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 걸려 ‘기소 폭탄’ 맞았나
  • 신중섭 인턴기자·이승욱 기자 (.)
  • 승인 2015.09.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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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음주단속 항의했다 8번 재판…전과자 된 50대 부부 사연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총 8번의 재판, 그중 7번의 재판에서 50대 부부는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마지막 8번째 재판에서 부부는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8월19일 남편의 위증죄에 대한 항소심에서 청주지법 재판부가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억울함을 주장하며 끈질기게 벌여온 법정 다툼에서 유일하게 재판부가 부부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었다. 하지만 부부의 가슴속에는 한 줄기 희망의 빛보다는 가슴앓이를 해왔던 지난 6년간의 애환이 복받쳐 올랐다고 한다. 부부는 “아직도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 확정 판결을 받은 박철씨(53)를 2009년 6월 촬영한 영상 캡처 사진. 왼쪽은 박씨의 경찰관 폭행 혐의를 인정한 재판부에 제출된 영상이고, 오른쪽은 박씨의 위증죄를 다룬 항소심 재판부가 증거로 인정한 영상이다. 8월19일 청주지법은 오른쪽 영상을 근거로 “경찰관이 폭행을 당한 것인 양 행동한 것으로 볼 여지가 높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귀농을 꿈꾸며 시골로 내려간 한 50대 부부가 6년여의 긴 송사에 휘말리게 된 것은 2009년 6월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작은 사건’ 때문이었다. 음주단속 중이던 경찰관과의 시비로 남편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되면서 피 말리는 여정은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부부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부는 3번이나 기소돼 법정에 서야 했다. 그중 두 번은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숲 해설가 교육 과정을 이수하며 시골 생활의 낭만을 그리던 부부의 꿈은 그렇게 부서져갔다. 2009년 6월의 그날 밤, 숲 해설가 사람들과의 회식을 마치고 아들을 데리러 가던 중 일이 발생했다.

지난 8월26일 기자는 충북 충주의 한 시골 마을을 찾았다. 부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조그만 마당 한편에는 평상과 테이블이 있었고 부부가 기르는 개 한 마리가 취재진을 반겼다. 귀농의 꿈을 안고 경기도 안산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순간에 부서진 귀농의 꿈

마당 테이블에 앉은 남편 박철씨(53), 부인 최옥자씨(51) 부부는 그간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놓았다. 20년 넘도록 유치원 교사를 하던 아내는 직업을 잃었고,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대학생 아들은 탈모가 생겼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법원 등기우편 때문에 우체부의 오토바이 소리만 들려도 가족들의 심장이 뛰었다고 한다. 타지에 있던 딸에게는 최근에야 이런 사실을 알렸다. 최씨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게 두려워 한동안 새로운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용기를 내 화장품 뚜껑을 만드는 공장에서 지난해부터 일하게 됐다. 그들이 꿈꾸던 귀농생활은 그들의 삶에 존재하지 않았다.

기자와의 인터뷰에 앞서 박씨는 먼저 정확히 짚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일부 보도에서 제가 직접 차에서 내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거짓입니다. 경찰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저의 귀와 목을 잡아당겨 끌어내렸습니다.” 박씨는 최초 사건에 대한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부부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2009년 6월27일 숲 해설가 교육의 마지막 과정을 이수하고 회식 자리를 가진 부부는 밤 11시쯤 고3인 아들을 데리러 가고 있었다. 술을 마신 남편 대신 아내인 최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발견해 서행하던 순간,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차 앞에 뛰어들었다. 놀라서 보니 경찰이 음주단속을 위해 차를 세운 것이었다. 최씨는 얼떨결에 측정에 응했지만, 남편 박씨는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음주단속 입간판도 설치해놓지 않고 갑자기 왕복 7차로의 도로 한복판에서 튀어나와 단속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술을 먹고 흥분한 박씨가 경찰에 욕설을 하며 항의했고, 경찰은 박씨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박씨와 경찰 간에 승강이가 벌어졌고 경찰은 채증을 위해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이후 6년이 넘도록 부부를 송사에 휘말리게 할 장면이 캠코더에 담기게 된다. 단속 경찰관인 박 아무개 경사(사건 당시 경장)가 팔이 꺾인 채 허리를 구부리며 신음하는 모습이었다. 검찰은 경찰 측이 촬영한 당시 영상과 경찰관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박씨를 기소해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박씨는 이에 불복했다. 경찰관의 오른팔을 잡아 뒤로 비틀지 않았다며 혐의 내용을 반박했다. 경찰관을 폭행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던 박씨는 변호인도 없이 정식 재판을 요구하게 된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경찰관의 법정 진술과 경찰 진술조서, 그리고 CD에 복사된 당시 영상을 바탕으로 정식 재판에서도 유죄가 확정됐다.

뒤집어진 결정적 증거 동영상

그런데 이후 불똥은 아내에게로 튀었다. 남편 박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 항소심(2심) 재판에서 남편 측 증인으로 섰던 아내 최씨가 위증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최씨는 당시 경찰관이 바닥에 고꾸라지는 것은 봤으나 남편이 경찰관의 팔을 비튼 것은 못 봤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경찰의 진술과 CD 영상을 바탕으로 최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아내가 같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상황을 못 봤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부부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아내 최씨가 유치원 교사로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결했다. 부부는 변호인을 선임하고 항소를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재판부와 동일한 말만 반복했다. “원심 판결을 면밀히 검토하고 법정에서 CD를 재생해본 결과 내린 판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이 박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 증거로 제출한 동영상에 대한 의문이 재판 과정에서 불거졌다. 박씨의 재판에서 틀었던 영상에서는 박 경사가 팔이 꺾인 채 캠코더를 향해 몇 걸음을 내딛다가 영상이 끊기고 이후 박씨가 체포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위증죄 재판에서 재생된 영상에는 박 경사가 팔이 비틀린 채 주저앉았다가 그대로 일어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에 박씨가 영상 조작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재판부는 국과수에 영상 감정을 의뢰한 결과 변조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게 대법원까지 갔지만 아내 최씨에게도 유죄가 확정됐다.

결국 검찰의 기소로 남편 박씨에 이어 부인 최씨까지 전과자 신세가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찰은 항소심 재판에서 아내의 증인으로 나섰던 박씨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부인의 위증죄 혐의 항소심 재판을 끝마치고 나온 박씨가 차에 오른 지 30여 분 만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검찰 쪽 관계자였다. 그는 “검사님이 위증죄로 피고인을 소환하라 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아니, 지금 내 재판 끝나고 검사님은 다른 법정에 앉아 계시던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 검찰 관계자는 “검사님이 법정에서 문자 보내셨다. 피고인 소환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씨는 “그런 얘기는 문서로 보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문서를 확인한 박씨는 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문을 받게 됐는데 여기서 또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고 한다. 박씨의 아들이 탄원서를 쓴 것을 검사가 언급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부인에 이어 아들에게까지 불씨가 옮겨가는 것 같아 검사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박씨는 위증죄로 다시 기소된다. 부부가 돌아가며 위증에 위증으로 기소된 것이다. 2012년에 있었던 일이다.

‘석궁 테러’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박훈 변호사가 합세했지만 2014년 1심에서 박씨는 위증죄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종전까지 있었던 모든 공판 기록들과 경찰 측의 진술,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 중 일부 진술을 토대로 나온 결과였다. CD 동영상 조작에 대한 얘기도 또 나왔다. 영상 조작 의문을 제기한 부분은 ‘삭제’와 같은 편집에 관한 것이지 ‘오른팔을 잡아 비트는 장면’에 대한 조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오른팔을 비튼 사실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위증죄에 대한 항소심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지난 8월19일 부부가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부부가 주장해왔던 부분들이 마침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판결문 내용은 종전의 판결들과 상당히 달랐다. 또 자세했다. A4 용지로 25장에 이르렀다. 오히려 경찰 측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내용과 함께, 수십 장의 동영상 정지화면 및 상세한 부연설명이 첨부됐다. 지금까지 부부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 증거 중 하나였던 ‘CD 영상’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바뀐 것이다.

종전의 모든 재판은 경찰의 진술과 박 경사가 팔이 꺾여 몸을 숙이는 장면 자체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는 동영상이 과연 증거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영상 속의 몸동작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를 분석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박 경사가 팔이 꺾여 주저앉았다 일어나는 모습’은 확인할 수 있으나 오른팔이 ‘꺾이게 되기까지의 구체적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피고인의 세밀한 동작 및 손목 부분의 세밀한 움직임’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증거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영상에서처럼 피고인이 뻣뻣하게 서 있는 상태에서 건장한 체격과 완력의 소유자인 박 경사의 팔을 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동영상이 피고인 박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기능한다고 봤다. 더구나 아내 최씨가 위증죄로 기소된 부분인 ‘남편이 경찰관의 팔을 비트는 장면을 봤느냐’에 대해서도 ‘동영상을 보면 최씨가 구체적 행위를 직접 보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이 영상의 화면을 밝게 하고 속도를 느리게 하는 단순 작업만으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토대로 앞선 재판들을 살피면 동영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 작업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만약 첫 번째 재판에서 해당 동영상의 증거력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다면, 위증으로 인한 두 번의 기소는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해 박훈 변호사는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씨가 거칠게 항의를 했고 사법부는 그런 박씨의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부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니까 ‘괘씸죄’가 적용됐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8월26일 충주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과 관련해 박철씨 부부가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박 경사 “내 팔을 비튼 건 사실이다”

박씨의 폭행을 주장하는 박 경사는 “동영상을 보면 아들의 등판이 진실을 가리고 있다.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나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검찰이 상고장을 접수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앞으로 있을 대법원의 판결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박씨에 의해) 팔이 꺾였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경찰의 팔을 꺾었느냐’ ‘경찰이 할리우드 액션을 했느냐’ 여부는 팽팽하게 맞서 있다. 부부는 대법원에서도 박씨의 위증죄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면, 이전 판결들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억울함을 풀고 아내의 복직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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