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법률가 키우는 교육 체계부터 강화하라
  • 김윤태 | 고려대 교수 ·사회학 (.)
  • 승인 2015.09.09 16:28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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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존치·폐지 놓고 공방 가열

 

“그들은 사건을 조작하고 궤변을 일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무리들인 변호사를 한 명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명한 저서 <유토피아>에 나오는 문구다. 16세기 영국의 법률가, 정치인이자 탁월한 인문학자였던 그는 “유토피아의 법률은 아주 적은 데다 간명하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는 “변호사의 간사한 지시”가 필요 없고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다 법률 전문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정반대로 변했다. 국회에서는 새로운 법이 계속 만들어지고, 사법 분쟁은 더욱 복잡해지고, 소송 건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일랜드 극작가 찰스 맥클린은 “법이란 말장난의 과학”이라고 비판했지만, 법률 서비스는 필수적 요소가 되고 있다. 법안과 소송이 증가할수록 법률가의 역할이 커진다. 이런 점에서 공정하고 우수한 변호사·판사·검사의 육성이 중요하다.

사법시험 존폐 놓고 성명전 대결

2007년 한국에서도 변호사 시험제도인 사법시험(사시)을 없애는 대신 ‘교육을 통한 변호사 양성 체계’로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는 법안이 제정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판사 출신 변호사였지만, 다양한 분야의 법률가를 양성하는 동시에 일반인도 쉽게 법률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2009년부터 주요 대학에 로스쿨이 설립됐다. 그러나 최근 로스쿨이 부유층과 특권층의 ‘음서제’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의 사법시험에 대한 향수가 퍼지고 있다. 급기야 사법시험 폐지를 둘러싸고 학계·법조계·정치권의 성명전 공방이 벌어졌다.

로스쿨이 없는 110여 개 대학의 법학교수가 참여한 대한법학교수회는 “로스쿨은 고비용 구조와 입학 성적 비공개로 특혜를 조장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회는 “사법시험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에서 가장 공정하고 권위 있는 시험으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등용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른바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 등 25개 로스쿨로 구성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사시가 존치되면 합격은 예전처럼 소수의 서울 소재 대형 대학 출신들이 독점하게 되고 학생들이 전공을 불문하고 사시 준비에 매달려 학부 교육이 황폐화되는 과거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대부분 사시 출신 변호사로 구성된 대한변호사협회의 대표들은 “사시는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희망의 사다리”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 구성된 한국법학전문대학원 법조인협의회 대표는 “로스쿨이 음서제라는 말 자체가 악의적 왜곡”이라고 반박한다.

이처럼 학계와 법조계가 성명전을 벌이는 이유는 국회의 입법 움직임 때문이다. 국회의 기류가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5개의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의원들도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권의 대응은 로스쿨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과 맞물려 있다. 최근 한국입법정책연구원·리서치미디어스·입법정책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법시험을 유지하고 로스쿨 제도와 병행 운영해야 한다’는 사법시험 존치론(63.6%)이 사법시험 폐지론(18.4%)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런 여론이 생긴 것일까.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LG디스플레이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딸의 취업 청탁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의 아들도 정부법무공단 특혜 채용 의혹에 휘말렸다. 두 의원의 자녀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다. 로스쿨이 ‘돈스쿨’이 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귀족학교’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부모의 연줄이 작용해 임관이나 취업 기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의혹의 눈초리가 매섭다.

최근 서울대 한 연구팀은 로스쿨에 입학한 1만4000여 명을 부모의 학력과 직업 배경을 분석해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로스쿨과 연수원 출신 법조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비교했는데, 부모의 고학력·고소득 비율이 높아 ‘신분 세습’ 경향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10명 이상 직원을 둔 직업을 가진 비중은 사법연수원 33기(2002년 입소) 이전은 27.5%지만, 34~43기는 33.5%로 높아졌다. 40~43기만 보면 37.7%다. 부모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중도 33기 이전에는 7.7%지만 34~43기는 13.5%로 2배 수준이고, 40~43기는 16.7%로 높아졌다. 부모가 기업의 경영진과 임원인 비율도 33기 이전은 9.9%였는데, 34~43기는 14.8%로 높아졌다. 이처럼 압도적으로 높은 기업인과 전문직 출신 비율은 법률가의 민주적 대표성 차원에서 심각한 우려가 될 수 있다.

변호사는 높은 지위와 부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선망의 직업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계층 상승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로스쿨 학비가 1500만원이 넘어 서민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로스쿨은 미국에서 출발한 제도로 국제 경쟁력이 있고 전문성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 게다가 로스쿨 교육 내용이 인성과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를 양성하기에 부족하다는 비판도 많다.

로스쿨 취약 계층 우선 배려해야

로스쿨의 성공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개혁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학비 부담을 줄여야 하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로스쿨의 전액장학생 비율은 약 47%지만, 극빈층뿐 아니라 서민층 자녀에게도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지역과 학부 전공을 가진 학생이 법률가가 될 수 있도록 긍정적 우대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취약 계층을 우선 배려해야 사회의 공정성이 강화된다. 그렇지 않다면 사시 존치론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프레드 로델 미국 예일 대학 로스쿨 교수는 “고대에 주술사가 있었고,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법률가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자신들이 갈고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거나 특정 가족이 지위를 세습한다면 사회는 독재 체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법률가가 사회와 민주주의의 최후의 수호자가 되려면 공정한 법률가를 키우는 교육 체계부터 강화해야 한다. 법률가 교육이 부실하게 운영되거나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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