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왜 상의를 벗을 수밖에 없었나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8.12 19:21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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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온라인으로 확산되는 페미니즘 운동 ‘프리더니플’…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

사귀는 남자와 여자가 상의를 벗었다. 그 사진을 고스란히 페이스북에 올렸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그렇듯. 재미로. 그랬더니 한쪽 계정에서 난리가 났다.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누구 계정일까. 역시 빤했다. 여자 쪽이다. ‘프리더니플’(#FreeTheNipple) 운동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여성, 유두를 거세하다 ‘#FreeTheNipple!’

존 그레고리가 ‘딸들에게 물려주는 아버지의 유산’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아무리 멋진 젖가슴도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것만큼 멋지지는 않다.” 상상력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이 괜한 말은 아니다. 상상력은 보이지 않을 때, 혹은 볼 수 없을 때 절정에 이른다. 모든 것을 다 내려다보는 신에게 상상력은 불필요한 능력이나 다름없다.

여성의 유두에게 자유를 허하라! ‘프리더니플((#FreeTheNipple)’ 운동이 해외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각계 유명인들이 SNS에 자신의 유두를 공개하고 있다. ⓒ 마일리사이러스·스카우트 윌리스·카라 델러빈·리한나 인스타그램·Catalogue뉴스·Ruaridh Connellan/barcroft USA·Esco film 등.

특히 여성의 신체 가운데 유두는 아무 남자나 볼 수 있는 부위가 아니다. 여성이 허락한 아주 일부 남성에게만 이 부위를 볼 수 있는 권한 혹은 권리가 주어진다. 그런데 한 여성이 이러한 ‘불문율’을 과감히 깨고, 전 세계인의 ‘소통 공간’이 된 페이스북에 과감히 자신의 유두를 공개했다. 그여자의 ‘죄’는 그것이었다. 몇몇 남자만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유두를 모든 남성이 볼 수 있도록 한 ‘죄’.

여성학 박사 윤보라씨는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나쁜 여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여성을 참조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페이스북에 자신의 젖가슴을 노출한 이 여성은 ‘나쁜 여자’가 아니라 현 사회의 지배 구조, 그러니까 ‘여성은 함부로 가슴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패러다임을 깨려고 했기에 온갖 지탄을 받은 것이다.

이 여성은 해당 사진을 곧바로 내렸지만, 연이어 다른 여성들이 이 여성에게만 비난이 쏟아지는 현상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했다.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와 리한나, 데미 무어와 브루스 윌리스의 딸인 스카우트 윌리스, 영국 모델이자 배우 겸 가수인 카라 델러빈 등 유명 연예인은 물론 아이슬란드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까지 SNS에 자신의 유두를 찍어 올렸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유두 대신에 남성들의 젖꼭지를 붙여 올리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방송 진행자인 첼시 핸들러는 상의를 탈의한 채 말을 탄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웃통을 벗고 말 타고 있는 사진을 패러디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당연히’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 그랬더니 사진을 다시 올리며 한 핸들러의 말이 걸작이다. “나는 푸틴보다 더 잘난 몸을 입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I have every right to prove than Putine).” 여성의 유두에 자유를 허하라! 이게 바로 ‘프리더니플’(#FreeTheNipple!)이다.

영국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여성의 유두가 나온 사진을 삭제하는 건 여성의 유두가 ‘유해한 콘텐츠’(Offensive Content)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아이들이나 상사, 부모님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사용자는 십중팔구 그것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누드 등의 계정이 발견된다면, 이 콘텐츠는 접속할 수 없을 것이다.” 뉴욕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의를 탈의한 채 길거리를 활보해도 합법이다. 그런데 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은 그렇지 않은 걸까. 뭔가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당신도 이미 ‘프리더니플’의 동참자다.

국내도 ‘페페페’ ‘메갈리아’ 등 활동 선보여

자신의 유두를 당당히 공개하는 것만큼 여성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여성학자 저메인 그리어는 “유두가 최근에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여성에게 이롭다”며 “유두는 표현력이 풍부하고 반응에 민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프리더니플’은 새로운 페미니즘의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프리더니플’ 운동이 한국에까지 열풍을 몰고 오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국내에서도 곧 여성들이 자신의 젖가슴을 과감히 그리고 당당하게 노출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사실 한국에서도 ‘프리더니플’은 아니지만 올해 초부터 온라인에서 비슷한 페미니즘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2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와 4월 대한민국 반(反)여성혐오 단체 ‘#페페페’, 그리고 6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생긴 ‘메갈리아’ 등이 그렇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는 트위터상에서 샤프(#) 기호를 달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해시태그(#) 운동이다. 해시태그는 SNS에서 특정 단어나 문구 앞에 ‘#’을 붙여 연관된 정보를 한데 묶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기능이다. 김태훈 팝칼럼니스트가 한 패션지에 쓴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에 대한 반발이 선언의 계기가 됐다. ‘#페페페’는 페미니즘(Feminism)·페미니스트(Feminist)의 ‘페’(Fe)를 3번 반복해 서로 다른 페미니스트들 간 연대를 표현한 것이다. ‘메갈리아’는 ‘메르스’와 ‘이갈리아의 딸들’의 합성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뒤바뀐 가상공간을 다룬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제목이다 .

‘#페페페’와 ‘메갈리아’는 단순히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특히 ‘#페페페’는 개그맨 장동민이 여성혐오 발언을 했을 때 장동민에게 제대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고, 협찬사·방송국 보이콧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또 팟캐스트를 통해 ‘성차별·반인권 인사 황교안의 국무총리 임명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메갈리아’는 네이버와 연계해 지난 6월13일부터 7월5일까지 18만1792개의 ‘콩’을 모금했다. 콩 하나에 100원씩 해서 총 1800만원이 넘는 돈이다. 이 돈은 성폭력 피해 아동 지원과 같은 프로젝트에 기부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논객시대>의 저자 노정태씨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새로운 페미니즘이라기보다 이 시대의 언어가 오디오(전화)에서 카카오톡 등과 같은 온라인으로 변화했는데 그것에 맞춰 페미니즘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물리적 위협이 없는 온라인에서 소수자인 여성이 연대하기 더 쉽고 그만큼 힘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도 “페미니즘은 그동안 소수자인 여성의 운동, 여성단체의 활동으로만 인식됐는데 온라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까지 참여할 수 있게 해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을 넓혔다”고 강조했다.

비판의 지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과연 페미니즘이 온라인을 통해 진화한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남성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들이 여성혐오를 남성혐오로 맞받아치고 있다는 비판이 페미니즘에 뼈아픈 지적이다. ‘#페페페’는 진보 논객 진중권씨 등을 향해 ‘여혐종자(여성혐오종자)’라고 비판하고, ‘메갈리아’에서는 ‘김치년’ 등 여성혐오적인 단어가 등장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김치남’ 같은 반대어로 반격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첼시 핸들러는 상의를 탈의한 채 말을 탄 모습(오른쪽)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웃통을 벗은 채 말을 타고 있는 사진(왼쪽)을 패러디한 것이다. ⓒ 첼시 핸들러 인스타그램

여성혐오가 여성의 말문을 열었다

여성학자들과 각계 전문가들은 현재 남성혐오와 여성혐오 현상이 결코 동등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노정태씨는 “페페페가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장동민씨의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분명 주목할 부분이다”며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경마장 내 한 여성의 충격적인 죽음에서 시작됐듯 페미니즘은 현실에서 좀 더 공격적인 방법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욕을 하는 초등학생에게 이게 얼마나 아픈지 그대로 거울로 반사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임옥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여성학교수도 “여성들의 ‘남성혐오’는 남성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여성혐오’에 대한 패러디로 볼 수 있다. 남녀 권력이 비대칭적인 현실에서 여성의 남성혐오 발언은 남성의 그것과 결코 동일한 강도를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혐오는 강자가 약자한테 폭력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데, 권력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똑같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혐오라고 한다면 이들 운동을 ‘혐오’ 운동으로 뒤바꾸려는 정치적 언사”라며 “혐오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무섭지 않다면 혐오할 이유가 없는데 그만큼 온라인상에서 여성들의 움직임이 남성들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여성혐오에 대한 남성혐오 담론을 주장할 게 아니라 오히려 우려할 부분은 이들 운동의 지속성에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는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된 현재 초기의 열풍이 많이 수그러든 상황이다. ‘#페페페’의 운동 기간은 석 달이 채 안 된다. ‘메갈리아’는 현재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페미니즘 공간이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임옥희 교수는 “온라인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은 빠르게 확산되는 반면 지속성이 짧다”며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낼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인 것이다”고 말했다.

저메인은 <여성, 거세당하다>에서 “새로운 의식을 찾는 여성에게는 오랫동안 뚜렷한 보상이 없을지 모른다”고 했다. 에세이스트 김현진씨 역시 “여자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페미니즘은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도 어려운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온 노라의 삶이 더 편해지지 않았다고 해서 노라가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들이 택한 길이 옳은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지침은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느냐에 있다. 저메인의 말처럼 ‘혁명은 억압당한 자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젖가슴을 내보이고,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화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 자체로 이 운동들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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