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까지 수술한 용한 돌팔이
  • 하재관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9.09 16:51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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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용팔이>의 시청률 20% 돌파에 담긴 의미

SBS 수목드라마 <용팔이>가  ‘마(魔)의 벽’이라는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주중 미니시리즈의 20% 돌파는 <별에서 온 그대> 이후 1년 반 만의 일이다. 다채널 환경으로 시청률이 분산되고, 인터넷·스마트폰 등으로 본방 인구가 줄어든 이래 미니시리즈 시청률은 계속 하락해왔다. 미니시리즈가 20%를 찍을 가능성은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할 가능성만큼이나 낮아졌다. <용팔이>는 이런 상황에서 20%의 벽을 뚫었다.

<별에서 온 그대>는 전지현이라는 대형 스타와 김수현이라는 젊은 스타의 만남, 그리고 유쾌·경쾌하게 진행된 스토리와 달달한 로맨스의 결합으로 일을 냈다. <용팔이>의 구도도 일정 부분 비슷하다. 대형 스타 김태희와 젊은 스타 주원의 만남, 그리고 긴박한 스토리와 로맨스가 등장한다.

제목 <용팔이>는 ‘용한 돌팔이’라는 뜻이다. 돈을 벌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의사의 이야기다. 그는 의료 가방 하나 둘러메고 폭력배들을 치료하러 다닌다. 폭력배들은 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치료를 받으면 경찰에 잡힐까 봐 의사를 초빙한다. 정식 의료행위가 아니라서 돌팔이인데 실력이 너무나 출중하기 때문에 용한 돌팔이다. 병원에선 죽을지 몰라도 용팔이를 만나면 절대 죽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의학+욕망+재벌+막장의 화학적 융합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은 초능력자였다. 용팔이 역할의 주원은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초능력자나 마찬가지다. 그 어떤 외상 환자도 용팔이가 “오늘 누구도 죽지 않아”라며 달려들면 결국 살아나고 만다. 신체 깊숙한 곳에 있는 장기도 용팔이가 식염수와 알코올을 뿌리며 메스를 그으면 이내 치유가 된다는 초현실적 설정이니 사실상의 초능력자라고 봐야 한다.

드라마는 주원이 칼을 들고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긴박하게 사람을 살려나가는 모습으로 첫 회를 시작했다. 의학 드라마의 시청률이 비교적 잘 나오는 이유는 사람이 죽고 사는 순간의 긴박함이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 때문인데, <용팔이>는 그런 의학 드라마 특유의 긴장감을 살려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장소를 선택해 신선함까지 줬다. 기존 의학 드라마들이 병원에서 사람을 살렸다면 <용팔이>는 룸살롱·공장 등 일상의 현장에서 생명을 구한다.

여기에 원장, 과장, 스태프와 수련의 사이의 권력 관계와 알력, 그리고 환자의 돈과 권력에 병원 시스템이 어떻게 좌우되는지, 돈이 없는 환자가 어떻게 불이익을 당하는지, 학벌이나 연줄에 따라 수련의들 사이에 어떤 위계 관계가 형성되는지 등등 ‘병원 정치’의 모습이 극적인 요소에 추가됐다.

게다가 막장 재벌의 스토리에 욕망이 투영된다. 재벌 상속녀(김태희)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자 배다른 오빠가 약을 투입해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고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거기에 가신(家臣) 그룹과 배다른 오빠의 부인 등이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김태희에게 접근한다. 병원은 병원대로, 병실은 병실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집안은 집안대로, 모든 곳에서 암투가 벌어진다.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이런 설정 속에서 극은 맹렬한 속도로 달려나간다. 주원의 용팔이 행각이 너무나 빨리 발각되나 싶더니 순식간에 김태희 병실 담당 의사가 되고, 김태희를 둘러싼 다툼의 중심에 서더니 이내 폭력 사태까지 벌어진다. 긴장감과 신선한 설정, 그리고 속도의 박진감으로 보기 드문 재미를 준 것이 인기에 불을 붙인 것이다.

여기에 쌍방 신데렐라 로맨스가 추가됐다. 보통 신데렐라 설정은 부자 남자가 가난한 여자를 구원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기 때문에 쌍방 신데렐라다. 일단 가난한 주원이 재벌 상속녀 김태희를 만난다는 설정은 남성 신데렐라다. 반면 강력한 적들에 둘러싸여 무력하게 누워만 있던 김태희를 사실상의 초능력자인 주원이 구원해준다는 점에서 여성 신데렐라 구도도 덧대졌다.

김태희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초반에 그녀는 수면 상태로 누워만 있었기에 특별한 역할을 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중요했다. 드라마에서는 주부층이 잘 알며 그 근황을 궁금해하는 스타가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채시라의 <착하지 않은 여자들>, 김희선의 <앵그리맘>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비록 김태희가 누워만 있었어도 어쨌든 ‘김태희의 <용팔이>’다. 주원도 그간의 드라마들을 통해 주부 시청자에게 익숙해진 인물로, 이 두 주연의 존재감이 인기를 끌어올렸다.

이렇게 보면, 다채널 인터넷·스마트폰 시대라고 해도 긴장감 넘치는 설정을 치밀하고 긴박하게 연출하며 주연의 존재감과 로맨스의 낭만을 구현해낸다면 시청률 대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같은 긴장감·속도감 등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의 열애 폭풍 전개가 준 불안감

현재 <용팔이>는 최악의 ‘생방송 촬영’으로 진행된다고 전해졌다. 보통 막판에 터지는 편집 실수 방송 사고가 벌써 터졌고, 주원이 6일째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제작에 여유가 있어야 드라마에 긴박감이 생긴다. 제작을 긴박하게 하면 드라마는 늘어진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최근 김태희·주원의 ‘뜬금 키스’ 직전에 갑자기 극의 치밀성이 떨어지면서 회상 장면이 많아진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과도한 부하로 인해 작품의 동력이 벌써 무너지려 하는 것일까?

생방송 촬영, 쪽대본 진행의 문제는 어제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드라마 질적 저하의 주범이며, 배우들의 살인적 피로를 부르는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로만 문제라고 하면서 실질적 개선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 드라마는 용두사미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부디 <용팔이>가 초반의 긴장감을 후반까지 유지하는 기적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누워 있을 때 그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워 멜로 정서 형성에 기여했던 김태희가 움직이며 말할 때도 그것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 대목이 <용팔이>에서 남은 관전 포인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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