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의 무덤 EPL에서 살아남기
  • 서호정┃축구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9.09 16:47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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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원의 사나이’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성공법은?

 

유럽 축구 여름 이적 시장이 마감하기 직전인 지난 8월28일, 예상치 못했던 이적이 이뤄졌다.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활약 중이던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강호 토트넘 홋스퍼로 옮겨간 것이다. 손흥민은 이로써 만 16세이던 2008년 유럽으로 건너가 2010년부터 함부르크 소속의 프로 선수로 뛴 지 5년 만에 독일 무대를 떠나게 됐다.

손흥민의 이적이 더욱 화제가 된 것은 이적료 때문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397억원에 달하는데, 이는 아시아 선수가 기록한 축구계 최고 이적료다. 지난 2001년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은퇴)가 이탈리아 세리에A의 AS 로마에서 파르마로 옮길 당시 기록한

ⓒ AP연합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 346억원을 14년 만에 경신했다. 클럽 역사상 세 번째로 비싼 이적료를 지불한 토트넘은 계약 기간 5년의 장기 계약에 등번호 7번을 안기며 손흥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2013년 함부르크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할 당시 132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손흥민은 전 소속팀에 세 배의 차익을 남겨줬다. 그러나 이적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행과 관련한 루머는 수년 전부터 흘러나왔다.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유럽에서도 빅리그로 꼽히는 분데스리가에서 세 시즌 연속 10골 이상을 기록하며 검증을 마쳤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의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더 많은 EPL

손흥민은 풀타임으로 시즌을 소화하기 시작한 2012~13 시즌에 리그 12골,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2013~14 시즌 리그 10골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에는 리그에서 11골을 터뜨렸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5골이나 넣었다. 전 유럽을 뒤져도 만 23세 이하에 불과한 어린 공격수 중 손흥민처럼 득점력이 증명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레버쿠젠이 이처럼 확실하게 검증된 선수를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 계약 기간도 2018년 여름까지여서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토트넘이 손흥민 영입을 위해 정식 오퍼를 던진 것은 이적 시장 마감 일주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대체 자원을 보강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로저 슈미트 감독도 손흥민을 변함없이 새 시즌을 위한 핵심 선수로 분류해놓았기에 레버쿠젠은 이적 제의를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선수 측 입장은 달랐다. 손흥민은 더 큰 무대로의 도전을 원했다.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의 빅4지만 리그 우승은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챔피언스리그에 꾸준히 오를 능력은 있지만 16강 이상을 기대하긴 힘들다.

반면 EPL은 재정 규모나 인기 등에서 분데스리가를 능가하는 유럽 최고의 무대다. 거기에 돈이라는 현실적인 유혹도 컸다. 손흥민은 토트넘 유니폼을 입으면서 100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수령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버쿠젠이 손흥민에게 지불해온 연봉은 33억원 수준이었다.

슈미트 감독과 하칸 찰하노글루 등 레버쿠젠의 주요 선수들은 갑자기 팀을 떠난 손흥민에게 섭섭함을 표시했다. 지나치게 자기 입장만 앞세워 구단을 압박했다며 손흥민의 의사결정에 깊이 관여하는 그의 아버지 손웅정씨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그런 소식에 손흥민이 이적 과정에서 전 소속팀에 예의를 보이지 않은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슈퍼스타의 이적 과정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손흥민의 이적료는 올여름에만 무려 1조5000억원이 넘는 돈이 움직인 프리미어리그 이적 시장에서도 톱10 안에 든다. 레버쿠젠 측은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 결장하고 토트넘으로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러 간 손흥민에 대해 “구단과 협의한 내용이 맞다”며 문제가 없음을 인정했다. 이적설이 나온 지 사흘 후 손흥민은 토트넘의 유니폼을 입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하루 뒤에는 토트넘 홈구장인 화이트하트레인에서 열린 토트넘과 에버턴의 리그 경기 전에 그라운드에 등장해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각오를 다졌다.

토트넘은 1882년에 창단된 132년 역사의 명문 클럽이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아직 리그 우승은 없지만 단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다. 국내 팬들에게는 2005년 이영표가 PSV 아인트호벤을 떠나 이곳에 입단하며 익숙해진 클럽이다. 이 시기를 즈음해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를 노릴 수 있는, 속칭 빅4 진입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가레스 베일, 루카 모드리치(현 레알 마드리드)를 앞세운 2010~11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올랐다. 최근에도 아스널, 리버풀과 치열한 4위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손흥민은 역대 13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다. 2005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이래 많은 한국 선수가 프리미어리그를 노크했지만 성공과 실패는 명확하게 갈렸다. 박지성·이영표·설기현, 그리고 현역 프리미어리거인 기성용·이청용이 성공 사례에 속한다. 반면 이동국·김두현·조원희·박주영·지동원·윤석영·김보경은 실패 사례로 꼽힌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무대에서 매 경기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개인의 수준과 팀 적응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혹독한 평가가 기다린다. 400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려온 손흥민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기량을 증명하지 못하면 1~2년 내에 팽당할 수 있다. 손흥민과 비슷한 포지션의 선수로 분데스리가를 평정하고 왔던 가가와 신지와 안드레 쉬얼레는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며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 했다.

손흥민의 속도는 합격, 탈압박은 미지수

손흥민처럼 독일에서 건너온 그들은 어떤 차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일까. 성공 여부는 속도와 압박에 달려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기술보다 빠른 공수 전환과 개인의 스피드, 강도 높은 압박이 요구되는 무대다. 한국 선수로서 가장 크게 성공한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 스타일에 최적화된 사례였다.

현재 토트넘의 감독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미드필더 출신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맡고 있다. 사우샘프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토트넘의 사령탑까지 오른 포체티노 감독은 현대 축구의 트렌드인 ‘전방 압박’을 강조한다. 앞에서 적극적으로 공을 빼앗고 빠른 전환을 하는 게 전술의 포인트다. 때문에 공격수에게 많은 활동량과 수비 가담이 요구된다. 공격으로 전환할 때는 속도를 이용해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로베르토 솔다도와 에마뉘엘 아데바요르 같은 세계적 수준의 공격수들도 결국 이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토트넘을 떠나야 했다.

토트넘의 전술은 손흥민과 궁합이 잘 맞는 편이다.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손흥민의 스피드와 개인 전술에 의한 돌파 그리고 득점력은 포체티노 감독이 매력을 느낄 만한 부분이다.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테크닉을 보여줬던 일본인 미드필더 가가와 신지는 속도의 부담을 이기지 못했다. 다만 공격수가 압박에 가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격수로서 받게 될 상대의 강한 압박을 어떻게 이겨낼지가 성공 여부를 가르게 될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주전 경쟁은 편해졌다. 토트넘이 마지막 퍼즐로 기대했던 공격수 사이도 베라히뇨의 영입이 불발되면서 가용할 수 있는 공격 자원이 줄어든 상황이다. 솔다도와 아데바요르를 이미 처분한 상황에서 포체티노 감독의 선택지는 좁다. 지난 시즌을 통해 주전 공격수로 올라선 해리 케인과 손흥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손흥민은 케인의 뒤를 받치는 섀도 스트라이커나 왼쪽 측면 공격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을 클럽축구 최고의 무대인 챔피언스리그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시즌 5위를 기록한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보다 한 단계 낮은 유로파리그에 출전한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면서 치러야 할 대회는 더 늘어났다. 분데스리가에서는 리그·FA컵·클럽대항전 등 3개 대회를 소화하면 됐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리그컵(캐피털원컵)이 추가된다. 40경기 내외를 소화했던 분데스리가 시절과 달리 프리미어리그에서는 50경기 가까이 뛰게 될 것이다. 분데스리가에서는 12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겨울 휴식기를 가지며 체력적인 대비를 할 수 있었지만 프리미어리그는 유럽 리그 중 유일하게 겨울 휴식기가 없는 혹독한 곳이다. 특히 12월 말에는 ‘박싱데이’로 불리는, 2주 사이 5경기를 치르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체력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몸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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