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윤리의식 바닥 친 법조계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9.16 18:49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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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문·범죄 물의 일으킨 판검사들, 여론 잠잠해지면 ‘무사통과’ 변호사 개업

지난해 8월 우리 사회를 충격 속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다. 현직 검사장이 길거리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등 음란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것이다.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인해 검찰도 쑥대밭이 됐다. 사건의 주인공인 김수창 당시 제주지검장은 “수치심에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겠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김수창 전 지검장, 1년 만에 변호사 신청

그런 그가 1년 만에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김수창 전 지검장의 변호사 등록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서울변회는 지난 8월 김 전 지검장이 제출한 변호사 등록신청 서류를 심사위원회에서 검토한 후 김 전 지검장의 입회를 허가하기로 결정하고 관련 서류를 대한변호사협회로 넘겼다.

ⓒ 시사저널 포토

김 전 지검장은 지난 2월 말에도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지만, 당시엔 서울변회가 비판 여론을 감안했음인지, 자숙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서류 보완을 요구했고, 이에 김 전 지검장도 스스로 신청을 철회했다. 서울변회로부터 서류를 받은 대한변협은 김 전 지검장 등록 안건을 대한변협 등록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법원행정처와 법무부에서 각각 추천된 판사와 검사, 그리고 대한변협에서 선출된 변호사 등 총 9명으로 구성된 등록심사위는 오는 9월22일 회의를 열어 김 전 지검장의 변호사 신청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지난해 8월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동생의 이름을 밝혔고, 자신이 당한 일이 ‘어이없는 봉변’이라며 결백을 주장한 후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을 통해 폐쇄회로(CCTV) 속 인물이 김 전 지검장이라고 발표했다. 김 전 지검장이 5차례에 걸쳐 음란행위를 한 모습이 촬영된 것이다.

당시 김 전 지검장의 음란행위 진위 공방은 검찰 위기론으로까지 번졌다. 차관급인 현직 검사장이 길에서 음란행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데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사표를 제출해 면직 처분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법무부는 바로 김 전 지검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법무부는 “검사장이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지휘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사표 수리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이게 과연 적절한 조치였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면직 처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렇다. 면직은 본인이 원했기 때문에 사표를 수리하는 것으로, 향후 변호사 등록을 하거나 연금을 수령하는 것에 아무 지장이 없게 된다.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당사자가 징계를 받지 않고 면직될 경우, 나중에 음란행위를 한 것이 사실로 밝혀져도 변호사 개업에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김 전 지검장은 지난 2월 변호사 등록신청이 1차 반려된 후 7개월 만에 ‘재도전’했고, 그 신청을 서울변회가 받아들였다.

판검사 출신 법조계 인사들이 현직 시절 각종 추문과 범죄 연루로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시간이 지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아무런 장애물 없이 슬그머니 다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시행한 ‘검사징계법 일부 개정안’과 ‘변호사법 일부 개정안’이 법조인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사자가 미리 사직을 해 면직 처분을 받는 것이 대부분인 데다 김 전 지검장의 사례처럼 사건 자체가 기소유예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현직 판검사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의 당사자로 물의를 일으킨 뒤 슬그머니 다시 변호사로 변신해 개업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지하철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고 퇴직한 황 아무개 판사와 여기자 추행으로 퇴직한 최 아무개 검사의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스폰서 검사’ ‘성추행 검사’도 변호사 개업

서울고등법원 황 아무개 판사는 지난 2011년 4월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입건 사실이 불거지자 황 판사는 사표를 제출했다. 피해 여성과 합의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된 황 판사는 사표가 수리되면서 어떤 징계도 받지 않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황 판사의 경우 직무 관련 위법행위가 아니라 개인 비리여서 사직 제한 규정에 해당하지 않고, 법관 징계 최고 수위가 정직이라 사표 수리가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처벌과 징계를 모두 피하게 되면서 대한변호사협회가 심사하는 변호사 개업에도 제한이 없어진 것이다.

2012년 여기자 성추행으로 직위해제된 최 아무개 전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순으로 5가지가 있는데, 정직은 중징계 중에서 가장 낮은 수위다. 일정 기간 검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역시 변호사 개업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황 판사와 최 검사 모두 사표가 수리된 뒤 6개월 안에 변호사 개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의 주인공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은 당시 면직 처분을 받았지만 8개월 만인 2011년 2월 A 법무법인의 변호사로 개업했다. ‘벤츠 여검사’ 사건의 주인공 이 아무개 검사는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결국 지난 3월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다. 무죄로 판결이 났고 징계를 받기 전에 사표를 냈기 때문에 그 역시 변호사 개업이 가능하다. ‘품위’를 이유로 변호사회가 이 전 검사의 등록을 거부할지 여부를 고려할 수는 있지만, 이 전 검사가 변호사로 복귀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서울변회의 한 관계자는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 다시 변호사로 개업할 때 현재의 법 조항으로는 (법조계 복귀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수창 전 지검장의 변호사 복귀 파문이 이는 상황에서도 물의를 일으킨 현직 판검사들의 사직서 수리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현직 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신고가 접수됐다. 한 지방법원 소속의 20대 판사 유 아무개씨가 서울의 유흥주점과 노래방에서 대학 여자 후배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 등 강제 추행을 한 혐의와, 군법무관으로 일하던 2013년 또 다른 여자 후배를 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피해 여성들과의 합의로 고소는 취하됐지만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이 폐지됐기 때문에 고소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벌을 받을 수 있었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 ⓒ 연합뉴스

성추행 20대 판사, 변호사 위해 미리 사표

소속 지방법원이 징계 절차에 착수했으나 결국 9월8일 유 판사의 사표가 수리됐다. 법원 감사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중징계가 필요하지만, 재판의 신뢰 보호라는 측면에서 사직서를 수리하는 것이 부득이하다”는 권고 의견을 밝혔고, 법원은 감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유 판사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결국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던 유 판사 역시 변호사로 개업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게 된 셈이다. 지난 3월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던 B 검사 역시 동료 여검사를 성희롱해 물의를 일으켰지만 사직서를 제출해 면직 처분을 받은 후 현재 지방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자에게 사건 청탁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 등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 아무개 전 부장검사(가운데). ⓒ 연합뉴스

성범죄나 추문뿐만이 아니다. 사건 청탁 등 대가를 받아 실형을 선고받았던 판검사들도 현직 변호사로 버젓이 일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조 아무개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조 브로커로부터 사건 청탁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011년부터 C 법무법인의 기업법 및 금융·증권 부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돼 변호사 등록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일명 ‘그랜저 검사’라고 불렸던 정 아무개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청탁 대가로 고급 승용차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2011년 9월 징역 2년6월을 선고 받았지만, 해임 직전인 2011년 8월 이미 변호사 개업을 마쳤다.

 

“변호사회, 논란 될 줄 알면서도 등록 받을 수밖에 없어”  

최근 판결금 횡령, 수임 제한 회피, 탈법 및 탈세 행위 등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법조계의 윤리의식이 바닥을 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추문과 범죄에 연루된 판검사들의 잇따른 변호사 개업이 법조계 윤리의식 부재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징계 처분을 받거나 의뢰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러 등록이 취소되더라도 의뢰인에게 그 정보를 공개할 의무조차 없다.

변호사 등록은 각 지방변호사협회에 신청서를 제출한 후 등록심사위원회의 결의를 통과해야 가능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6월 등록심사위원회의 변호사 등록 심사를 강화하고 변호사 등록 거부 제도를 적극적이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사례를 보더라도 현실적으로 ‘등록 거부’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변호사 등록 결격 사유는 변호사법 제5조가 규정한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후 5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집행유예 선고 후 유예 기간이 지난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선고유예 기간일 경우 등이다.

징계 처분을 받고 해임된 후 3년이 지나지 않거나, 면직된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법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는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해임이나 면직 등의 징계를 받기 전에 미리 사표를 제출하는 ‘사직서 관행’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경우, 김수창 전 지검장의 변호사 등록신청을 받아주게 되면 논란이 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행법 결격 사유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에서 등록을 거부할 방법이 없고, 거부할 경우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서 “현행법상 물의를 일으킨 법조인이 변호인 등록신청을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법조계의 ‘구멍’에 대해 정치권도 문제를 삼고 나섰다. 지난 4월 김학용 새누리당 의원은 공무원 재직 후에 변호사로 다시 개업 신고를 할 때는 처음 변호사 등록을 할 때처럼 반드시 대한변협의 심사를 받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변호사 개업 시 직무 수행 적정성 여부를 심사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 1년 이상 2년 이하의 기간 동안 개업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올해 국감을 통해 비리를 저지른 검사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는 것을 지적했다. 201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징계를 받은 검사와 검찰 공무원이 298명에 이르지만 70% 이상이 감봉이나 견책 등 약한 처벌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검찰을 두고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게 사실”이라며 “비위 공무원에게 일벌백계의 처벌을 내리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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