성 부종 등이 그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연간 온열 질환 진료 인원은 2010년 1만4887명에서 2014년 1만6487명으로 늘어났다. 연평균 2.6%의 증가율이다. 총 진료비 역시 10억9354만원에서 11억4419만원으로 늘어 연평균 1.1%의 증가율을 보였다.

온열 질환으로 인한 시민들의 신체적·경제적 피해는 향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해관 성균관대 예방의학과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보건복지부 용역보고서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 부담 및 사회경제적 영향 평가 관련 연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32억6000만원으로 산출된 온열 질환 질병비용(의료비·비의료비·생산성 손실 비용 등)은 2030년 RCP 4.5 시나리오에서 39억4000만원, RCP 8.5 시나리오에서 49억8000만원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추계됐다. RCP란 온실가스 농도변화 반영 시나리오를 말한다.

모기·진드기·설치류 등이 매개인 열대성 감염병 확산도 우려 대상이다. 말라리아, 렙토스피라증, 신증후군 출혈열 등이다. 특히 털진드기를 통해 감염되는 쯔쯔가무시증은 2001년 2637명에서 2013년 1만345명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환자 대다수가 농촌 지역의 노인층이며, 털진드기의 분포지가 점차 북상하며 발생 지역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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