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과 安의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 김현 뉴스1 정치부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09.07 23: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2년 대선 이후 3년 만에 ‘문재인 퇴진’ 놓고 정면충돌···비노, ‘분당’ ‘신당’보다 내부 투쟁 주력 선회

김상곤 혁신위원회 체제가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가 더욱 요동치고 있다. 당 혁신의 성패를 놓고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주류 진영과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내세운 ‘비노’·비주류 진영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어서다. 그동안 비주류 측의 사퇴 공세를 받아온 문 대표가 “지도부 흔들기”라며 정면 돌파에 나서자, 당내 문제에 침묵했던 안 전 대표가 “당 혁신은 실패했다”고 문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면서 문 대표와 안 전 대표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오는 9월16일 혁신위의 최종적인 혁신안을 처리할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양측 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9월1일 열린 ‘안철수의 공정성장론 조찬 간담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 박영선 의원(왼쪽부터)이 악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박지원 등과 ‘천정배 신당’ 간 갈등도 배경

그간 야권 재편과 관련해 ‘신당론’과 ‘리모델링론’을 놓고 고민하던 새정치연합 내 비주류들이 최근 주류 측을 상대로 한 ‘내부 투쟁’으로 방향을 선회한 모양새다. 신당 및 분당론에 대한 불씨는 남겨둔 채 일단 새정치연합을 ‘리모델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29 재·보궐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던 주승용 최고위원이 8월23일 108일 만에 최고위에 복귀한 것은 물론, 비주류 진영의 유력 인사인 박지원·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각각 당의 ‘한반도평화·안전보장특위’와 ‘재벌개혁특위’ 위원장직을 수락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실제 비주류 진영 내에서도 신당론보다는 제대로 된 당 혁신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리모델링론을 펴는 쪽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9월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신당론을 주장하기 전에 당을 제대로 혁신해 정상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라며 “호남을 넘어 전국적 민심은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문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당내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주류 진영에 속한 한 재선 의원도 “최근 탈당을 얘기했던 비주류 의원들을 만나보면 방향을 전환한 것 같다”면서 “내부 투쟁을 하면서 지분을 확보해 공천을 받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는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총선과 대선이 어렵다”는 민심과 동시에 “분당을 하기보다는 통합과 단결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작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직 신당 및 분당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위한 명분이 부족한 측면이 있는 데다 신당을 추동할 유력한 대권 주자가 없다는 분석이 반영된 측면도 엿보인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도 최근 각종 인터뷰를 통해 박주선 의원 등 일부 비주류 진영 의원들의 탈당설과 관련해 “단순하게 동거를 못하겠다는 이유로 탈당을 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방향이 아니다. 정치라는 것은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조율해 그 조율된 의견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고, 얼마만큼 의견이 다른 것을 조율해가는지 그 과정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며 “그런 과정 없이 분당이나 탈당이라는 행위를 했을 때 과연 국민적 지지가 있겠느냐 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좀 더 혁신의 노력,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볼 수 있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최근 목포 MBC의 한 프로그램에서 “신당을 창당하려면 국민들에게 충분한 명분을 줘야 되는데, 그 명분이 아직 좀 부족하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상 국민이 바라볼 수 있는 대통령 후보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거기엔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주승용 최고위원과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분당 위기론’을 강조했던 비주류 유력 인사들이 내부 투쟁 쪽으로 돌아선 데 대해 천정배 무소속 의원 측과의 입장 차 때문이라는 후문도 들린다. 신당파로 분류되는 한 전직 의원은 “최근 천 의원과 가까운 염동연 전 의원 등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에 대해 ‘신당을 같이하기 힘들다’고 부정적인 언급을 하면서 감정이 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물론 새 인물도 중요하지만, 신당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당선 가능성이 큰 인물들의 합류가 필수적인데, 괜히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천정배 신당’에 대한 교감을 갖고 있는 염 전 의원과 장세환 전 의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국민은 새 인물, 그리고 새로운 정치 결사체를 원한다”면서 신당과의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동영·김민석 전 의원은 물론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의 합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5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안철수 “당 혁신은 실패”···문 대표에 직접 포문

이런 가운데, 그간 당내 현안에 언급을 자제해온 안철수 전 대표가 직접 문재인 대표를 향해 포문을 열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9월2일 전북대에서 열린 ‘공정성장을 위한 지역 균형발전 좌담회’ 모두발언을 통해 작심한 듯 당 혁신은 실패했다고 규정짓고, “당의 일대 변화와 쇄신을 가져올 수 있는 ‘정풍 운동’이나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야당 바로세우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혁신을 실패로 규정한 데는 문 대표가 당 혁신의 성공에 직을 걸겠다고 해왔던 만큼 사실상 문 대표의 퇴진을 촉구하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의도 여부를 떠나 안 전 대표의 이번 발언은 김한길 전 대표와 박주선 의원 등 비주류 인사들의 문 대표를 향한 공세에 힘을 실어주면서 ‘내부 투쟁’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양상이 됐다.

실제 비주류 의원들은 안 전 대표의 발언 이후 기다렸다는 듯 문 대표를 향해 퇴진 요구를 쏟아냈다. 광주 출신으로 비주류에 속하는 김동철 의원은 9월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대표가 대표직 사퇴 요구에 대해 ‘지도부 흔들기’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문 대표 사퇴 요구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개인 판단이 아니라 호남 민심이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호남 민심을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문 대표의 발언은) 호남 민심을 이기겠다는 얘기랑 똑같다”고 정면 비판했다. 김 의원은 “탈당 사태 등을 막기 위해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게 아니라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문 대표가 살신성인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주선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친노 계파 청산과 중도개혁주의 정당으로의 이념 노선 변경에 대해 일절 언급도 없고 외면해버리는데 어떻게 (혁신안이) 마음에 들 수 있겠느냐”며 추석 전 탈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대한 친노·주류 측의 태도도 완강하다. 문 대표는 사퇴론을 일축한 데 이어 안 전 대표의 지적에 대해 “(당의)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들이 혁신위가 기대만큼 안된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다들 혁신에 참여해 혁신의 벽돌이라도 하나씩 놓겠다는 마음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한 당직자는 “과거와 달리 문 대표 스스로의 (사퇴 불가) 의지가 확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류 측 의원들도 공개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기류다. 한 핵심 당직자는 “아직 혁신위의 최종안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안 전 대표 등이 ‘당 혁신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인 발언이 아니다”며 “지금 문 대표가 물러난다고 해서 다른 대안이 있느냐. 당내 지도자급으로 비대위를 구성한다고 해서 우리 당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 안 전 대표 등의 리더십도 이미 드러난 것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선 비주류 진영이 결국 신당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김철근 동국대 교수는 “새정치연합 비주류들이 일단 당내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지금 있는 당을 리모델링하는 시도를 하겠지만, 주류 측의 거부로 그런 시도가 막히는 상황이 되면 결국 또 다른 선택을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도 “야당이 뭉쳐야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바라는 일인데, 이 뭉치는 과정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포용력을 갖느냐는 게 중요하다”며 “이런 노력을 해보고 정말 안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 것도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8월5일 박상천 고문 빈소를 찾은 손학규 전 고문 ©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노’·비주류가 신당 창당을 결단하더라도 신당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유력한 대선 주자가 아직 부재하다는 점은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철수 전 대표가 있긴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이 많이 하락해 있는 터라 신당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추동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예상되는 신당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요구들을 정리해내기까진 아직 정치적 경험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로 인해 비주류 진영에선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에서 칩거 중인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박주선 의원과 천정배 무소속 의원까지 “손 전 고문에 대한 국민적 바람이 있다”며 정계 복귀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박주선 의원은 “손 전 고문이 (신당에) 합류해주게 되면 큰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주류 측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손 전 고문 측근들은 한목소리로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손 전 고문과 가까운 한 의원은 “손 전 고문이 복귀할 확률은 아주 특별하게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는 게 아니라면 거의 가능성이 없다”며 “이제는 손 전 고문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의 한 측근도 “손 전 고문은 통합주의자”라며 “설령 정계에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새정치연합과 신당 중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반면, 김철근 동국대 교수는 “손 전 고문이 전남 강진의 토담집에 가 있는 것은 대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라며 “대선 직전에 깜짝 복귀한다고 해도 대선 후보가 된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내년 총선에 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정치연합보다는 신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