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와 ‘비노’, 이제 헤어질 명분만 남았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9.16 19:11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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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진 안철수, ‘反문재인’ 선봉장 자임…총선 공천 싸움 넘어 대선 전초전으로

“안철수 의원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표정이 독해졌다”는 얘기도 있고, “어투가 강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아무튼 안철수 전 대표의 최근 강경 행보로 인해 새정치연합의 내홍이 극단까지 치닫는 느낌이다. 그가 ‘반(反)문재인’의 선봉장을 사실상 자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고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재신임 투표를 밀어붙였다. 문 대표의 재신임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당내 갈등은 이미 봉합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내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친노’·주류와 ‘비노’·비주류 간의 간극을 메우기 힘든 계파 갈등이 존재한다.

ⓒ 연합뉴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총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 계파 다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주변인’ 처세를 해왔던 안 전 대표가 비주류의 선봉장으로 입장을 명확히 한 채 참전하면서 총선을 넘어 내후년 대선을 앞둔 야권 잠룡들의 전초전 성격까지 띠게 됐다. 안 전 대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문 대표를 직접 겨냥했고, 문 대표 역시 정면 돌파를 선언하며 사생결단의 의지를 나타냈다. 아울러 다른 야권 잠룡들의 정치 셈법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인파이터’로 변신한 安, 文에게 전면전 선포

“정계에 입문하고 바닥이 아닌 지하까지 떨어져봤다. 맷집도 세졌고 싸우는 방법도 알게 됐다. 이제는 (아웃복서가 아닌) ‘인파이터’로서 싸울 수 있다.” 올 초, 새정치연합의 2·8 전당대회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안철수 전 대표가 기자와의 대화 때 한 말이다. 당시 안 전 대표의 어조는 단호했고, 내포된 의미 또한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후 문재인 대표는 2·8 전대에서 승리하며 당권을 장악했고, 반면 안 전 대표는 기나긴 슬럼프에 접어들게 됐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 이전에 안 전 대표에게 최소한 또 한 차례의 기회가 주어질 것임을 안 전 대표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당시 안 전 대표의 표정에서는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오면 예전처럼 호락호락 넘기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 및 혁신위원들이 9월7일 국회 정론관에서 10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참패하며 문 대표의 리더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천정배 신당’이 가시화되면서 결국 새정치연합이 분당 수순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9월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문 대표는 혁신위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공천 혁신안에 대해 비노 측이 즉각 반발하면서 안 전 대표가 등장할 수 있는 무대가 생각보다 일찍 마련됐다.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문 대표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상 안 전 대표가 차기 야당 대선 후보를 놓고 문 대표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2년 대선 때 벌였던 날 선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비노 측의 위기감의 근간은 결국 ‘총선 살아남기’다. 혁신위의 공천 혁신안이 원안 그대로 통과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안 전 대표 측도 마찬가지다. 이 상태로 총선을 치를 경우, 안 전 대표가 문 대표를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생각이다. 안 전 대표로서는 당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천 혁신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함으로써 비노 측을 끌어안아야만 하는 것이다. 비노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안 전 대표의 전략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안 전 대표는 한때 ‘새 정치’의 아이콘이었던 인물이다. 국회 입성 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안 전 대표가 다시 한번 정치 중심에 복귀하는 데는 ‘정치 혁신’과 관련된 사안만 한 것이 없다. 안 전 대표로서는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온 셈이고, 기꺼이 ‘총대’를 멨다. 안 전 대표는 그의 대표 이미지인 ‘새 정치’와 궤를 같이하는 정풍(整風) 운동을 내세우고 있다. 이번에는 문 대표를 비롯한 당 주류 측을 ‘낡은 진보’의 패권 정치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안 전 대표는 일단 당내에서 문 대표를 꺾어야만 한다. 안 전 대표에게 지금 이만한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9월9일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에 대한 의결을 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당무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가 다양한 논란을 의식한듯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당 어떻게 되든 대선 후보만 되면 그만인가”

친노 측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의 행보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당내 계파 갈등을 기다려왔다는 것이다.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친노 진영의 한 의원은 “당초 문재인 대표가 계파 갈등을 청산하기 위해 안 전 대표에게 혁신위원장 자리를 제의했었다. (안 전 대표는) 당시 진실 공방까지 벌여가며 거절하더니 혁신안이 처리되기도 전에 맹목적인 비난을 하고 있다”며 “그렇다고 해서 안 전 대표가 (혁신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안 전 대표는 늘 이런 식이다. 당이 어떻게 되든지 자신만 대선 후보로 낙점 받으면 그만이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비노 측의 공격에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혁신안 표결 전인 9월13~15일에 전 당원 ARS 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총선의 중요성으로 볼 때 더 이상 비주류 측의 ‘딴죽 걸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미 문 대표가 ‘기호지세(騎虎之勢)’의 형국에 처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호랑이 등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문 대표가 비노 측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에는 친노 측의 반발이 너무 강하다는 의미다.

비노 측도 타협할 의지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문 대표의 재신임 투표를 ‘정치적 쇼’로 보고 있다. 비노 진영의 중심 축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최고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신임을 여론조사로 하겠다며 일방적 선언을 하고 퇴장한 것은 독선이다. 문 대표의 결정은 무효”라고 반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전후해 새정치연합의 분당 및 신당설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비노와 친노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셈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신당은 물론 분당에 대한 얘기가 총선 전까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년 4월의 총선 결과도 주목된다. 새정치연합이 총선에서 최소한 지금의 의석 수인 130석 이상을 차지해야 하는데, 거기에 실패하면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번 당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문 대표가 당권을 장악한 2·8 전대 직후 비노 진영에서는 “문 대표의 지금 당권 장악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내년 총선까지 친노가 당권을 장악한다면 비노 진영에서 대선 후보가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안 전 대표를 비롯한 다른 ‘잠룡’들의 경우 신당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20대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140석 이상을 가져간다면 문 대표 대선 체제가 확고해지겠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면서 “130석 내외가 된다면 다른 잠룡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새정치연합 총선 승리 가능성 크지 않아”

손학규 전 상임고문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손 전 고문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현재 전남 강진의 토담집에서 칩거 중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사분오열이 계속되면서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비노 측 중진 인사인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지인의 빈소에서 만났던 손 전 고문이 “나도 사람인지라 곰팡이처럼 정치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난다”고 했던 심경을 전하면서 정계 복귀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손 전 고문의 복귀 시점은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점쳐진다. 새정치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구원투수’로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 전 대표가 기다리지 않고 지금 바로 ‘반문(反文)’의 선봉을 자처하고 나선 데는 손 전 고문의 복귀 전에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해찬 논개론’ 앞세운 친노의 반격 


문재인 대표를 향한 새정치민주연합 내 ‘비노’·비주류의 무차별 공격에 숨죽이고 있던 ‘친노’·주류가 반격에 나서고 있다. 우선 문 대표가 ‘혁신안 중앙위 통과’와 연계한 재신임 카드를 꺼내든 데 이어, 친노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총리의 ‘백의종군’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주류발(發) 인적 쇄신론까지 불을 붙이며 비주류와의 정면 대결을 불사하겠다는 기류까지 감지되고 있다.   최인호 혁신위원은 9월10일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이 전 총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친노의 큰 어른”이라며 “총리님의 ‘한 석’보다 ‘우리 당의 열 석’을 위한 결단을 내려주는 게 제일 큰 어른의 역할”이라고 사실상 20대 총선 불출마를 요청했다. 이 전 총리는 세종시 지역구의 6선 의원이다. 최 위원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부대변인을 지낸 ‘부산 친노 그룹’의 핵심 인사라는 점에서 ‘이해찬 용퇴론’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로 인해 당 안팎에선 최 위원의 ‘이해찬 용퇴론’이 주류발 인적 쇄신론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친노 진영 내에서 이 전 총리의 무게감이 남다른 데다 만약 이 전 총리가 용퇴론을 수용할 경우엔 호남·비주류 의원들에까지 확산되는 등 당내 인적 쇄신론에 불을 붙일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최 위원도 기자회견 직후 “다른 분들의 백의종군도 필요하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오늘 말한 게 첫 출발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주류 측으로 분류되는 한 핵심 당직자는 9월1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 위원의 ‘이해찬 용퇴론’은 분명한 인적 쇄신론의 신호탄”이라며 “특히 인적 쇄신을 위해선 ‘내 살을 자르고 나서 남의 살을 자르라’고 해야 하는데, 이것이 진정한 ‘육참골단(肉斬骨斷)’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육참골단’은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의미다. 이 핵심 당직자는 또 “이 전 총리가 ‘용퇴 제안’을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들의 용퇴도 끌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이 전 총리가 기폭제가 돼 ‘친노가 그만두니 비노들도 그만둬야 한다’고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 측은 “개인적인 돌출행동”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최 위원이 사실상 ‘이해찬 논개론’을 꺼낸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문 대표가 하루 전날인 9일 재신임 카드로 비주류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고, 이튿날 곧바로 친노 핵심 인사가 인적 쇄신론까지 꺼내들고 나선 것을 보면 내부의 ‘교감’하에 진행된 게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주류가 비주류와의 일전을 위해 ‘혁신 대 반(反)혁신’, 또는 ‘혁신 대 기득권’의 프레임을 짜고자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주류가 ‘혁신의 칼’로 비주류의 반란을 진압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또 다른 주류 측 재선 의원은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그런 구도가 돼가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아울러 비주류가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에 대해 ‘조기 전당대회’ 개최로 역공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 위원이 문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이해찬 용퇴론’의 총대를 멘 전략적 포석도 읽힌다.

그래서일까. 비주류 측도 최 위원의 ‘이해찬 용퇴론’에 강한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비주류 성향의 한 호남 지역 의원은 “문제의 핵심은 문 대표가 결단을 내리는 것인데, 친노가 이 전 총리 용퇴론으로 물 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결국 이 전 총리의 용퇴를 이끌어낸 뒤 그 명분으로 비주류를 쳐내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라고 의심했다.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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